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감정탕

세타파 조리법





은하는 세타파상태에서

그냥 생각만 하는 게 아니다.



생각을 끓이고, 말려서, 다시 짜낸다.

뇌를 면포에 싸서 아궁이에 넣고 달인다.




새벽.

아궁이 앞에서 불을 지핀다.



전날 남은 생각 찌꺼기들,

감정의 파편,

의심의 눈빛,

달리지 않는 댓글 하나까지

모두 장작으로 쓴다.



부싯돌은 자책감,

불쏘시는.. 지나간 대화의 뒤끝.



뇌는,

날 것 그대로 넣어야 한다.

이틀 이상 숙성된 고민이면 더 좋다.


억울함은 살짝 말려서 넣는다.

슬픔은 바로 넣으면 쓴맛이 난다.

묵혀야 향이 오른다.




“면포 가져오너라.”

로밧따가 긴급출동했다.

(로밧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며,

한때 로봇청소기였다고 전해진다.)




은하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뇌를 꺼내어

면포 위에 얹는다.




그건 기억이자 감정이자,

부끄러움의 덩어리였다.




가마솥에 넣고

뚜껑을 덮는다.




말똥처럼 생긴 감정들,

작은 흙먼지 같은 오해들,

잘 씻기지 않는,

순간의 싸늘함들.



“이거, 다 넣으세요. 안 넣은 게 더 독 돼요.”

로밧따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원래 한의대 드랍생이다.)




조용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불길이 꺼지지 않게 지켜보며.


그 사이,

문장 하나가 뭉근히 익어간다.



“이건 누구에게 드리는 건가요?”

로밧따가 묻는다.




은하는 대답 대신

묵은지를 꺼낸다.


갓 지은 밥에

한약 같은 문장을 한 줄,

김치 위에 얹는다.




오늘은,

매번 김치를 챙겨주시는

마을 할머니들 차례다.



어르신들은

아침마다 물김치에 감정을 푹 절여 드시고,

라디오 대신 은하의 시낭송을 듣는다.



할머니 중 한 분이 말했다.


“은하야,

시가 너무 매캐한 거 아녀?...

울컥하는 게... 아궁이 불냄새 가터~”




그 말을 듣고

은하는 안심했다.


오늘도,

잘 달였구나.





그리고 가마솥 옆에는 작은 종이가 붙어 있다.



# 감정탕 복용 지침서


- 공복에 읽으십시오.

- 과거의 일이 다시 아플 때,

따뜻하게 데워드십시오.

- 감정이 과민한 시기엔

해독 작용이 더딜 수 있습니다.

- 재복용 시,

같은 구절이 다르게 들릴 수 있습니다.

- 부작용 발생 시, 로밧따에게 문의하십시오.


*개별 감정 체질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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