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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May 17. 2023

불 주사

교실 안이 한 아이의 말 한마디에 웅성거린다.

순간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쏴해 졌다.

요즘 말로 갑분싸가 되어버렸다.


한 두 아이 얼굴에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가득하고 살짝 상기된 모습이 보이기도 하였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 느그 들었나?

오늘 온다카더라 "

교실 밖으로 나갔던 한 아이가 다급히 교실로 들어오면서 말을 하였다.

그 아이 얼굴은 창백하였고 겁에 잔뜩 질려있었다.


" 와?

무슨 일이고?

누가 온다고 카는데? "


각자의 자리에 앉아있던 학급아이들이 방금 말을 꺼낸 아이를 둘러싸며 물었다.

몰려든 아이들 얼굴에는 궁금증 반, 두려움 반의 표정이 역력하였다.

말을 전한 아이의 얼굴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분명 좋은 일은 아닌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 오늘 장티푸스 주사 주러 보건소에서 나온단다.

그런데 그 주사가 불주사라 카더라.

주사기 바늘을 불에 벌겋게 다라가 ( 불에 달구어서 ) 팔 속에 깊이 놓는다 안카나.

아프기도 하지만도 뜨거버서 죽는다 카더라 "


큰일이다.

거의 매년 1년에 한 번씩 오는 접종일이 오늘이다.

올 것이 왔다.

오고야 말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배탈 났다 하고 오늘 하루 결석을 할걸 그랬다.


같은 반 사오십 명 친구들이 똑같은 생각을 하였다.

그런 같은 생각을 한 아이들의 표정들이 똑같았다.


이때부터 선생님의 수업은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온통 눈이 창문으로 보이는 교문에 고정이 되어있었다.


수업에 집중하라는 선생님의 호통에도 눈은 칠판보다 교문으로 더 자주 갔고 그 눈에 드디어 보지 않았으면 하였던 것이 보이고야 말았다.


지프차한대가 교문을 지나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때는 자동차를 좀체 볼 수가 없었던 시절이라 운동장으로 들어온 저 지프차는 100퍼센트 우리에게 주사를 주기 위해 들어온 차가 확실하였다.

 

일순간 교실 안이 웅성거리고 술렁였다.

귀는 이미 닫혀 선생님의 말씀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눈도 이미 감겨 책상 위에 펴둔 책의 글자가 한자도 들어오지 않았다.


땡땡땡~~

교무실 창밖에 있는 종이 쉬는 시간을 알린다.

선생님이 교실문을 나서자마자 아이 몇몇이 오랫동안어두운 곳에 갇혀 있던 강아지가 튀어 나가듯 교실밖으로 튀어나갔다.


옆반으로 갔다.

친한 친구 옆으로 가서 물었다.

" 어떻터노?

아푸더나?

불주사가 뜨겁더나? "


지난 시간에 이미 주사를 맞은 옆반 친구 얼굴이 죽을상이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입을 모으고 '호오, 호오' 하였다.

아픔의 깊이를 말 대신 얼굴표정으로 하고 있었다.

교실문을 박차고 나온 아이 얼굴은 주사를 맞은 아이보다 더 상기되고 더 겁에 질려버린다.


" 와 말안하노?

마이 아푸더나 안카나? "


조금 전 보다 더 다급해졌다.


" 우와

말 마라.

내사마 죽는 줄 알았데이

아프고 뜨겁고 ㆍㆍ

니도 한번 마봐라 ( 맞아봐라 )"


쉬는 시간을 알렸던 교무실 옆 종이 다시 울린다.

각자의 교실로 다시 돌아가야 하지만 조금 전 튀어나왔던 것보다 백배는 느리게 돌아간다.


차라리 지난 시간에 주사를 맞아버린 옆반 친구들이 부러웠고 칠판 밑에 서 계시는 선생님이 더 부러웠다.


수업이 시작되고 10분쯤 지났다.

드르륵~

교실문이 열렸다.


일순간 40명 아이들 얼굴이 얼어버렸고 어떤 아이는 아예 사색이 되어버렸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의사와 간호원(그때는 간호사라 하지 않고 간호원이라고 하였다) 2명이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수업을 하던 선생님이 교탁에 책을 그대로 둔 채 교실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어른이 부러웠다.

내가 있던 교실 안은 死地였고 선생님이 나가신 교실 밖은 天國같았다.


제일 먼저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누나 앞으로 가서 팔을 걷은 아이는 반장이었고 두 번째가 부반장이었다.


나는 세 번째로 선생님 앞에 섰다.

그때의 나는 분당장이었고 반장, 부반장, 분단장 순서대로 불주사를 맞으라는 것은 교실밖으로 나가시기 전에 선생님이 미리 일러주신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과 두 분의 간호사 누나들은 말이 없었다.

그저 무표정하게 책상 위에 주사기통을 놓고 라이터를 켜서 램프에 불을 붙였다.


줄을 선 우리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누나들의 무표정과 파란 색깔을 내며 램프에서 타고 있는 불, 교탁에 놓인 끝이 뾰족한 주사기 앞에서 흡사 막다른 골목에서 고양이를 맞닥뜨린 생쥐의 표정이었다.


드디어~

반장이 팔을 걷어 의사 선생님 앞에 섰고 주사기 바늘이 반장의 팔로 깊이 박혔다.

주사를 맞는 반장의 그것보다 뒤에 줄을 선 나와 아이들의 표정들이 더 일그러졌고 이미 중심을 잃은 눈동자들은 계속해서 타고 있는 램프불과 주사기에 꽂혀 있었다.


부반장이 맞고 드디어 내 차례~


나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뜨거움과 따가움의 공포는 이미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위력으로 내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었다.

내가 처음 반아이의 오늘 주사 뉴스를 듣고부터 지금까지 몇 시간 동안 느꼈던 공포심과 상상들보다 수십 배, 아니 수 백배나 아무렇지 않게 내 팔에 들어왔던 주사기가 쑤욱 빠져나간 것이었다.


뭐지 싶었다.


그런데도 내 표정은 아직도 있는 대로 인상을 쓰고 있었고 입은 오므라들어 연신 주사가 들어왔던 자리를 문지르며 호오호오 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내가 보았던 옆반 아이들 입모양이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누나들이 돌아가고 조금 있다가 아직 주사를 맞지 않은 옆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우리가 前 시간에 하였던 것처럼 ' 어떻더노, 아푸더나,뜨겁더나?' 하였고 우리도 주사를 먼저 맞은 아이들이 하였던 것처럼 호오호오 하였다.


이후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운동장에 서 있는 지프차를 보고서도, 하얀색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누나를 보고서도 아무 동요도 무서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덤덤하였다.


내 머릿속에서 아직 지워지지 않는 딱 50년 전의  추억담이다.


지금 생각하면 뜨겁지 않은 작은 주사기 하나가 마치 망나니가 휘두르는 칼과 같았고 아프지 않고 뜨겁지 않게 우리 팔을 찔렀던 하얀색 가운을 입고 왔던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누나들이 망나니처럼 무섭게 느껴졌던 것은 그때의 우리가 만들어낸 마음의 두려움이 아닐까 싶다.

 

지금 생각하면 어차피 올 것은 피할 수 없는 그것이 되어 반드시 오고 또 그것은 내가 무서워하고 두려워 한만큼의 크기로 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였던 그 무엇이 지나간 후의 일상들이 얼마나 편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지금도 내 왼쪽 팔뚝 위에는 그때 맞은 불주사의 흔적하나가 훈장처럼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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