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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열 Nov 28. 2023

사람의 생각과 강아지 생각

< 우리 집 강아지 누누 >

지금껏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어떤 사안을 가지고 다투어 본 적이 없었다.

다투기는커녕 의견이 달라 본 적도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투거나 의견이 맞지 않았던 기억이 없다)


왜 각자의 생각이 다르지 않았겠는가?

왜 주장하고 싶은 자기말이 있지 않았겠는가?


그렇지만 우리 가족들은 그때마다 이미 대세로 보이는 것과 정해진 것에 빠르게 순응하고 적응하였다.

자기 생각과 의견을 크게 주장하지 않았다.


한 예로 내가 아직 현직에 있었을 때 가족들과 저녁외식을 하기로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들은 중학생, 초등학생이었다.


식사메뉴를 아이들이 정하였으니 지들딴에는 얼마나 저녁외식에 대한 기대가 컸을까?


그런데 그날 퇴근을 하려고 지점장실에 가서 퇴근인사를 하는데 지점장님이 갑자기 그러셨다.

" 오늘 저녁에 팀장들과 회식을 하려고 해.

이 팀장이 식당 좀 알아보고 예약 좀 해놔 "


사전에 공지된 바가 없는 그야말로 적흥적인 지점장님 생각이었다.

지금이야 ' 안됩니다 지점장님, 오늘은 가족들과 약속이 있습니다. 내일 하시죠 ' 하였겠지만 그때는 지점장님 말씀은 곧 임금님의 어명이었고 이를 따르지 못하거나 어기면 반역자(?)로 몰려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 큰일이다.

아이들이 실망이 클 텐데 ㆍㆍ'


걱정되는 마음에 집으로 전화해서 이렇고 저렇고 상황설명을 하였다.

아이 셋은 모두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내가 퇴근해 오기만을 기다렸나 보다.

따가운 원망의 소리를 각오하였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큰 딸이 의외로 시크하게 대답하였다.

" 아빠 괜찮아.

다음에 아빠 시간 될 때 가자.

오늘은 우리끼리 집에서 먹을게 "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지금 징징해 봐야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일찍 깨우쳤는 모양이었다.


지들이 미리 봐 놓았다며 옷을 사달라고 할 때도 그랬다.

옷이 있다는 백화점에 와서 보니 그 옷이 없었다.

이미 팔렸거나 매장에서 철수를 하였나 보다.


내가 말했다.

" 딸!

딸이 찾던 그 옷이 오늘은 없다고 하네.

우리 다음에 살까? "

짜증과 투정을 각오하고 말했다.


딸이 답했다.

" 응, 아빠!

꼭 오늘 사지 않아도 돼.

담에 내가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그때 아빠한테 사 달라고 할게  "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너무 일찍 철이 든 것이 아닌가 안쓰럽기도 하고 남을 위한 배려가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싶어 살아갈 날들이 걱정되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아이들만 지들 부모에게 일방 양보 한 것은 아니었다.

나 또한 아이들이 원하는 것에는 내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아이들한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런 잔소리는 아내의 몫이었지만 설사 내 몫이라고 해도 나는 그런 잔소리를 하는 것 자체가 싫었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관심이거나 방임은 절대 아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까 우리 가족들은 서로에게 약속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물론 대부분의 약속은 지켜졌지만 피치 못한 사정에 의해 지켜지지 못한 약속은 기꺼이 인정을 해주고 그것에 대하여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나와 가족들 간에 이견(異見)이 생기는 일이 하나 생겼다.

우리 가족으로 강아지(강아지 이름이 누누다)가 입양되어 오고부터였다.


어릴 때 내가 시골에서 자랄 때 키우던 강아지가 누군가 놓아둔 쥐약을 먹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던 나는 집에 강아지를 들이는 것 자체가 썩 내키지 않았다.

아내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아내의 이유는 성가시다는 이유였다.


아이 셋이 간절히 강아지 입양을 원해서 나와 아내는 지들 뜻에 따르기로 하였다.

물론 아이들한테 조건 두 가지를 붙였다.


그 조건 첫 번째가 집안에 강아지 털이 날리지 않게 할 것이었다.

두 번째는 강아지는 전적으로 너희들이 키워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 조건이 지금은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고 하는 것 같이 무겁지 않은 민들레 홀씨 같이 가벼운 약속이 되어 나와 아내가 전적으로 전담하여 누누를 키우고 있다.


아이 셋 모두 독립하여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첫 번째 조건의 약속을 지키려 견종을(犬種) 푸들로 결정하였다.

푸들은 털이 잘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이 공부를 하였는 것 같고 실제 지금까지 거실에서 누누의 털을 본 적은 없었다.


두 번째 조건도 아이 셋이 번갈아 가면서 먹이도 주고 산책도 시키고 배변의 뒤처리도 깔끔하게 하였다.


나와 아내는 강아지에 관한 한 성가신 것이 하나 없이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문제가 생겼다.

가족들이 같이 식사를 하거나 간식을 먹을 때였다.


누누가 식탁 밑에서 식사하는 우리 가족들을 애처로운 눈빛을 하며 쳐다보면서부터 사달이 났다.


나를 제외한 네 식구 모두는 그런 누누를 그림자 취급을 하면서 각자의 식사를 하였다.

문제는 나였다.


나는 그런 누누를 외면하기 힘들었다.

차마 누누의 애처로운 눈빛을 못 본척하고 내 입에 음식을 넣을 수가 없었다.


내가 먹던 밥알 하나를 누누에게 건네주었다.

아이 셋 중 가장 쏘가지가 있는 둘째 딸(둘째 딸은 어릴 적부터 목소리 톤이 딱딱 거려서 별명이 딱새이다)이 밥알이 내 손을 떠나고 이내 기습적으로 나에게 쏘아 붙였다.

말 끝이 똑 부러지는 것이 영락없는 딱새의 목소리였다.


"아빠 지금 뭐 하는 거야?"


"으응?

와?

누누한테 내가 먹던 밥한 톨을 주었는데 뭐가 잘못됐나?"


이때까지 나는 방금 내가 한 행동의 사태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에서 키웠던 누렁이는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전부 처리하던 것을 보고 자란 터이라 나는 강아지가 원하는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누렁이 말을 아이들한테 하였다.


내 말이 아직 내 입에서 다 떠나지 않은 시간에 딱새의 두 번째 미사일(?)이 연이어 내 귀에 내려앉았다.

" 아빠!

사람이 먹는 음식하고 강아지들이 먹는 음식은 완전히 달라.

사람이 먹는 음식은 짜고 매운 간이 들어가 있고 강아지들은 이런 간 된 음식을 먹으면 큰일이 난다 말이야.

아빠가 말씀하는 그 누렁이 같이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살았던 옛날의 강아지들은 그래서 전부 단명을 하였던 거야 "


여전히 말이 똑 부러지고 날카로웠다.

말투만 달리해서 큰딸과 막내아들놈까지 딱새말에 공조하며 나를 협공하였다.


" 그치만 누누의 저 눈빛을 어떻게 모른 척하노?

나는 애처롭고 가엾어가 눈을 볼 수가 없다.

인자는 쟈가 불쌍하기까지 하다."


내가 시선을 누누한테 두고 말했다.


" 아빠!

알았죠?

이 시간 이후로 누누 밥 말고 아빠가 드시는 그 어떤 음식도 주면 안 돼 "

내 말은 무시하고 딱새가 계약서 내밀듯 말을 내밀었다.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요새 세상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한 측은지심이 자꾸 들고 그 측은지심이 누누도 예외는 아니었다.


침묵하고 있는 나한테 딱새가 대답을 강요한다.


" 대답해요.

어서 "


" 알았다.

안주꾸마"


대답하는 나조차 방금 한 말을 지킬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고 듣는 딱새도 내 말을 신뢰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날 이후로 가족 중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할 때면 나는 의식적으로 누누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누누의 애처로운 눈빛과 내 측은지심이 만나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일은 어쩌다 나 혼자 식사( 간식 때도 )할 때 생겼다.

나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이 식사를 할 때는 식탁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던 누누가 어떻게 내가 무엇을 먹을 때면 귀신같이 나와 내 발밑에 선다.

나를 쳐다보며 애처로운 눈빛을 나한테로 쏘아 올린다.

' 아빠

 입만ㆍㆍ

제발 '


견언(犬言)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누누가 분명 지금 나한테 이렇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 안된다 누누

누나하고 니 형한테 주지 않기로 약속했뿟다."

내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측은지심을 억지로 누르면서 누누한테 말했다.


' 아빠

그러지 말고 딱 한 입만 줘.

지금 누나, 형들 모두 자고 있어.

이건 아빠와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야 '


누누의 애처로움이 아까보다 더하다.

분명 지금 나는 밥을 먹고 있지만 모래를 씹는 것 같고 먹고 있는 사과가 돌을 먹는 것 같다.


누누의 애처로운 눈빛이 약(弱)에서 강(强)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내 눈에 들어온다.


' 그래

과일은 간이 되지 않았으니까 조금은 줘도 되겠지 뭐 '

은지심이 자기 합리화라는 포장지에 포장되어  마음을 비집고 나왔다.


사과 한 조각을 입에 넣어 주었다.


순식간에 누누의 입에 들어간 사과가 아싹 소리를 내며 입속에서 사라졌다.

분명 내가 먹을 때 나던 아싹 거리는 소리와는 조금 달랐다.

너무 맛있게 먹길래 대여섯 조각을 주었고 그 조각의 크기도 점점 커졌다.


마지막 여섯 번째 누누가 먹었던 사과가 배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들의 방문이 열렸다.

나를 바라보는 아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 아빠 방금 누누한테 먹을 것을 줬죠? "


이럴 때는 손자병법에서 말한 36계 줄행랑이 최고다.

시치미를 떼는 것이 최고다.


다행히 누누는 사람의 말을 할 줄 모르고 입안에 사과는 흔적도 없이 뱃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 아이다.

내 안줬다."


거짓말에 익숙지 않은 나는 거짓말을 할 때 말이 조금 느리고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것을 아들이 또 용케 알고 있었다.

" 방금 내 방에서 들었는데 그 소리는 분명 아빠가 사과를 드시는 것과는 소리가 달랐어요.

솔직히 누누한테 사과 줬죠? "


생각보다 집요하고 끈질기다.


모든 것이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편해지는 법이고 거짓말도 그랬다.

이왕지사 NO라고 했으니 끝까지 NO라고 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고 침을 꼴깍 삼켰다.


" 안 줬다 안카나 "

단호하려 애를 썼지만 말이 단호하지 못하였고 흔들리지 않으려 하였지만 눈빛이 흔들렸다.


나와 공범인 누누는 이 자리에 있으면 본전도 되지 않겠다 생각했는지 슬슬 꽁무니를 빼더니 소파 끝자락에 납작 엎드려 자는 척을 했다.


' 저런 비겁한 놈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지 혼자........

우이씨 '


" 아빠

내가 방금 아빠가 누누한테 사과를 줬다는 증거를 대어 볼까요? "


헐 무슨 증거씩이나...... ㅠㅠ


' 그래 오늘 끝을 보자.

방금 먹은 사과는 이미 누누 뱃속에서 소화과정을 거치고 있을 것인데 증거라니

증거는 이미 인멸되고 없어. '


" 그래 증거대 봐라 "

이번에도 말이 더듬어지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 첫째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아빠가 사과를 씹을 때 나는 소리와 누누가 씹을 때 소리는 완전히 달라요

아빠는 입을 다물고 씹고 누누는 입을 다물지 못해서 그 소리가 달라.

둘째

지금 누누의 입가에 사과물이 묻어 있는 거 아빠 보이죠?

셋째

지금 여기 바닥에 누누가 먹으면서 튀긴 사괏물이 있잖아요.

그리고 빼도 박도 못하는 마지막 결정적인 증거하나

아빠는 거짓말을 하실 때 표시가 나 "


진짜 누누가 있었던 자리에 사괏물이 조금 튀어 있었다.

완전범죄 이거 아무나 하는게 아니구나.


가슴이 답답하고 입에 침이 말랐다.

아들의 치밀한 증거 앞에 나는 36계고 시치미고 주장을 할 수가 없었다.


' 그래

이쯤 되면 시치미는 뻬고 대신 뻔뻔함으로 무기를 대체해서 맞서 싸우자 '  


"그래 쪼매 주기는 했다.

근데 사과는 간도 되지 않았고 많이 준 것도 아이고 몇 조각 줬는데 그거 가지고 이카나? "


이제 쨀바가 없다.

말이 단호하였고 눈빛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 앞에 뻔뻔함이라는 무기가 몇 겁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기가 찼던지 아들이 갑자기 지 누나들을 불렀다.


딸 둘이 영문도 모르는 체 나와 아들 앞에 섰다.

아들이 이렇고 저렇고 방금의 상황을 설명하니까 큰딸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았고 둘째 딸 딱새는 표독한 얼굴과 말로 나한테 속사포를 쏘아 대었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숫적 열세임에도 내가 말했다.


" 사람이고 동물이고 태어나서 살아가는 목적이 행복할라꼬 사는거 아이겠나?

어떤 이는 여행이 행복하고 어떤 이는 명품을 살 때가 행복하고 아빠는 친구들과 골프를 할 때가 행복하데이 "


아이 셋의 눈 6개(아니다 아들이 안경을 썼으니까 8개다)가 내 눈을 매섭게 쳐다보고 있었다.


" 만약 아빠가 너그한테 휴대폰이 눈 건강에 좋지 않으끼네 휴대폰 하지 마라

너희 셋다 좋아하는 콜라가 몸에 좋지 않으니까 먹지 마라

너그가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 자동차가 위험하이까 가지 마라 이카믄 너그 좋겠나? "


아이들 눈빛에서 빛이 났다.

마치 내가 지금 지들한테 괴변이라도 늘어놓는 것 같은 표정이다.


말 나온 김에 다하자.

" 누누는 태어나서 딱 두 가지 행복밖에 없다 아이가

번째가 너희가 산책을 데리고 나갈 때고

두 번째 지가 무엇을 먹을 때다 아이가.

누누가 여행을 가기를 하나, 콜라를 먹기를 하나, 휴대폰을 보기를 하나?

그러이 쪼매씩만 주자.

응? "


내 말을 다 들은 딱새가 짧게 한마디 하였다.


" 그래도 주지 마

아빠 "


나도 짧게 답했다.

" 응 "


완전 깨갱이다.


소파 끝에서 자는 척하던 누누가 제법 코까지 골면서 잔다.


'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누무 시키 '


우리 집은 원래 의견다툼이 거의 없었다.

이미 정해진 대세는 잘 따른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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