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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입에 두 말

一口二言

by 이종열

오늘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 (퇴직하기 전 같은 직장에 다녔던 동갑내기 친구 )가 약속시간보다 20여분을 늦게 도착하였다.

이 친구와 단 둘이 만나기로 하였으면 조금은 낭패였겠지만 다른 친구 둘과 같이 만나기로 하였으니 이 친구 늦은 20분은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저 같이 점심 먹고 수다만 떨면 되는 것이었으니까ㆍㆍ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늦은 친구가 투덜투덜 댄다.

미리 와있던 친구 셋이 묻지도 않은 늦은 이유를 셀프로 이야기도 한다.

늦을 수도 있지 하는 셋한테 구태어 늦은 이유를 말하겠다는 친구한테 그래 한번 들어나 보자고 하였다.


그 친구 말은 그랬다.

친척 중에 별로 좋아하지 않은 친척 아저씨뻘 되는 사람이 그제 연락도 없이 자신의 집으로 왔다고 했다.


반갑지 않은 사람의 급작스런 방문

말하자면 불청객이 온 셈이었단다.


그래도 싫다는 표시는 할 수가 없어 반가운 척하면서 커피를 내어 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였는데 도무지 갈 생각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가겠다고 한 그 친척한테 아뿔싸 ~

친구 와이프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고 하였다.

' 지금 시간이 어중간하니 오신 김에 점심식사를 하고 가시라 ' 하였더니 그 아저씨는 일말의 주저함 없이 다시 앉으시더라고 하였다.


와이프도 그 친척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고 그저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는데 친척이 기다렸다는 듯 다시 앉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도 한참을 더 있다가 조금 전 가셨는데 보내 드리고 바로 왔다는 것이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데로 말을 못 하는 것일까?

아니

왜 자주 자신의 생각과 반대로 말을 하는 것일까?

천계( 天界 )에 인간들을 관장하는 神이 있었다.

그 신은 천계에서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을 기록하여 보고하는 神, 이른바 보조 신의 말을 듣고 인간계의 실황들을 듣고 판단을 하여 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천계의 신이 문득 자신의 눈으로 직접 인간계의 생활상들을 보고 싶어 보조 신을 대동하고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

신이 도착한 인간의 마을은 꽤나 추운 날씨를 하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던 한 인간이 발을 동동 구르며 손을 자신의 입 가까이로 가져가서 호호 불고 있었다.


신이 보조 신에게 물었다.

"저기 있는 저 인간은 왜 입으로 손을 호호 불고 있느냐?"


보조 신이 대답을 하였다.

"신이시여

저 인간은 손이 시려 자신의 손을 따뜻하게 하려고 입으로 손을 불고 있나이다"


신이 그 자리에서 인간들의 생활상을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른 인간이 갓 구워낸 고구마를 사서 껍질을 벗기고 입으로 호호 불어 고구마를 식히고 있었다.


신이 보조 신에게 다시 물었다.

"저기 저 인간은 왜 고구마를 입으로 호호 불고 있는 것이냐?


이번에도 보조 신이 대답을 하였다.

" 신이시여

저기 저 인간은 자신이 먹으려고 하는 고구마가 너무 뜨거워서 차갑게 식히려 저리 불고 있나이다"


신이 궁금하여 보조 신에게 다시 물었다.

" 그대여

신기하도다.

조금 전의 인간은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하려고 입으로 손을 불고 지금의 인간은 뜨거운 고구마를 식히려 입으로 불었다니 어떻게 입은 하나인데 그 입이 차갑게도 하고 따뜻하게도 하는 것이냐? "


보조 신이 다시 신에게 말을 하였다.

" 신이시여

본래 사람의 입은 한 입으로 두 가지 일을 하기도 하고 한 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하기도 한답니다.

인간이란 본시 그런 존재이옵니다 "

하였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말을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그런 말을 듣기도 한다.

사람들의 그런 이중적 말과 행동들은 우리 주변에 차고 넘친다.


거의 10년 만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별로 친하지 않았던 옛 동료를 만났을 때 우리 다음에 밥 한번 같이 먹자고 하는 인사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처음 통화한 콜센터 직원이 하는 '사랑합니다. 고객님'하는 인사말도 그런 경우이고 지긋지긋하였던 군 생활을 전역하는 군인이 후임들에게 '이곳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꼭 한번 놀러 오겠습니다.' 하는 작별인사도 꼭 놀러 오겠다는 인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는 일일 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도 마음에 없는 말들이 수시로 오간다.

어느 설문조사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들한테 하는 거짓말 1순위가 '며느라, 나는 네가 꼭 내 딸 같구나'하는 것이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들한테 하는 거짓말 1순위가 '어머님, 하루만 더 쉬셨다가 가십시오'라고 하는 웃픈의 소리도 있다.


그렇다고 오늘 늦게 나온 친구의 부인이 가려고 일어서는 친척에게 '예, 어서 가십시오'라고 인사를 하는 것이 맞을까도 싶다.

그저 점심이라도 드시고 가라는 친구 부인의 말을 인사치레로 잘 알아듣지 못한 친구의 친척이 조금은 아쉬울 따름이다.


신이 인간들을 창조하실 때 이미 두 가지의 말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한 개의 입에서 나오는 상대의 말을 잘 가려져서 듣고 잘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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