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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Jun 01. 2023

"  그렇게 흐리멍덩 하노 으이?

옆집 기철이 봐라,눈이 반들반들 거리고 행동거지가 월매나 빠른동? 어이구 답답해라 쯧쯧 "

당신의 목까지 자란 하얀 수염을 달달 떨면서 어린 나에게 할배께서 자주 하셨던 말씀이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을 하지만 할배께서는 어린 나에게 자주 흐리멍덩하였다고 하셨다. ( 지금도 뭐 매사에 딱 부러지는 성격은 아니니까 할배 말씀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


어린 나는 나의 그런 흐리멍덩하였던 행동들보다 할배의 추상같은 꾸지람이 무서워서 낡아 헤어진 어머니 치마 뒤에 숨곤 하였다.

할배께서 엄친아처럼 늘 입에 달고 사셨던 옆집에 살았던 기철이는 실제 눈에서 빛이 났고 행동도 번개처럼 빠르고 민첩하였다.


말을 할 때도  정(正)과 오(誤)가 분명하였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는 말을 듣는 상대의 입장보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고 하는데 더 많은 애를 썼다.

어쩌면 상대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과 눈 맞추는 것조차도 하지 못하고 어려워하였다.

나는 행동이 느려터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민첩하지는 더더욱 못하였다.

내 생각을 말할 때 나는 늘 " 글쎄, 내 생각에는ᆢ"이라는 말을 선발대로 앞세우고 본질의  말들은 그 뒤를 따랐다.


이런 나의 말과 행동들이 할배 눈에는 흐리멍덩하게 보였고 답답하게 느껴지셨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나는 "글쎄, 내 생각에는"이라는 말을 앞세워서 하고 할배께서 자주 말씀하셨던 그 옆집 기철의 눈은 빛이 나고 행동이 빠르다.

지금도 말을 할 때 직화법(直話法)으로 하고 상대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런 나를 흐리멍덩하다 생각하지 않고 옆집 기철의 민첩하고 직설적인 행동과 말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살면서 더러 우유부단하다, 어중간하다, 이도 저도 아니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하다는 소리를 들을지 언정 나는 한쪽으로 기우는 극단의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지금은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이 초행길의 운전을 도와주지만 내비게이션이 없었을 때 이정표를 보고 가야 할 초행길에서 나는 늘 3차선 차로 중에 2차선으로 차를 몰았다.

2차선으로 가는 것이 1차선이나 3차선으로 차선을 바꾸기가 수월하다는 것을 운전경력이 조금 쌓인 후에 알았다.

극단의 1차선, 3차선으로의 운전이 차선을 바꿀 때 꽤나 힘들고 위험하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내가 따로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나는 중간의 삶을 살고 싶다.

이런 나의 중간의 삶은 부처님의 중도(中道)와 공자님의 중용(中庸)처럼 뜻이 크고 위대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모자람 없고 넘침이 없는 어중간한 삶을 살고 추구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유부단하다, 이도 저도 아니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나는 어느 일방의 편에 서서 반대편의 사람을 나의 적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국가에서 치르는 큰 선거를 보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어느 특정후보 한 사람의 편에 서서 자신의 입지를 다졌던 사람들의 영욕(榮辱)들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자주 본다.

내가 지지하고 편들었던 그 사람의 승리는 곧 나의 승리이고 그 사람의 영(榮)은 곧 나의 그것이니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늘 열흘간 피어있는 꽃이 없고 한 달간 떠 있는 달이 없듯이 피었던 꽃과 달은 날이 가고 시간이 가면 지고 기운다.

꽃과 달은 혼자피고 혼자 뜨고 혼자 지고 혼자 기울지만 어느 누구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상대에 의해지고 떨어진다.

그들은 곧 짧은 시간 그들과 함께하였던 영(榮) 뒤에 따라오는 필연의 욕(辱)과 마주하게 된다.

 사람의 지지자와 함께하는 욕(辱)을 보면서 '너무 극단적인 지지는 하지 말지' 하였던 나의 마음은 소극이고 소심일까?

  


걷는 것조차 귀찮아서 가만히 있으면 다리에 근력이 감소하게 되고 근력을 키우기 위해 너무 많은 운동을 하면 관절에 무리가 오기 때문에 적당한 운동이 중요하다.

살을 빼기 위해 너무 식사량을 줄이면 몸의 영양소가 맞지 않고 영양소를 채우기 위해 너무 많이 먹으면 비만이 오기 때문에 적당한 식사량이 중요하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 듣는 소리가 있다.

" 적당히 좀 해라 "


이 말을 들은 우리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행동들을 하지 않았을까?


별로 장대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을 것 같은 말

적당히~

어중간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이도 저도 아닌 ~


이런 말들을 티 나지 않고 나 혼자만 알게 내 옆에 두고 살면 편하지 않을까 싶다.

 

약간은 모자라는 듯 한 이런 말들이 과유불급(過猶不及)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너무 모가 나서 자주 정을 맞는 돌보다 어중간한 강가 돌이 낫지 않을까 싶다.


中자가 크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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