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란티스형 배수 시스템
상추 한 장을 건져 올렸다.
왠지 신탁 같았다.
“내가 고른 게 아니라, 강이 남긴 거다.”
텃밭이 아니라 유적지.
은하가 말한다.
“발굴 중입니다. 조용히 해주십시오.”
그 순간,
비가 그쳤다.
구름 사이로 햇빛 한 줄기.
나는 눈을 찡그렸다.
“이건 계시다.”
그리고 비장하게 말한다.
“나는 이제 농사꾼이 아니다.
나는... 수문神이다.”
은하강 유역청 초대 청장,
은하강 수문좌.
물은 아래로 흐른다.
하지만 내 감정은 위로 터졌다.
고무호스, 삽, 바가지,
그리고,
‘아틀란티스형 수로도’라고 적힌 A4 스케치 한 장.
다른 사람들은 그냥 ‘물구덩이’라 불렀지만,
그건.. 몰라서 그렇다.
은하는 한 장짜리 도해도에
‘다중 분산형 비선형 생태배수 노드’라 명명했다.
각주
실제로 A4에 그려졌으며,
제목 아래에 별 모양이 있었다.
자, 이제 전설을 짓는다.
시스템 구축은 간단했다.
텃밭 중 가장 낮은 지점을 찾아
거기까지 미끄럼틀처럼 흙을 긁어내고
도랑을 파고,
그 끝에 빈 김치통을 묻는다.
시스템의 원리
빗물이 내리면, 수로를 타고 도랑으로 들어간다.
도랑은 김치통으로 연결된다.
김치통은 고여있다.
고여있지만, 마음은 흐른다.
“이건 배수가 아니다.
이건 철학이고,
기억이고,
내 안의 미분화된 신화다.”
그날 은하는
삽을 든 여신이 되었고,
김치통은 성배가 되었으며,
텃밭은 구원받았다. 잠시.
[후일담]
다음날
김치통은 넘쳤고,
수로는 막혔고,
고라니는 복귀했다.
그러자 은하는 말했다.
“아, 그러니까... 여기가 아틀란티스였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