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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Dec 27. 2022

60즈음에ㆍㆍ

감은 머리를 말리려고 드라이기를 들고 거울 앞에 섰다.


나를 쏙 빼닮은 허연 머리를 한 늙은 노인 한 사람이 거울 속에서 나를 쳐다보며 서있다.

그의 손에도 드라이기가 들려있다.


 " 당신 뉘시오?

나는 이종열이라는 사람입니다만ㆍㆍ"

물어보려다가 말하지 않았다.


거울 속 남자가 자기도 이종열이라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원래 흰머리가 많은 나였지만 이제는 숫제 까만 머리카락은 아예 약에 쓸려고 해도 없다.


목걸이를 걸고 있는 나의 목은 그 옛날 멍에를 걸고, 워낭을 걸었던 내 고향 어느 집 황소의 그것처럼 축 늘어져있다.


" 여보, 나 염색할까?"

애꿎은 아내한테 물어보았다.


피식 웃는다.

이건 분명 썩소다.


" 마, 그냥 살던 데로 사이소.

다 늙어가 염색은 또 와?

호박에 줄 친다고 수박이 됩니꺼?"


내 옆에 더 있다가 좋은 소리 못 들을까 봐 썩소와 말폭탄을 쏟아 내고 아내가 부리나케 방을 나서 거실로 가버린다.


"이런

같은 말을 하여도 꼭 저렇게 할까

당신 백발은 멋있어요.

염색한 거보다 지금이 나아~

이렇게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하나, 세금이 더 나오나

그래도 명색이 지 서방인데ㆍㆍ"


아내가 도망치듯 나간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혼자 비 맞은 중 마냥 구시렁 거린다.


그래 다 늙은 호박에 억지로 줄 치지 말고 그냥 살자.

누가 뭐라고 하던 나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익어가는 거지.


내 구시렁 혼잣말이 오늘따라 꽤나 길다.


그래도 나름 최대한 young 하게 입고, 또 신고 대문을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띠리릭~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옆 집 호실 문이 열리더니 그 집 가장(家長)이 나왔다.

그저 오다가다 만나면 인사만 하는 사이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서른 중반쯤의 나이로 보인다.


이 친구 나를 보더니 180도 폴더 인사를 한다.

내가 젊었을 때 동네 어른들을 만났을 때 했던 그 인사 그대로였다.


' 아~

나는 익어가는 것이 아니고 늙어가는 가 보다 '


그리고 보니 내 삶에 10년짜리 나이테가 6개나 나를 휘감고 있다.

그리고 보니 내가 이 세상에 오고 강산이 6번이나 바뀌었다.


첫 번째 강산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바뀌었다.

그때의 나는 세월이 또 가면 내가 다니고 있는 이 학교에서 학년이 제일 높은 6학년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것이 세월인 줄 알았다.

아니 세월이 무엇인지 몰랐다.


두 번째 강산이 바뀔 때 나는 나라의 부름을 받았다.

그때는 입대가 싫어서 (방위도 싫은 거는 싫은 거다) 어서 세월이 갔으면 했다.

그때의 나는 그랬다.


세 번째 강산이 변할 때 나는 너무나 바빴다.

집에서 직장으로, 직장에서 집으로 다람쥐처럼 바퀴를 돌리면서 살았다.

세월이 오는지 가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다.

그래도 그때는 토끼 같은 아이 셋과 여우 같은 마누라가 가끔씩 나를 웃게도 해주었다.


네 번째 강산이 바뀔 때쯤부터 내 어깨가 슬슬 무거워졌다.

누군가가 납을 녹여 내 어깨에 는 것 같았다.

집에서는 아버지로서의 위치무게가 나를 짓눌렀고 직장에서는 내 머리 위의 저 자리로 어서 가야 한다는 강박이 또 나를 눌렀다.


다섯 번째의 강산은 말년병장의 다 헤어진 모자에 억지로 덕지 붙은 작대기 네 개의 계급장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직장의 후배들은 나를 잘 모셔야 할 선배로, 또 어떤 때는 꼰대로 나를 대하였다.  


그때의 내 곁에는 토끼 같았던 새끼들이 어느새 자라 지 할 말들을 또박또박해대는 키가 나보다 더 자라 있는 어른으로 변해 있었고 여우 같았던 마누라는 완전히 종(種)이 변해 호랑이로 변해 있었다.


옆 동 젊은 이 친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나에게 또 폴더인사를 한다.


" 오냐, 이눔아

안다, 안다고

내가 니 눈에는 어르신으로 보인다는  거 "

문이 닫혀 혼자 남은 엘리베이터 속에서 또 혼자 구시렁거렸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어느 여가수가 부른 인생이라는 노래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다시 돌아가라 하면 나는 못 가네

마디마디 서러워서 나는 못 가네


그래 다시는 그 시절로 못 가지

절대 나는 못 가지


" 띵똥 ~ "

휴대폰 카톡으로 우리 가족 단톡이 들어온다.

서울에 있는 큰 딸이 손자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 제출할 거라는 사진을 보내왔다.


헉!!!

이 눔이 언제 이만큼 자랐지?


사진 속 손자는 이제는 애기가 아니고 어린이였다.

이 눔 태어났다고 산부인과로 뛰어갔던 때가 엊그제인데ㆍㆍ


가만히 있어보자.


이러다가 이 눔 곧 초등학교에 갈 것이고 입학을 했으면 또 졸업도 하겠지?

그다음은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어느 학년쯤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눔도 나라의 부름을 받을 거야.

내가 그랬던 것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입대를 하겠지?


그때쯤 어디에선가  나는 어느 가수가 그리도 건너지 말라고 했던 그 강을 할 수없이 건너야겠지?


아니야

어쩌면 이미 건넜을 수도 있어.


기가 찬다.

그리고 보니 내가 군대를 갔을 때 쯤해서 내 할배, 할매도 이미 그 강을 건너셨다.


인생 차암 짧다.

인생 차암 허무하다.


내 인생 나이테에 10년짜리 나이테 몇 개를 더 두를 수 있을까?

내가 강산이 변하는 것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한번?

두 번?


아니

요양원에 누워서 간병인들이 갖다 주는 밥을 먹고 그들이 내가 저질러 놓은 뒤처리를 할 때 죽을힘을 다해 돌아 눕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삶 말고

건강하고 정신 맑게 사는 삶 말이야.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진짜 잘 익어가자.


목욕 자주 해서 내 몸에서 노인냄새 안 나게, 젊은 친구들한테 반말 안 하게, 내 컴퓨터 chip에 입력은 차단하고 출력만 해대는 꼰대이지 말고,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노인네 하지 말고


잘 익어가자.

잘 늙어가자.


무엇보다 잘 놀다 가자~


언젠가 내가 요르단의 강 앞에 섰을 때

' 아~

한평생 잘 놀다간다 '

하며 한치의 망설임 없이, 한치의 미련 없이 훌쩍 그 강을 건널 수 있게 ~~


자동차 시동을 걸고 백수친구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브런치 카페로 달려간다.


brovo my 백수

brovo my  lif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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