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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고리즘 Oct 23. 2021

집 가기 vs 버티기



걱정에 찬 발걸음으로 Mri 결과를 확인하러 갔다. 군의관님께서 내 허리 사진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입을 여셨다. "디스크가 심하게 탈출해서 수핵이 신경을 누르고 있었고, 그것 때문에 다리가 저린 것이다. 대부분이 디스크는 조금씩 있지만, 이 정도는 앞으로 진짜 조심하고 꾸준히 관리를 해줘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간병원이나 국군 수도병원을 가서 더 자세한 진단을 받아보라고 했다. "여기선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라는 한마디와 함께.



나는 국군 수도병원에서 진료를 잡았다. 당시는 코로나 19 때문에 입원 목적이 아닌 이상 밖을 나가서 진료만 받아오는 것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또한 간부님들께서 수도병원은 믿을만한 곳이라고 걱정 마라고 하셨다. 국군 수도병원 성남에 위치한 국군 수도병원의 규모는 이전에 내가 다녔던 군 병원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군대에서 이렇게 좋고 큰 곳이 있었구나'  하지만 그만큼 수도병원은, 내가 작게 다치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신경외과 접수를 마치고, MRI 촬영 파일을 CD로 구워 수도병원 군의관님께 제출했다.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살면서 워낙 건강하고, 별 탈없이 자라와서 입원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근데 수술이라니.. 그것도 허리?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일단 수술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21살이라는 어린 나이의 몸이고, 수술은 정말 급한 사람들만 하고, 나이를 들면 허리가 더욱 악화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셨다. 재활과 휴식을 병행해 극복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수술은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하셨다. 부모님은 물론 인터넷에서도 허리디스크 수술은 다들 권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일단 허리에 주사를 놓는 신경차단 시술을 다음 주에 받기로 했고, 여러 차례 시술 후에도 증상이 악화되면 수술을 고려해보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군 병원에 입원하고 싶었지만 허리의 경우에는 수술을 해야만 입원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셨다. 일단 소견서를 발급해주셨다. 




소견서에는 디스크에 대한 설명과 동시에 신체등급 4급에 해당한다.라고 적혀 있다. 입대를 하기 전 신체검사를 받을 때 4급 판정을 받으면 현역이 아닌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한다. 현역으로 복무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신체이기 때문이다. 



마치 게임 등급이 한순간에 1급에서 4급으로 강등당한 기분이었다. 처음 신체검사를 받을 때 1급을 맞고 당당히 입대한 모습이 떠오른다. 일단 신체등급 4급이라는 말에 당시의 나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었다. 나는 당연히 군대에서 내가 이렇게 다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다치거나, 몸 한 곳이 이상해져서 전역했다는 말이 남 이야기로만 들렸었다. 하지만 이젠 나는 누가 봐도 불편해 보이는 환자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디스크의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훈련이 끝난 뒤로부터 하루가 지날수록 느껴지는 고통의 양이 점점 심해졌다. 어제의 고통은 오늘보다 덜했고, 다시 하루가 지나면 그 전날의 고통이 그리워질 정도로 악화 속도가 빨라졌다. 방치해 둔 상태로 안일하게 해온 과도한 예초, 운동, 재고정리, 훈련 참가 등이 모인 결과다.



물론 나보다 통증과 정도가 심한 사람들도 많고, 군생활 중 더 심하게 다치신 분들도 많다. 그리고 나의 안일함도 내 허리 통증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아픔은 상대적이라고 했던가? 당시의 나는 너무 억울하고 군대가 원망스러웠다. 당장 재채기만 해도 욕 나올 것 같은 고통스러운 이 허리는 절대 낫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이 허리로는 도저히 군생활을 할 수 없었다. 신체등급 4급이면 현역 부적합 심의. 일명 현부심을 통해 전역하거나 공익근무로 변환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 내 남은 군생활 기간은 50%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군생활을 더 할지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다.




이때까지 해 온 게 있는데.. 이제 와서 포기한다고?


그래도 건강이 중요하지


부대에서도 쉬게 해 준대잖아.


여기 안에 갇혀있으면? 쉽게 나을 것 같냐?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통증은 내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더 이상 군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중대장실 문을 두드렸다. 소견서를 제출하고 현재 내 상황을 말씀드렸다.



"이게 그렇게 쉽게 처리되는 문제가 아니거든. 서류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다행히도 중대장님은 일단 내 의견을 존중해주셨다. 하지만 중대장님의 경험에 따르면, 군 병원과 수도병원에서 받은 군의관 소견서와 허리 사진만으로만으로는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이 자료만으로 현부심을 요청하면 다소 복잡해지고, 시간이 더욱 오래 걸릴 것이라고 하셨다. 사실 나는 신체등급 4급 판정만 받았다면,  바로 심사 신청과 동시에 절차가 진행될 줄 알았다.



 일단 나도 중대장님의 말씀에 동의했고, 함께 어떤 방법이 좋을지 고민했다. 그 결과 나온 최선의 방법은 일단 민간병원을 다녀오는 것이다.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음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다면 빠르게 처리될 수 있다고 하셨다. 또한 어차피 허리 치료가 우선이었기 때문에, 잘 됐다고 생각했다. 1 달 뒤에 민간병원으로 병가를 써서 나가기로 했다. 




다치기 전엔 운동을 하고 부대 내 노래방을 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리고 밤엔 자기 전에 항상 연등시간을 활용해 영어공부를 2시간씩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었다. 디스크가 터진 사람들은 알겠지만, 초기에는 앉아있는 것도 힘들다. 재활운동 또한 제한된 종류의 운동만 해야 했으며, 운동 중 조금이라도 잘못하거나 삐끗하면.. 바로 샤우팅을 지르는 고통을 받을 수 있기에 하루 운동량도 적게 잡아야 했었다



원래 굉장히 활동적이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도저히 적응하기 힘든 생활이 시작되었다. 정말 답답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차라리 허리를 낫게 해 준다면 재입대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허리가 아픈 고통보다도, 공허함과 우울감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그것들은 날 아무것도 하기 싫게 만들었다. 밥 먹고 누워있는 시간 또한 많아져 체형도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허리디스크는 충분한 재활과 휴식이 동반되면 대부분은 치료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엔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걷기도 힘들고 앉지도 못하는데 무슨..



'나는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아야 하나?' 



잠들기 전 내가 가장 많이 한 생각이다. 군대 안에 있다 보니 더욱 막막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부대에서 휴식 아닌 휴식을 가졌다. 처음 1주가 지난 후에는 핸드폰을 주셨다.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너무 우울해 보이셨나 보다. 동기와 선임들은 아침부터 핸드폰을 쓰는 나를 부러워했다. 처음엔 당연히 눈치도 많이 보였다. 그럴 때마다 침낭 속으로 숨어 핸드폰을 했다. 때론 너무 덥고 갑갑했지만, 이런 내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기도 싫었다. 안 하던 핸드폰 게임도 해보고, 밀린 웹툰과 유튜브도 보며 시간을 때웠다.



하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다. 동기들은 핸드폰을 오래 쓸 수 있는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체력단련실에서 운동하는 소리와 노래방에서 노랫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우선 민간병원을 가기 전까지 버티자고 마음을 먹었고. 시간이 흘러 병원으로 갈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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