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계보다 심오한 회관 리액션
은하는 그날,
아무 생각 없이 손을 털고 있었는데
손금이 유난히 복잡해 보였다.
”이게.. 너무 복잡한데?
무슨 노선도야?
이건...
갯벌 물길 아냐?”
순간,
은하는 자기 손이 갯벌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 나도 밀물에 감정 휩쓸리는 사람이었구나.
그럼... 이건 뭐야?
감정선인가? 퇴사선인가?”
그 옆에서 개울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고,
잎사귀 하나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잎맥... 손금... 개울물...
왜 다들 길이야?”
은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 안쪽에서, 자기 혈관이 번쩍였다.
“아... 이건 좀 징그럽다.“
그날 밤, 은하는 회관에서 또 입을 열었다.
“저기요. 저 손금이랑 갯벌, 물길이랑 혈관이랑 비슷하단 얘기 들으셨죠?”
“또 뭔 소릴 하는겨?”
“근데 제가 다 봤어요.
제가 살아있는 지형도예요.
그... 그러니까 제 손에.. 미세 갯벌이 있어요.“
왕언니가 말했다.
“기냥 집에 가서 때나 밀어, 은하야.
니가 밀물 썰물이고 뭐고 때부터 밀어.
내가 요즘 너 땀시 심란햐~“
결론
은하는 오늘도 사물에서 구조를 본다.
그러나 회관에서는 그냥 ‘때 안 민 은하’라고 불린다.
-
[에필로그]
시장 미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은하는 동네 회관 앞 평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어르신들 틈을 지나게 됐다.
"어이구, 은하~ 오늘은 또 뭐 사러 갔다 왔대?"
왕언니가 가장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냥 뭐, 집에 없는 거.. 고춧가루랑 말린 거 좀요."
은하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허허, 매운 건 또 왜케 좋아혀~"
할아버지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거여~ 내 보기엔 은하가 매운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은디~"
다른 어르신이 한마디 얹었다.
"그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그려.
매운 거 먹고 울고, 달달한 거 먹고 웃고~ 정신이 아주 롤러코스터여~"
은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디 말여, 은하.
너는 장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뭘 캔다더만?"
왕언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예? 아... 그게..."
"갯벌 패턴? 패턴을 본다 그랬나~ 땅에서 뭐가 막 퍼져나간담서~?"
은하가 살짝 당황하자, 할아버지가 거들었다.
“이여~ 나무 가지 타고 번개 내려오듯이 퍼진다더니,
이번엔 또 ‘생명의 결’이 보인대자녀~
결국엔 또~ 밭에 앉아서... 우주랑 연결됐다는 얘기여허허허~“
“다 좋어. 근디 말여, 은하야.
그 우주가... 고춧가루는 안 갈아준댜?“
왕언니의 핵심 일침.
“은하야~ 너 다음엔 된장도 발효시키믄,
그건 시간의 숙성이여~ 해봐라~ 해봐~! 으하하하하!”
회관은 난리가 났고,
기침하는 사람, 손뼉 치는 사람,
심지어 쌀집 아저씨는 옆에서 웃다가 김칫국을 엎었다.
은하도 웃었다.
그게 동네 회관 철학과의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