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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Oct 25. 2023

사발 못찌

한 여름의 따가운 햇살은 사람과 짐승을 구별하지 않았다.

햇살은 사람의 머리와 짐승의 등을 구별하지 않고 내려앉아 하늘아래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힘들게 하였다.


전기의 문명이 없던 마을사람들과 짐승들은 자연이 준 한 여름의 뜨거움을 자연에 기대어 식혀야 했다.


그 뜨거움이 절정에 달할 시간 즈음에 젊은 남정네들은 일하고 있던 논과 밭에서 가까운 냇가나 개울로 가서 옷을 입은 채로 들어가 몸을 식혔다.

어차피 그 옷은 땀에 젖을 대로 젖어 물에 젖은 것인지 땀에 젖은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동네에서 가장 큰 산 밑으로 흐르는 거랑(강)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헤엄을 치며 오고, 왔던 길을 다시 갔다.

아아들이 헤엄치며 오가는 강의 수심은 키 큰 어른의 두어 배는 넘었고 수심이 깊은 어떤 곳은 강의 밑바닥이 파랗다 못해 시커멓게 보이는 곳도 있었다.


여름 내내 그렇게 태양의 빛을 그대로 받은 아이들은 눈과 이를 빼고 전부가 까맸다.

아이들은 어렸지만 윗물 얕은 곳에서는 여자아이들이 물가에서 옷을 입은 채로 땅을 짚고 헤엄을 쳤고 사내아이들은 그보다 더 아래 물이 깊고 물살이 빠른 곳에서 발가벗고 헤엄치며 놀았다.

남녀가 유별하였다.


조숙한 어떤 여자아이는 벌써 가슴이 꽤나 부풀어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나 저렇게나 더위를 피하였지만 소나 개는 그저 앉고 엎드린 채로 한여름의 햇살과 마주하고 있었다.

외양간과 부뚜막에서 혀를 있는 대로 빼내고 학학대고 헉헉대며 몸속에서 더위를 뱉어내고 있었다.   


사람과 짐승의 기운을 있는 대로 다 빼앗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도 시간은 이기지 못하였다.

온 마을을 불덩이로 만들었던 해는 마을을 남겨둔 채로 뒷산으로 넘어가면서 노을의 향연을 주었다.

노을의 향연은 짧았고 칠흑의 어둠은 길고 깊었다.

그 칠흑의 어둠을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억지로 밝혔지만 태양의 그것과는 비교할 바는  못되었다.


그즈음 저녁을 일찍 먹은 일곱, 여덟의 아낙들은 동네 회관에서 모여 마을에서 꽤나 떨어진 강가로 갔다.

달이 없는 그믐의 밤인데도 아낙들은 누구 하나 돌부리에 걸리지 않고 밤길을 낮길처럼 능숙하게 걸었다.

태어나고 수백 번을 걸었던 길이라 눈으로 보지 않고 感으로 밤길을 보았다.


적막에 쌓여있던 강가에 아낙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그들이 목욕을 마칠 때까지 마을에 남자라고 생긴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 강가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낙들의 웃음소리가 그친 밤의 강가에는 다시 적막에 잠겼고 어쩌다 들리는 흐르는 물이 돌에 부딪히는 소리마저 없었다면 침묵은 지옥과 다름이 없었을 것 같았다.


어둠은 더 깊어졌다.


그때쯤 마을부근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왁자지껄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의 가운데로 나뭇가지에 감은 천에서 타고 있는 횃불이 두어 개 보였다.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는 횃불의 숫자보다 족히 다섯 배는 넘어 보였다.


일렁이며 보이는 횃불과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는 마을에서는 멀어지고 조금 전 아낙들이 밤 멱을 감았던 강가에서는 가까워졌다.

일순간 지옥과도 같이 깊이 잠겨있던 강가의 적막도 깨졌다.


아이들 중 집아이는 하나도 없고 열명 남짓 되어 보이는 아이 전부가 사내아이들이었다.


밤 강가에 모인 아이들은 이번에는 낮에와 달리 수심이 깊은 곳으로는 가지 않고 물이 무릎쯤 오는 강의 언저리 부근에 모여 섰다.


열 명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양푼이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한 손으로 들고 어떤 아이는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다.


잠시 후

두 개의 횃불이 양쪽으로 갈라졌고 횃불 한 개에 아이들 다섯 명씩 붙었다.


한 무리가 먼저 그들이 모였던 곳에서 20여 m 떨어진 곳까지 강의 위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한 무리는 반대편으로 20여 m 걸어갔다.


흩어진 아이들은 횃불잡이가 불을 비추면 그곳에 들어가 돌을 들어내고 흙은 파내서 웅덩이를 만들었다.

웅덩이는 클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작을 수도 없었다.

손에 들고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던 양푼이가 묻힐 만큼이면 충분하였다.


첫 번째 아이가 정성스럽게 웅덩이에 양푼이를 묻고 이내 두 번째, 세 번째 아이가 똑 같이 횃불잡이가 비춰준 곳에 양푼이를 묻었다.

아이들은 양푼이를 묻는 내내 말을 하지 않았고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면 입을 귀에 대고 속삭였다.


밤에 물고기들이 예민하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곳으로 흩어졌던 아이들이 각자의 양푼이를 다른  웅덩이에 묻고 다시 한 곳으로 다시 모이는 시간은 거의 비슷하였다.


횃불잡이 아이가 손으로 가자는 표시를 하면 다른 아이들은 일사불란하게 그곳을 소리 없이 빠져나갔다.

야밤에 몰래 적의 기지에 침투하는 특공대원 같았다.


강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마을이 가까워질 때쯤부터 아이들은 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너그 내일 아침에 5시까지 회관 앞에 와야된데이~

만약에 늦는 사람이 있으마 가 사발못찌는 내사 모린데이"


다른 아이들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한여름의 새벽 다섯 시


아직 해는 어제 자신이 넘어갔던 반대편의 산 뒤에서 '나 이제 곧 나타날 거야' 하듯 붉은빛을 마을로 비추고 마을 어귀에 피어 있는 노란 호박꽃잎 속에는 새벽잠 없는 벌이 노란 가루를 뒤집어쓰고 꿀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회관 옆 감나무 위에 종다리가 짹짹이며 궁둥이를 까불거리고 그 위로 하얀색 배를 보이며 제비 한쌍이 자태를 뽐내며 날아간다.

싸리로 만든 대문 위에 앉은 잠자리는 아직 날개를 축 내린 채 자고 있다.


열 명의 아이들 전부가 어제 횃불잡이 아이가 일러준 마을회관 앞에 다시 모였다.

가장 먼저 온 아이와 가장 늦게 온 아이와의 시간은 기껏 1~2분 남짓 차이가 났다


마을을 벗어난 아이들 눈에 한여름 새벽강이 만들어 낸 신기루가 보인다.


강가에 내려앉은 하얀 물안개 저쪽에는 목욕을 하고 승천(昇天) 준비를 마친 선녀가 날아오를 것 같은 신비감이 있었다.


사방이 고요하다.

한나절 내내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도 아직은 깨지 않았다.


강에 도착한 아이들은 어젯밤과 같이 두 곳으로 흩어져 어제 자신이 파고 묻었던 양푼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방향감, 거리감이 떨어졌던 나는 전날 밤에 내가 양푼이를 묻은 곳에 돌무덤으로 표시를 해두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하나같이 발 뒤꿈치를 들고 살금 거리며 그곳으로 걸었다.


아이들은 묻혀있는 양푼이를 멀리서만 보아도 어젯밤 자신의 일 성공, 실패여부를 대충은 알 수 있었다.

보이는 양푼이가 하얀 색이면 꽝이고 까만색이면 대박이란 것을............


일순간 아이들 얼굴이 10인 10색의 모습으로 변한다.

야호 거리며 팔짝팔짝 뛰면서 건지는 아이들의 양푼이는 까만색이었고 시무룩하게 그저 건진 아이의 양푼이는 하얀색이었다.


어젯밤 아이들 손에 강에 묻히고 오늘 아침 아이들이 건진 그 양푼이....

사발못찌이다.


아이들은 양푼이 안에 깜둥보리밥 한 숟갈과 된장을 넣고 그 위를 비닐로 덮었다.

집에 논과 밭이 좀 있는 아이는 보리밥을 양푼이 안에 듬뿍 넣었고 여의치 못한 아이의 양푼이는 밑이 보였다.

마음씨 좋은 어떤 아이는 집에서 나올 때 보리밥을 여유 있게 가지고 와서 밑이 보이는 친구 양푼이를 채워 주기도 하였다.


덮인 비닐 한가운데에 5백 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을 내고 밥과 된장을 잘 섞은 후 흐르는 강물 가에 웅덩이를 파서 양푼이를 묻었다.

이때 양푼이 안에 공기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

자칫 물고기가 동전구멍으로 들어가려는데 구멍으로 물방울이라도 나오면 그날 그 양푼이 안으로 물고기가 다시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아이들은 그리 알았다.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양푼이 안에 섞인 밥과 된장이 물아래로 냄새를 솔솔 풍기면 고기들이 뚫린 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어 양푼이 속으로 들어간다.

한번 들어간 물고기가 머리를 위로 해서 다시 나올 IQ가 되지 못한다는 약점을 동네 아이들이 이용한 것이 사발못찌이다.


밤새 묻혀 있던 사발못찌에 물고기가 가득 들어가 있으면 물고기 등이 보여 까맣게 보이고 물고기가 들어있지 않으면 양푼이 밑 색깔인 하얀색이 보인다.


먹을 것이 귀했던 그때 내 어머니는 매 끼니를 걱정하셨다.

우리 집 형편을 잘 아는 우리 식구 누구도 탓을 하지 않아 밥이야 매일을 깜둥보리밥으로 지어도 되었지만 문제는 반찬이었다.

 - 그때 먹은 보리밥에 질려 사실 나는 지금도 보리밥은 먹지 않는다.

매번 호박잎 삶은 것과 끓인 된장

1년 내내 밥상 위에 오르던 김치와 삶은 완두콩


밥상을 책임지셨던 어머니 입장에서는 나의 할배, 할매이신 시부모께 드리는 하루 세 번의 밥상이 왜 부담이 되지 않으셨을까?


그런 어머니의 부담을 내가 잡아온 물고기가 조금은 덜어 드렸다.

내 사발못찌에 물고기가 가득한 날 어머니는 웃으셨고 내 사발못찌 사업이 꽝이 되던 날 어머니는 웃지 않으셨다.


어머니의 웃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어린 나는 사발못찌를 건지러 갈 때 누구보다 발뒤꿈치가 높이 들었고

입에 침이 말랐다.


내 사발못찌가 까만색이기를 바라고 바라면서 물안개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내 사발못찌는 까만색일 때 보다 하얀색일 때가 더 많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많지는 않았지만 내가 들고간 양푼이를 받아 드신 내 어머니는 그래도 '니한테 잡히는 물고기도 다 있더나?'하며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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