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리가 저려서 정형외과를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과거에 허리를 다쳤던 경험이 있는 군대 동기가 내게 신경외과를 가보라고 말했다. 다리가 저린 증상은 허리와 관련이 있을 확률이 높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동기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군 병원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위병소를 통과해 야외로 나가서 조금 신선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막상 군 병원에 도착하니 온통 똑같은 옷, 똑같은 머리스타일을 한 군인들 뿐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군 병원은 시설이 좋았다. 부대 내에 있는 의무대와는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2시간이나 기다렸다. 특히 신경외과와 정형외과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진료과였다. 많은 병사들이 진료를 봐서 그런지 군의관님의 얼굴은 피곤하고 귀찮아 보였다.
나는 군의관님께 내 증상을 말씀드렸다. 일단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 ct 촬영부터 해보자고 말씀해주셨다. 사람이 많아 바로 촬영하기는 시간이 부족했다. 촬영 날짜를 잡고, 일단 진통제부터 처방받았다. 다음 날에도 군 병원에 방문해 ct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군의관님은 ct 결과는 지금 찍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적어도 3일 정도 기다려야 확인할 수 있다고 하셨다.
3일 동안엔 창고정리를 했다. 그동안에도 다리가 많이 저렸지만, 우선 병원에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생각보다 증상은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제의 걸음 속도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점호시간에 앉아 있기가 불편해졌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3일이 지나고, 드디어 ct 촬영 결과를 확인하러 가는 길이었다.
"이거 디스크 돌출이 의심이 되는데, MRI까지 찍어봐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소견서랑 약 처방해줄 테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순간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허리디스크라니, 이제껏 다쳐본 적도 없는 내가 군대에 와서 허리가 다치다니.. 다리가 아픈 게 하체부실이 아니라 허리때문이었다니.
바로 그 자리에서 MRI 촬영 날짜를 잡았다. 3일 뒤에 찍기로 했으며, MRI 결과는 1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내 증상을 제대로 파악할 때 까지는 10일 정도를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었다. 5일 뒤에 훈련이 잡혀 있는데, 막막했다. 훈련을 참가해야 할지 말지 계속해서 고민이 되었다.
일단 나는 느릿한 발검음을 이끌고 복귀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오만 가지의 생각이 들었다. '별일 없겠지. 약 먹으면 낫겠지.'라고 되뇌며 부대로 복귀했다.
중대장님께 소견서를 제출했다. 아직까지는 의심 단계라서 확실히 모르는 상태였다. 모든 병사가 참가하는 훈련이었다. 나도 아직 확실하게 내 증상을 몰랐기에, 일단 훈련을 참가하기로 했다. '전투준비태세 훈련' 유격, 혹한기 같은 큰 훈련은 아니고, 우리 부대에서는 당일 치기로 진행되는 간단한 훈련이다.
군장을 옮겨서 트럭에 싣고, 각자 맡은 구역에서 배정받은 임무를 담당한다. 일단 나는 과도한 업무가 아닌, 초소에 서서 경계를 담당하는 임무를 배정받았다.
간단한 경계 임무였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이 쉽게 따라주지 못했다. 심지어 내 군장도 후임들이 옮겨주었다.
훈련을 꾸역꾸역 마치고, 막사로 복귀했다. 샤워를 하면서, 후회와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 x신인가?' 아픈 것을 알면서도 왜 훈련에 참가했을까. 왜 이렇게 눈치를 보는 걸까. 내 몸은 내가 챙기는 거 아니냐. 라면서 자괴감에 빠졌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만 빠지기는 좀 그렇다.', '아직 확정난 결과도 아니지 않냐.' , ' 한창 할 짬 아니냐.'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MRI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단 일과에 참가했다. 그리고 일과 중에도 저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훈련으로 인해 허리 상태가 더 악화된 것 같았다. 군 병원에서 준 진통제와 허리 신경 약은 먹어도 뭐가 나아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드디어, MRI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