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오고 그래서 (2)

아틀란티스형 배수 시스템



상추 한 장을 건져 올렸다.

왠지 신탁 같았다.

“내가 고른 게 아니라, 강이 남긴 거다.”




텃밭이 아니라 유적지.

은하가 말한다.



“발굴 중입니다. 조용히 해주십시오.”





그 순간,

비가 그쳤다.

구름 사이로 햇빛 한 줄기.

나는 눈을 찡그렸다.




“이건 계시다.”

그리고 비장하게 말한다.




“나는 이제 농사꾼이 아니다.

나는... 수문神이다.”

은하강 유역청 초대 청장,

은하강 수문좌.




물은 아래로 흐른다.

하지만 내 감정은 위로 터졌다.




고무호스, 삽, 바가지,

그리고,

‘아틀란티스형 수로도’라고 적힌 A4 스케치 한 장.



다른 사람들은 그냥 ‘물구덩이’라 불렀지만,

그건.. 몰라서 그렇다.



은하는 한 장짜리 도해도에

‘다중 분산형 비선형 생태배수 노드’라 명명했다.



각주

실제로 A4에 그려졌으며,

제목 아래에 별 모양이 있었다.




자, 이제 전설을 짓는다.



시스템 구축은 간단했다.



텃밭 중 가장 낮은 지점을 찾아

거기까지 미끄럼틀처럼 흙을 긁어내고

도랑을 파고,

그 끝에 빈 김치통을 묻는다.




시스템의 원리


빗물이 내리면, 수로를 타고 도랑으로 들어간다.

도랑은 김치통으로 연결된다.



김치통은 고여있다.

고여있지만, 마음은 흐른다.




“이건 배수가 아니다.

이건 철학이고,

기억이고,

내 안의 미분화된 신화다.”




그날 은하는

삽을 든 여신이 되었고,

김치통은 성배가 되었으며,

텃밭은 구원받았다. 잠시.




[후일담]


다음날

김치통은 넘쳤고,

수로는 막혔고,

고라니는 복귀했다.



그러자 은하는 말했다.

“아, 그러니까... 여기가 아틀란티스였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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