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열 Sep 08. 2023

국시 꼬랑대기


마을사람들이 한 여름의 오후 4시를 알아내는 방법은 몇 가지가 되었다.

동네노인 몇몇은 어제 감아놓은 태엽의 힘으로 벽에 붙어 억지로 똑딱이며 가고 있는 낡아빠진 시계의 바늘을 보고 알았고 글을 배우지 못한 노인들은 들에 나갔던 당신의 딸과 며느리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알았다.

김을 매던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해가 중천을 지나 서산머리 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지금이 4시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이 자기 집 소를 몰고 산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4시를 알곤 하였다.


친구들은 학교에서 집으로 오자마자 각자 키우던 소를 데리고 한 곳으로 모여 산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소의 목에 걸려 있는 줄(우리 고향에서는 그것을 이까리라고 불렀다)을 뿔에 감아 소가 걸을 때 불편하지 않게 하고 산으로 올려 보냈다.

그것은 산에 지천으로 깔려 있던 억세지 않고 연한 나뭇잎과 풀을 소가 마음대로 뜯어먹을 수 있게 하려 함이었는데 희한하게 소들은 스스로 알아서 무리를 지어 높지 않은 곳에서 풀을 뜯었다.

가끔씩은 한 두 마리의 소가 무리에서 이탈하여 주인을 애태웠는데 그럴 때면 거의 가까운 산소에 가서 찾으면 소들은 그곳에 엎드려 되새김을 하고 있었다.


소들이 산에서 마음대로 나뭇잎과 풀을 뜯고 있을 때 아이들은 산에서 가까운 냇가에 모여 멱을 감았다.

하루종일 바깥에서 햇볕과 마주한 아이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새까맣게 그을렸고 눈과, 웃을 때 치아만이 하얀색을 띠었다.


두어 시간을 방목한 소들의 배가 불러왔을 쯤에 아이들은 산밑으로 가서 각자의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이 대략 오후 4시쯤이었다.


한여름의 오후 4시

내가 자라던 시골에서의 그 시간은 몇 가지의 의미가 있었다.


덥지 않을 때 시작한다며 이른 시간 논과 밭으로 나간 아낙들은 먼저 집으로 들어왔다.

함께 나간 남자들이 마무리를 하고 집에 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마당에 자란 풀을 뽑고 닭과 토끼에게 모이를 주며 집에서 허드렛일은 하던 나이 든 노인들은 당신들의 며느리와 딸이 집으로 왔을 때 어흠, 에헴하며 일부러 담뱃대를 재떨이에 탕탕 소리를 내며 털었다.


논과 밭, 두어 마지기가 전 재산이었던 우리 집은 소 한 마리 키울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덕분에 나는 아이들이 소를 방목하려 산으로 갈 때 괜스레 나뭇가지를 꺾어 걸음이 느린 친구집 소 엉덩짝을 후리며 그들을 따라갔다가 같이 멱을 감았다.


아이들이 소를 찾으려 산으로 갈 때 나는 바로 집으로 왔다.


소가 없었던 우리 집은 소가 하는 논과 밭일을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대신하셨다.

소가 매는 쟁기를 할아버지가 매고 앞에서 끄셨고 장정들이 잡았던 쟁기손잡이를 약하고 키가 자그마했던 어머니가 잡으셨다.

그 쟁기마저 그날 하루 쓰지 않는 이웃집에서 빌려서 쓰셨고 어머니는 쟁기를 가져다주면서 꼭 그릇에 콩과 팥을 담아 그 집에 주셨다.


내가 먼저 도착한 집은 절간처럼 고요하고 어쩌면 적막하였다.

낡은 사릿대문에 서있는 늙은 대추나무에서 매미라도 울지 않았으면 자칫 귀에서 띵 소리가 났을지도 모른다.


"때~롱, 때~롱......."

해 질 녘에 우는 매미소리는 이른 아침과 한낮에 우는 그것과는 소리가 달랐다.


"종열아

인자 곧 니가 좋아하는 라지오(라디오) 연속극 할낀데 니 들어야 안되나?"


우리 집과 담하 나를 사이를 두고 있는 나와 10촌이 되는 아지매가 담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나를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그때 나는 아지매가 불러주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소 한 마리, 쟁기하나 없었던 우리 집에 라디오가 있을 리는 만무하였다.


그래도 다행히 담 넘어 사는 10촌 아지매집에 라디오가 있었고 또 다행히 그 아지매가 4시가 되면 나를 불러 라디오를 듣게 해 주셨다.

그때 나이가 어린 나였지만 어른들이 라디오 약(건전지)을 아낀다며 딱 듣는 것만 듣고 얼른 라디오를 꺼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아지매한테 라디오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마당에서 노는 척을 하였지만 내 온 신경과 귀는 담에 가 있었다.

아지매가 종열아 하며 불러주시기만을 기다린 것이었다.


아지매가 틀어주신 라디오에서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연속극이 흘러나왔다.

"달려라 마루치

날아라 아라치

태권동자 마루치~~"


태권동자 마루치.

소년 마루치와 소녀 아라치는 태권도로 집채만 한 바위를 깨부수었고 정의롭지 못한 파란해골13호와 팔라팔라 사령관을 용감히 무찔렀던 나의 영웅이었다.


아지매집 라디오에서 마루치가 달리고 아라치가 날았던 20분의 시간은 2분 같이 빨리 지나가 버렸고 아지매는 이내 약이 닳는다는 이유로 딸깍 라디오를 꺼버렸다.


아지매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걸어서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마루치를 들은 나는 늘 마을을 한 바퀴 빙 돌아서 집으로 왔다.

일부러 마을길 옆에 있던 바위에 올라가 마루치, 아라치가 날았던 것처럼 나도 날아서 땅으로 내려왔고 땅에 착지한 내 눈에서는 빛이 났다.


그때쯤 우리 집 마당에서는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부엌에서 가까운 마당에서 어머니가 솥 아궁이에 불을 붙여 때고 계셨다.

여름이 시작되고 날씨가 더워지면 부엌 아궁이는 휴점을 하고 그때부터 마당에 있는 솥이 개업을 하였다.

그 개업은 날씨가 다시 차가워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궁이에서 타는 불은 들에서 막 돌아오신 어머니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더 굵게 만들었고 어머니는 그것을 머리에 두르고 계셨던 수건으로 닦으셨다.


"우리 열이 왔네.

엄마가 오늘은 국시한데이"

내가 마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지도 않고 어머니는 아셨다.


어머니는 들에서 집으로 오자마자 밀가루를 물에 불려 홍두깨로 손국수를 만드셨다.


"엄마

국시꼬랑댕이는?"


나는 제사보다 젯밥에 더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국수도 물론 좋아하였지만 그것보다 국수 앞저트(?)로 만들어지는 국수꽁지가 나는 더 맛이 있었다.


홍두깨로 밀어 국수를 만든 끝자락을 어머니는 그것을 솥에 넣어 삶지 않고 아궁이 불에 넣어 구워주셨다.

내가 그것을 너무 맛있게 잘 먹는 것이 좋으셨는지 일부러 꽁지를 많이 남겨 아궁이에 넣으셨다.


다른 친구들은 형제가 많아 그 꽁지를 가지고 쟁탈전을 벌였지만 형제가 없었던 나는 그것을 독식하였다.


불속에 던져진 생밀가루 꽁지는 얼마 되지 않아 톡톡 소리를 내며 굽혀졌고 적당히 익혀진 그것을 부지깽이로 꺼내어 어머니 입으로 호호 불어 식혀주셨다.


독식가 나는 마당아궁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 그 국시꼬랑대기를 조금씩, 천천히 음미해 가면서 먹었다.

혼자서 여유롭고 에지 있게......


국수가 삶기는 시간 어머니는 조금 전 들에서 베어서 온 풀과 꺾어 온 소나무 가지에 불을 붙였다.

억지로 불을 붙인 마르지 않은 생풀과 생나무에서는 하얀 연기가 뭉개 뭉개 피어올랐고 그 연기는 이내 온 마당을 가득 채우고 빙빙 돌며 하늘로 올라갔다.

그때쯤 마을 집집마다 연기가 마당을 돌아 하늘로 뭉개 뭉개 피어올랐다.


우리 마을에서는 그것을 찌깨불이라고 하였다.


마땅히 모기를 쫓을 약이 없었던 그때 그것이 유일한 해충방제약이었다.


국수가 다 삶겼을 무렵 그 찌깻불은 절정으로 타며 마당을 돌아 하늘로 올라갔고 어머니는 늘 연기가 없는 곳으로 나를 앉히셨고 당신은 연기가 가장 많이 오는 곳에 앉아 눈물을 흘리셨다.

그때의 나는 엄마는 원래 그렇게 하시는 줄 알았다.


국수를 먹고 있는 동안 마당옆 감나무에 왕거미가 줄에 매달려 흔들거리며 여름밤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찌깻불이 꺼질 때쯤

까만 하늘에 나풀거리며 불빛이 날아들었다.

반딧불 가족들이 밤마실을 나왔다.


얼마 전 가족들이 다 모였을 때 내 어렸을 적에 이렇게 살았고, 그런 것을 먹었다고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하였더니 글쎄......

"아빠,

밀가루에 탄수화물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리고 불에 직화로 구운 탄 음식은 발암성분이 또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그래도 아빠는 너희한테 없는 추억이 있다.

탄수화물, 직화음식을 그렇게나 먹었어도 아직 죽지 않고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이 눔 들아~~


그때 들었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를 한번 더 듣고 싶다.

그때처럼 찌깻불이 피어오르는 마당에 누워 쏟아질 듯 많은 밤하늘 별을 한번 더 보고 싶다.

그때 나풀거리며 하늘을 날던 반딧불을 한번 더 보고 싶다.

그때 어머니가 구워 주셨던 까맣게 탄 국시꼬랑대기를 한번 더 먹고 싶다.


아~

어머니가 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