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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고리즘 Oct 23. 2021

그래서 나는 버티기로 했다

중대장님. 저 여기 남겠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모은 내 진료 기록과 소견서, 상담 기록까지 전부 제출했다. 결과는 짧으면 2주, 길면 1달도 넘게 걸린다고 했다. 그 상황에서 나는 다시 무기력하게 매일을 핸드폰만 보며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그 2주의 기간이 내 인생을 바꿔 놓을 줄은..




어느 떄처럼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던 날이었다. 이젠 핸드폰만 보는 것도 지겨울 참이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어떤 백인의 중년 남성이 열변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 영상이 흥미로워 보였던 나는 당장 클릭해서 보았다.



그 남성의 이름은 바로 조던 피터슨. 



영상 속에서 그는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자신하고만 비교하라.'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는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고 나를 되돌아보았다. 당장 어제의 나, 일주일 전의 나를 오늘과 비교해봤다. 망나니 같은 하루가 그려졌다. 내가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며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내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나는 내 하루를 되돌아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내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이 환경에 수긍해버리고 나를 놓아버리는 것, 아니면 기회비용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이 환경을 극복해내는 것. 발버둥이라도 쳐보는 것이었다.



나는 다행히 발버둥이라도 쳐보기로 했다. 우선 조던 피터슨이 말한 대로 어제의 자신하고만 비교하는 것이 첫 단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머릿속으로만 비교하다 보니 3분이면 끝나버리고 다시 원상 복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직접 글자로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내 첫 글쓰기인 일기가 시작되었다.




일기를 통해 내 하루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나 혼자만 보는 내적인 글쓰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일기 앞에서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하거나,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글자로 쓰인 내 모습을 보니 당시의 나는 속된 말로 망나니와 다름없었다. 마침표가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지금 이게 맞는 건가?' '이게 내가 바라던 삶이야?'라고 되뇌었다. 진실된 글쓰기를 처음 마주했다.



하루하루 일기를 써나갔다. 어제의 자신이 너무 답답하고 한심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치열하게 재활운동을 하고 영어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일기를 어떻게 하면 잘 쓸지 궁금해 글쓰기 관련 영상들을 보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나에게 열등감 덩어리, 도박중독을 없애줄 종지부를 찍어주고 인생의 새로운 도입부를 열어주었다.



한 문장이 두 문장이 되고, 그 문장 속 단어와 배치가 바뀌어간다.유리가 없는 내면의 거울이며,그렇기에 절대 거짓이 될 수 없는 것.머릿속에서만 생각하던 것들이 활자로서 눈에 보이는 것. 글쓰기라는 마법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일기를 쓰면서 점차 나의 생각이 바뀌어 갔다. '지금 내가 집에 가는 것은 그저 이 상황을 회피하려 했던 것이었구나.' 집에 간다면, 분명 짧은 시간 동안에는 좋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집을 가서 공익근무를 하기 전까지, 과연 내가 바뀌리란 보장이 있을까? 오히려 집이라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환경 아래에서 더욱 나 자신이 나태해지고, 생활패턴도 이상해질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도 이 망가진 뇌를 고쳐야 했다. 허리가 아프다는 명분을 위안 삼아 그렇게 보낼 것이 분명했다. 이런 식의 생활이 지속된다면, 똑같은 하루를 보낼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버티기로 했다.



 " 저 여기 남겠습니다. " 



중대장님께 보고드렸다. 동기들과 선임들은 "나 같으면 무조건 집 가겠다." 라고 하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 또한 앞으로 어떻게 할지 막막하고 때로는 후회하기도 했다.  일단 부대에서도 나에게 휴식기간을 주었으며, 한달 정도 더 쉬고 민간 병원 치료를 한번 더 받기로 했다. 무식하게 버틴다고 해서 일과를 무작정 하기에는 아직 아픈 상태였다.



재활운동, 영어공부를 차근차근 시작해 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주식과 코인의 유혹은 계속됬다. 처음부터 완전히 떨쳐내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마음은 한결 나아지고 있었다. 그것들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계획했던 것들을 조금씩 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기를 통해 글쓰기라는 마법을 알게 되었다.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일기를 공유하고 싶었고, 내가 선택한 것은 네이버 블로그였다. 첫 글을 남겼다. 



당시에는 허리가 많이 아파 누워서 핸드폰으로 글을 써야만 했다. 안 그래도 모바일로 글을 작성하면 오래 걸리는데, 누워서 하려니 이것도 나름대로의 불편함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눈이 너무 아팠다. 앉아서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앉아서 글을 쓰려 하니, 허리가 발목을 잡았다. 



1시간 이상 앉아있으면 바로 드러누워야만 했다. 그 뒤로, 허리 디스크에 좋은 책과 영상들을 보며 재활운동을 꾸준히 했다. 





나는 민간병원에 외진을 한 번 더 갔다오기로 했다. 글쓰기를 하려면 오로지 허리를 낫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병원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전의 병원생활에서는 허리가 아픈 것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며 내가 스스로 나아질 욕심을 내지 않았다. 허리 운동과 허리에 좋은 스트레칭을 알고 있었지만 말로만 말하고 정작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무기력증에 빠져서 그냥 누워서 비트코인 차트만 봤었다.



하지만 이번 병원 생활은 다르다. 비트코인을 하는 시간이 점차 줄어갔으며, 의사선생님께서 아침 회진을 돌 때마다 귀찮을 정도로 허리 재활에 대해 물어봤다. 추천해 주신 허리디스크 관련 책도 샀다. 그렇게 허리가 점점 나아져갔다. 



3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2주간의 격리 때도 나는 매트를 주문해서 계속 재활운동을 했다.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포기하고 싶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발전하자는 생각을 하며 진심으로 임했다. 낫지 않을 것만 같았던 허리가 점점 나아져 갔다.




당시 우리 부대는  격리시설과 도서관이 붙어 있어서 격리 인원만 도서관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나는 독서와 접점이 전혀 없었지만,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던 나는 도서관을 들어가 봤다. 



하지만 책이 전부 지루해 보이고 어려워 보였다. '내가 무슨 독서야, 일단 글이나 쓰자.'라는 생각과 함께 도서관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찰나에, 문 옆 책상 구석에 혼자 방치되어 있는 책이 눈에 밟혔다. 



'이 책만 책꽂이에 꽂고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그 책을 집었다. 누군가가 많이 읽은 흔적, 낡은 촉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 촉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책의 제목은 '부의 추월차선'  당시 나는 돈 되는 글쓰기, 경제적 자유에 관한 영상들에 푹 빠져있었는데, 많은 유튜버들이 부의 추월차선을 언급하길래 '도대체 뭐길래 그럴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리고 그 책의 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써 있었다.



 '휠체어 탄 백만장자는 부럽지 않다!', 


'젊은 나이에 일과 돈에서 해방되어 인생을 즐겨라!'




문득 6개월간 누워있던 과거가 생각났다. 다시는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미래의 내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한들, 계속 누워있어야 하고, 심지어 휠체어를 타야 한다면 전혀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책의 표지에 쓰여있는 저 문구가 나에게 독서라는 또 하나의 마법을 알려주었고, 그날 밤 나는 취침시간 전까지 도서관에서 나올 수 없었다.



이후 나는 블로그에 서평을 남기기 위해 책을 3번이나 더 읽었다. 첫 서평이라 책을 요약하고 정리하는 데 너무 서툴었기 때문이다. 격리가 해제된 후 11일간 휴가를 나갔는데, 11일 동안 책 읽고 글만 썼다. 



독서 속도, 글쓰기 모두 서툴었던 때라 서평 하나를 올리는 데까지 2주가 걸렸다. 그 뒤로 계속해서 읽고 쓰다 보니 지금은 금방 읽고 금방 쓴다. 어쨌든, 그때 그 도서관이, 이 책이 내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때 내가 도서관 문을 열지 않았다면, 그때 그 책을 그저 지나쳤다면,그때 그 책이 흔한 소설책이었다면,지금의 나는..?운명이라는 것을 믿기 시작했고. 그 운명은 나에게 독서라는 또 하나의 마법을 알려주었다.



병원 치료를 한번 더 받고, 나는 다시 일과에 투입되었다. 훈련에 참가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갔다. 문서작업과 현황판 제작 위주의 일을 했다. 그렇게 일과를 마치고 나면 매일 싸지방에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했다.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쓴지 100일이 조금 넘었을 때, 어느덧 내 전역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달력에 표시한 꿈에 그리던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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