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재주 하나가 내게 있다.
아니다.
특별이라기보다 특이하다는 편이 나을 수 있겠다.
나는 꿈을 꾸면서 꿈속에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곧잘 알아차린다.
이럴 테면 꿈에 우리 집 강아지가 갑자기 호랑이로 변하고 그 호랑이가 하늘을 날아다녀도 나는 꿈속에서 생각한다.
' 아~ 꿈이니까 그렇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
그렇다고 백이면 백 전부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한다.
어떤 때의 나는 자주 그 꿈에서 스스로 깨어나지 못해 식은땀을 흘리고 소리를 지르고서야 깨는 꿈도 있다.
또 어떤 꿈은 너무 달콤하고 행복해서 일부러 깨어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제 꿈이 그랬다.
내가 40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다녔던 고등학교 운동장에 내가 서 있었고 나는 달리기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본 너무나 푸른, 푸르다 못해 시린 하늘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일반으로 같았다.
그 하늘아래 흰색 천으로 만들어진 현수막이 키 작은 나무 두 그루 허리에 매여 있었고 그 현수막에
' ㅇㅇ상업고등학교 제25회 교장배 육상대회 개최 '라 쓰여 있었다.
그 현수막 건너편으로 내가 달리기 복장을 하고 몸을 풀고 있었고 출발선에 나와 똑같은 옷차림을 한 다섯 명의 친구들이 나와 똑같은 동작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내 앞 작은 팻말에 '200m - 2학년'라 쓰여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고 200m 단거리 주자로 나선 것이었다.
나는 원래 어릴 적부터 달리기에는 소질이 전혀 없었고 더군다나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아예 뛰어 보지를 않았는데 내가 달리기 선수라니.............
혹여 급히 뛰다가 넘어지기라도 해서 골반을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아니야 그것보다 당장에 심장에 부담을 줘서 심장이 멈춰 버리면 큰일이 아닌가?
꿈속의 나는 몸은 19살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마음은 61살의 지금이 같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래도 뛰어야 한다면 우선 안경부터 벗어야겠다.
이 안경이 작년에 맞춘 100만 원짜리 다초점 안경인데 혹여 떨어뜨려 깨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출발선에 서 있는 짧은 시간 동안 몇 가지 생각들이 내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손을 더듬거려 코에 걸려 있을 안경을 만져 보았다.
그런데 안경이 만져지지 않는다.
'어? 내가 안경을 어디에다 두고 왔지?
그게 얼마나 비싼 안경인데...
나는 얼마 전에 온 노안 때문에 안경이 없으면 가까이에 있는 사물이 하나도 보이 지를 않는데...'
그런데 희한하게 내 손에 안경이 만져지지 않음을 확인하였는데 내 앞이 훤하게 보이고 멀리 있는 작은 글씨도 선명하게 보인다.
'제25회 교장배~~'라 쓰여 있는 현수막의 글씨가 평소 안경을 쓰고 본 그것보다 훨씬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내 팔과 다리에는 힘이 뻗쳐 넘쳐났고 마음 같아서는 지금 이대로 달나라 까지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의 20년 가까이 느껴보지 못하였던, 젊었을 때 가끔 느껴 보았던 그런 기분이었다.
200m쯤은 10초 안에 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함께 조금 전 느꼈던 기분을 따라 들어왔다.
스타트 준비를 하고 있는 우리들 바로 옆에 경기진행 요원을 자청하신 연세가 지긋이 드신 선생님 서너 분이 하시는 대화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어이구, 젊음이 좋기는 좋다.
저놈들 봐
탱글거리는 피부, 힘찬 근육들~
나한테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 그려 쯧쯧쯧 "
그랬다.
나는 완벽히 19살의 나이로 되돌아가 있었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고 펄떡거리며 뛰는 내 심장이 달나라까지 뛰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노안으로 갑자기 나빠진 시력이 천리안으로 되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 약에 쓰려고 해도 없었던 자신감 마저 200m를 단 10초에 뛸 수 있을 것 같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내 팔과 다리는 막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개구리 마냥 펄떡이고 있었다.
꿈이지만 너무 달콤한 꿈이라 내가 가지고 있는 신통력(?)으로 그 꿈을 계속 꾸고 싶었지만 오늘은 골프가 있어 꿈을 중단하고 잠에서 깨어났다.
'하필 이런 달콤한 꿈을 꾸는 날에 골프라니......'
꿈에서 깨어 일어나 앉아 제일 먼저 내가 한 일이 다초점 안경을 찾는 것이었다.
현실의 나는 안경을 쓰지 않으면 가까이에 있는 TV글씨조차 보이지 않는다.
안경을 끼고 일어나 앉아 매일아침 루틴대로 스트레칭을 하였다.
허벅지 근육강화를 위해 늘 하던 대로 스쿼트를 서른 번 하는데 무릎에서 뻑뻑 소리가 서른 번 난다.
조금 전 꿈에서 내가 보았고 선생님들이 부러워하였던 탱글거리는 피부와 힘찬 근육들은 내 몸 어디에도 없고 주름진 피부와 약간은 늘어진 근육들만이 그 자리에 대신 앉아있다.
그러고 보니 꿈에서 나를 보고 부럽다고 하며 내 옆에 서 계셨던 선생님들이 지금의 내 나이셨다.
"아~
내가 젊었을 때 온통 내 몸을 칭칭 감고 있었던 귀하디 귀한 그것들을 그때의 나는 몰랐었구나" 싶어 헛헛한 웃음이 나왔다.
그때 기적과도 같이 나를 따라다니며 내 곁에 함께 있었던 푸르렀던 청춘이라는 보물을 평생의 내 것인 양 여기고 일상의 평범으로 여기고 업쑤이 대하였구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 옛날 장자(莊子)가 꾸셨던 호접몽(胡蝶夢)을 오늘 새벽 내가 고스란히 꾸었다.
내 곁에 있었을 때 그것들의 소중함을 전혀 몰랐다가 전부 떠나고 나서야 그들이 나에게 소중하였구나 하는 것을 떠나보내고서야 아는 내가 참으로 미련하구나 싶었다.
내 친구의 카톡 프로필이 생각난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 "
♤ 브런치 작가님들 중에 20,30대 작가님들~
지금 작가님들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지 알고 계셔요?
지금 작가님들 뒷 머리에서 눈이 부신 후광이 비친다는 것을 알고 계셔요?
지금 작가님들 옆에 있는 모든 것들이 4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르고 나면 빛바랜 사진이나
꿈속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셔요?
지금의 작가님들을 무척이나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계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