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깨었다.
휴대폰시계가 am 5 : 27분이라 써놓고 깜빡인다.
옅은 커튼밖으로 밝아오는 새벽이 보이지만 아직은 희미한 여명의 빛으로 보인다.
전날 나는 늘 아침 7시에 알람을 해놓고 잠이 들지만 정작 내 잠을 깨우는 것은 알람이 아니라 꿈이다.
거의 매일이 그랬다.
그 꿈들은 꼭 출발선에 서있다가 총소리와 함께 출발을 하는 마라토너들의 그것처럼 정확한 시간에 출발을 해서 거의 5시 언저리에 내 잠을 깨우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다시 잠이 드는 것이 쉽지가 않다.
눈을 감고 머리를 비우려 하여도 내 잠을 깨운 좀 전의 꿈의 잔상들이 내 눈주위를 맴돌고 머리의 정수리에 꽈리를 틀고 눌러앉아 정신을 말똥거리게 하였다.
' 그래 일어나자.
일어나서 천천히 움직이고 늘 하던 루틴대로 하루를 시작하자 '
머리가 시키는 데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일어나 앉았다.
' 아냐, 더 누워있어
지금 일어나서 뮈하게?
오늘 정해진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지금부터 움직이면 오늘 하루가 너무 길어
더 누워있어 '
방금 일으켰던 몸을 다시 침대에 뉘었다.
나는 늘 둘이다.
천사와 악마처럼 옳고 그름의 선(線)이 명확하지도 않은 디테일만 조금 다른 어쩌면 똑같이 생긴 나는 늘 둘이었다.
이 둘은 사이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둘의 의견이 딱 맞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계단을 오르고 계시는 거동이 불편하신 어른을 보았을 때 지체 없이 달려가 부축을 해드리는 어쩌면 善과惡이 명확한 일을 할 때는 둘이 맞서지 않는다.
아니다.
이럴 때 또 하나의 나는 아예 나서지를 않는 듯하다.
당연히 달려가서 부축하고 도와 드려야지 하면서 둘은 의견이 일치한다.
오늘 라운드를 하고 있을 때 다른 친구가 내일 라운드를 할 수 있느냐고 전화가 왔다.
어김없이 내 안에는 또 내가 둘이된다.
' 그래, 내일 간다고 해.
누군가 너를 찾고 불러줄 때 빠지지 말고 참석하고 만나
자꾸 거절하면 나중에 사람들이 너를 찾지 않아 '
하나의 내가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 아냐, 안된다고 해.
이제 니 나이가 20,30대가 아니야.
너 자꾸 이런 식으로 무리를 하면 얼마 되지 않아 몸이 너한테 복수할 거야.
돈도 좀 아껴 '
둘의 각이 너무 날카롭고 너무 날쌔다.
도무지 물러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전화기의 친구가 왜 대답을 하지 않느냐고 채근을 한다.
'응, 친구야
내가 금방 전화할게
지금 라운딩 중이라ㆍㆍ'
결국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더 있다가 잘 모르는 시험지에 나와있는 O, X 둘 중 하나를 찍듯이 선택을 해서 그 친구에게 답을 해준다.
내 속을 확 뒤집어 놓은 친구를 두고 이 둘은 또 다툰다.
' 그래 이제 그런 친구는 정리하자.
이러다가 너 화병 걸리겠어.
마음 편한 친구들도 얼마든지 있는데 뭣하러 이런 속 썩이는 친구를 만나?
이제부터는 편한 사람들과 편하게 지내.
인생이 그렇게 길지 않아 '
' 아냐.
인생을 살다 보면 중도 보고 소도 보는 거야.
네 마음에 조금 들지 않는다고 자꾸 인간관계를 정리하다 보면 나중에 니 주위에 아무도 없어.
사람들이 너더러 까칠하고 불편하다고 할 수 있어.
그냥 만나
하루, 이틀 살다가 말 짧은 인생도 아니야 '
아~
나더러 대체 어쩌라고?
도대체 너희 둘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제발 너희 둘 중 누구 하나가 내 집에서 좀 나가 줘.
소리를 질러 둘을 갈라놓으려 하였다.
그렇게 각을 세우고 다투던 내 안의 둘은 나의 이런 절규에 아무런 대꾸가 없다.
아예 코빼기도 보이 지를 않는다.
둘 다 내 집에서 나갈 생각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저러다가 내일 아침이면 또 둘이 같은 시간에 일어나 나더러 하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라고 하고 또 하나는 더 누워있으라고 나를 닦달할 것 같다.
나더러 대체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