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프로토콜
오늘도 은하는 결심했다.
무말랭이를 사러 간다는 명목 하에,
사실은 '자신의 사회적 존재감을 확인하러'
나서는 여정이었다.
시골살이 90%는 집콕,
나머지 10%는 시장 원정이다.
그 10%가 문제다.
장은 본질적으로 거래다
필요한 걸 사고, 잃을 걸 감수하는 과정.
이번엔 감정 자산 손실 없이 다녀오는 게 목표였다.
집을 나섰다.
문을 열자마자, 현실의 입김이 코끝을 때렸다.
들깨 냄새, 마른 김치 항아리,
지나간 고라니의 응가 잔향까지.
모두가 은하를 말렸다.
"가지 마라..."
하지만 고춧가루가 없었다.
어제 된장국에 넣으려다,
없는 채로 간을 했더니 인생이 허했다.
"오늘은 꼭 무말랭이랑 고춧가루 사야 해.."
버스를 타려면 20분을 걸어야 한다.
(그걸 '산책'이라고 부르는 마을 사람도 있다.)
은하는 숨을 골랐다.
자, 걸어보자.
도착. 버스 정류장.
이미 와 있었다.
버스는 도망 안 간다.
하지만 탑승자는 도망가고 싶었다.
버스는 시골길을 구불구불 돈다.
은하는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자신의 리스크를 떠올렸다.
’오늘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겠지..
물가... 오늘은 오르지 않았겠지..‘
이걸 사람들은 심리적 저항선이라고 부른다.
(은하의 용어 사전: 두부 가격의 한계치)
시장 근처 정류장에서 내린 은하.
그리고...
그 사거리.
서울 사람들은 사거리를 그냥 건넌다.
여기선 아니다.
여기 사거리는 지역 주민들의 인스타그램이다.
은하가 지나가면, 다음 날 회관에 소문이 돈다.
"그 은하 말여~
어젠 빨간 바지 입었더라~
근디 뭘 산 거 같더라고~
장바구니에 뭐가 무거워 보이더라니께~"
은하는 마스크를 껴봤지만 소용없었다.
이 동네는 뒷모습으로도 누구인지 안다.
횡단보도 앞.
초록불 대기 중.
은하는 가슴 깊이 외쳤다.
’나는 지금 장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사회적 IPO를 다시 상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