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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종열
Sep 25. 2023
비주류(非酒類) 이대리의 고난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카페에 들어섰다.
다섯 명의 남자들이었다.
얼핏 보기에 같은 직장,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로
보였
다.
한 사람이 입을 쩝쩝거리며 이쑤시개로 자신의 이를 정리하는 것으로 보아
조금 전 점심식사를 마치고 남은 시간에 카페에서 차를 마시러 온 듯 보였다.
40대
초
반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손에 카드를 들고 카페 카운트 직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고
4명의 남자들은 각자가 선호하는 차를 주문하였다.
40대 초반의
남자는 부서의 팀장으로 보인다.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한 사람이 주문을 하자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자신들이 좋아하는 차를 주문한다.
"아메리카노 따뜻하게~
그리고 연하게요
"
"저는 라떼요"
"저는 카푸치노 마실게요"
팀원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주문을 마치자 마지막으로 계산을 담당한
40대 초반의
남자가 자신의 차를 주문한다.
"으음~~ 나는 대추차 마실게요"
그들이
각자주문한
5인 5색의 차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곧이어
주문한 차가 나왔고 그들은
차를 마시고 그들의 사무실로
돌아
갔다.
조금 전
그들은 차를 주문하면서 누구 한 사람도 '너는 내가 좋아하는 라떼를 주문해' 같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이 차를 마신 20여분의 시간 동안 누구 한 사람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내 茶와 너의 茶를 섞어 폭탄차를 만들어 마시자 하지 않았다.
누구도 이 자리가 파해지면 2차를
가자
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함께 먹었던 점심과 마신 차는 종류는 전부 달랐지만 똑같은 음식이었다.
그런데 낮에 모여 점심과 차를 같이 하였던 그들이 업무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같이 술을 마실 때는 낮에와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
다.
처음 술집에 들어가 술을 주문할 때 그들이 주문할 수 있는 주종(酒種)은 지극히 제한적으로 변해 버린다.
거의 소주로 통일
~
대략 시간이 저녁 8시쯤이다.
'저는 맥주요, 저는 와인요, 저는 막걸리요, 저는 고량주요'식의 5인 5색 주문은
밤에는 아예 없고 팀장의 酒種선택에 복종한다.
점차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대화가 무르익어 갈 때쯤이면 그들의 목소리 데시벨이 점점 높아지고 높아진 목소리만큼이나 말의 진정성도
떨어졌
다.
과거에 막상 만나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바로 눈을 내렸던 내 두려움의 대상 인물을 이야기할 때도 거침없이 '내가 그때 그놈을 확 쥐어 패버리려다 옆에 사람들이 말려서 참았다'식의 허풍도 떤다.
그들이 메고 있던 넥타이가 삐딱하게 돌아가고 구두가 반쯤 벗겨질 때쯤에 한 사람이 술집 주인에게 맥주를 주문한다.
이번에도 팀장의 일방적 선택에 의한 주문이었다.
주문에서 맥주잔도 빠뜨리지 않았다.
주문한 맥주와 잔이 그들 앞에 놓이자 그들 중 한 명이 수저통에서 숟가락 하나를 꺼내든다.
숟가락을 거꾸로 든 그 사람은 그
숟가락으로
맥주뚜껑을 마치 솜털을 날리듯 천장으로 날렸고 날아간 병뚜껑은 "뽕"하는 소리와 같이 1~2초
허공에서 머물
다 땅으로 떨어진다.
조금 전 병뚜껑을 천장으로 날린 그 사람은 바로 주인이 놓은 맥주잔 5개를
자신
앞에 정확히 진열을 한다.
그리고는 아직 하얀 수증기를 뿜고 있는 맥주병을 들고 5개의 잔에 정확히 20%씩 부었다.
그리고
바로 소주병을 들고 비어있는 맥주잔을 기가차게 채운다.
잔끝이 찰랑인다.
매미눈 이란다.
"자아~ 각자 자기들 앞에 놓인 잔을 눈높이까지 드세요."
숫제 명령조다.
오늘, 지금 이 자리는 방금 폭탄주를 조제한 병권을 쥔 사람이 대장이다.
자신이 맥주와 소주의 병을 잡았으니 병권을 잡았고 그러니 내가 병조판서란다.
괘변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 병조판서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자자자~~
주목!!"
아무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고 있는데도 병권의 그 사람은 주목이라 외치며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게 하였다.
"자~
먼저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언제나 우리 팀원들을 위해 불철주야 부모님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돌봐주고 계시는 우리 팀장님 건배사를 듣겠습니다."
자리에 앉은 이후로 팀장님의 건배사는 지금이 세 번째이고 세 번째 건배사를 하는 팀장과 그 건배사를 듣는 팀원들은 마치 처음 말하고 처음 듣는 듯한다.
그들 손에 들린 비율이 기가차게 맞았던 폭탄주의 상당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들이 앉은 탁자옆으로 맥주 10병과 소주 10병이 속을 다 비우고 뚜껑을 열고 1열 종대로 줄을 맞춰 서있다.
그들 중 두 명은 눈을 감고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입에 손을 갖다 대고 있다.
곧 토할 기세다.
건배사를 하는 팀장님은 어느새 한국사람이 아니었다.
멀리 아프리카 어디에 있는 가봉 사람이 되어있다.
분명 한국말로 건배사를 하는데 그것은 팀장의 모국어가 아닌 아프리카 가봉의 말이었다.
팀장님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말하는 팀장님도 자신이 뭐라고 말을 하는지 모르고 있다.
2분여의 긴 건배사는 앞에서 하였던 그것과 내용은 똑같았고 다만 첫 번째는 한국어로, 두 번째는 일본어로, 방금 하였던 세 번째는 가봉어 3개국의 언어로 하였다.
딱 한마디 한국어가 나왔다.
!!!!!!!! 건배~~~
팀원들도 한국어로 답변한다.
!!!!!!!! 위하여~~~
건배사가 끝나면 지체 없이 잔에 반쯤 남은 술을 원샷으로 마시고 마신잔을 각자의 머리 정수리에 얹고 탈탈 털아야 한다.
내 잔은 내가 목숨을 걸고 마셨다는 병조판서와 팀장님에 대한 충성맹세였다.
노털카이다.
잔을 놓지 말고 마시고 머리에서 털고 카~아 소리를 내어야 폭탄주를 조제한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충성맹세주를 머리에서 내려놓은 그들의 모습이 제각각 다르다.
탁자에 엎드려 잠을 자는 사람
마주 보며 아직 못다 한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의 목소리 톤은 거의 청각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처럼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고 한 명은 일본말로, 다른 한 명은 가봉말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한 명은 고개를 숙이고 지나다니는 개미와 무슨 말을 그리도 심각하게 한다.
세 번째 같은 건배사를 하였던 팀장님은 택시를 타고 도망을 가셨다.
시간은 어느새 오늘을 어제로 만들어 놓았다.
탁자에서 엎드려 자고 있던 사람이 용수철이 튀듯 뛰어나가 화장실로 갔다.
오늘 자신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셨는지 궁금하였는지 변기를 붙잡고 일일이 확인하고 있다.
입사한 지 올해로 꼭 5년이 되는 이 대리였다.
화장실을 다녀온 이대리는 속은 좀 편해졌지만 머리는 빙빙 팽이돌 듯 돌았고 화장실에서부터 대여섯 번 양쪽의 벽과 깊은 포옹을 하고 나서야 일행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실 이대리는 체질적으로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하는 소위 비주류(非酒類)였다.
그것도 아주 심한~~~
술에 약한 집안 내력이었다.
그의 부친은 어떤 때 박카스를 마시고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숨을 가빠할 정도였고 그의 형제들과 4촌들이 성묘를 마치고 가지고 간 막걸리 반 병을 마시지 못하였다.
성묘를 한 형제들 수가 일곱 명이었다.
이대리가 자리에 앉고 10여 분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그는 조금 전처럼 탁자를 배게 삼아 잠을 청하였고 두 사람은 아직도 일본과 가봉어로 서로에게 뭐라 뭐라 하고 있고 한 사람은 바닥에 있는 개미와의 대화로 10분의 자유시간을 쓰고 있었다.
그들이 찬 손목시계가 새벽 한 시를 가르칠 때쯤에
병권을 쥔 병조판서 대감의
명령이 하달
된다.
" 자, 자 여러분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입 시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지금 시간이 1시가 넘었으끼네
오늘은 일단 집으로 가고 내일 다시 달립시더."
혀가 꼬였지만 대감의 명령은 추상과도 같았다.
병조판서 대감은 명령하달과 동시에 건너편 탁자에 엎어진 이대리를 흔들어 깨웠다.
이대리가 자신이 이승의 사람인지, 저승의 사람인지 조차 모를 만큼 의식이 없자 대감이 이번에는 바닥의 개미와 대화를 하고 있는 덩치 큰 친구에게 이대리를 좀 업으라고 하였다.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해 이리가고 저리 가는 사람한테 누구 한 사람을 업으라니.... ㅠㅠ
결국 업은 사람과 업힌 사람 모두 또 아스팔트 위에 주저앉아 기어가는 개미와 꽤 심각한 대화를 시작하였다.
4대의 택시가 그들 모두를 지금 있는 곳에서 집으로 데리고 간 것은 이제 집으로 가자는 병조판서대감의 명령이 하달되고 한 시간이 훨씬 지난 뒤였다.
다음날 아침 이대리는 회사 근처에 있는 약국에 들러 숙취해소용 드링크제 5병을 사서 한 병은 자신이 마시고 4병은 다른 동료들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정해진 출근 시간 5분을 남기고 나머지 3명이 출근을 하였고 팀장은 어제 병권을 잡은 사람에게 거래처에 들렀다가 조금 늦게 출근한다는 말을 남기고 아직 출근하지 않았다.
팀장이 거래처에 가지 않았다는 것은 부서직원들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
올해 들어 벌써 스무 번째 거래처 방문이란다.
12시 점심시간까지의 시간은 거의 거북이가 기어가듯 느리고 느렸다.
팀장이 늦게 출근한다는 소리를 들은 오 과장과 장 과장도 거래처 동향을 파악한다는 이유로 급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술 마신 다음날 그 두과장은 늘 자신들의 회사와 거래도 하지 않는 사우나와 해장국집의 동향을 파악하였다.
사무실에 혼자 남은 이대리는 오전 내내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야 했고 한 시간에 한번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하러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이대리가 혼자 구시렁거린다.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술을 뭐 하러 비싼 돈을 써가며 마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나는 앞으로 누가 대선(大選)에 나와서 우리나라에 금주령을 내리겠다 공약을 하는 후보한테 내 소중한 표를 던질 것이야.
아니 적극적으로 선거운동도 할 것이야'
혼잣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또 화장실로 뛰어갔고 그 화장실에서 거래처 방문 때문에 출근이 늦다는 팀장이 변기를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비주류의 비애가 깊이 느껴진 힘든 하루였다.
돌아와 자리에 앉은 이대리의 눈에 벽에 붙은 부서 일자별 스케줄을 적어놓은 게시판이 보였다.
딱 1주일 후 오늘의 자리에 [자재팀 회식]이라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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