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도 못 두는 사람이 대화를 두려워할 때
은하는 대화를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화를 ‘수로 본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상대가 “밥 먹었어?”라고 물어보면
그 안에서 102가지 선택지를 동시에 시뮬레이션한다.
응.
아니.
뭐 먹었는데?
그걸 왜 물어보는 거지?
이 사람, 나한테 관심 있나?
아 잠깐만 이 타이밍에 이렇게 말하면 뉘앙스가...
지금 웃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밥을 먹었다고 해서 좋은 인상을 줄까?
아니면 안 먹었다고 해서 걱정을 유도할까?
그럼 이건 정서적 조작인가?
도망쳐야 하나?
그 와중에 실제로 입 밖으로 나간 말은 없다.
아무 말도 안 했다.
이미 정신은 앞으로 40수 후에 있는 격돌 장면에 가 있다.
(이쯤 되면 바둑계에서 스카우트 연락이 올 법도 한데 바둑은 또 못 둔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증상이 악화된다.
댓글? 없다.
DM? 없음.
’ㅋㅋ‘ 하나 쓰기까지 5분 고민.
왜?
이걸 썼을 때 이모지 없는 웃음이 비웃음으로 오해되진 않을까?
’ㅋㅋㅋ‘는 너무 웃긴 건가?
’크크‘는 비꼬는 건가?
‘하하’는 사장님 말투 같고,
’ㅎㅎ‘는 뭔가 얄밉고,
그럼 그냥 이모티콘...?
아니 그건 또 나 아닌 거 같고..
결국 아무 말도 안 남긴다.
단 한 줄의 댓글조차 없다.
한 번도.
태어나서 온라인 댓글 단 적 없음.
오프라인에선 좀 낫다.
왜냐하면 오프라인은 사람이 공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표정
말하는 속도
눈동자의 움직임
숨소리의 온도
옷깃의 각도
그날의 바람
소음의 밀도
전자파 간섭 가능성
모든 게 함께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은하의 계산기가 오히려 안 돌아간다.
그래서 그제야 말을 한다.
즉,
은하는 바둑은 못 두는데,
대화는 바둑처럼 둔다.
하지만 판에 앉으면 항상 기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