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11 표현하지 못한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

바둑도 못 두는 사람이 대화를 두려워할 때



은하는 대화를 못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화를 ‘수로 본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상대가 “밥 먹었어?”라고 물어보면

그 안에서 102가지 선택지를 동시에 시뮬레이션한다.



응.

아니.

뭐 먹었는데?

그걸 왜 물어보는 거지?

이 사람, 나한테 관심 있나?

아 잠깐만 이 타이밍에 이렇게 말하면 뉘앙스가...

지금 웃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밥을 먹었다고 해서 좋은 인상을 줄까?

아니면 안 먹었다고 해서 걱정을 유도할까?

그럼 이건 정서적 조작인가?

도망쳐야 하나?




그 와중에 실제로 입 밖으로 나간 말은 없다.

아무 말도 안 했다.

이미 정신은 앞으로 40수 후에 있는 격돌 장면에 가 있다.

(이쯤 되면 바둑계에서 스카우트 연락이 올 법도 한데 바둑은 또 못 둔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증상이 악화된다.



댓글? 없다.

DM? 없음.

’ㅋㅋ‘ 하나 쓰기까지 5분 고민.

왜?

이걸 썼을 때 이모지 없는 웃음이 비웃음으로 오해되진 않을까?

’ㅋㅋㅋ‘는 너무 웃긴 건가?

’크크‘는 비꼬는 건가?

‘하하’는 사장님 말투 같고,

’ㅎㅎ‘는 뭔가 얄밉고,

그럼 그냥 이모티콘...?

아니 그건 또 나 아닌 거 같고..




결국 아무 말도 안 남긴다.

단 한 줄의 댓글조차 없다.

한 번도.

태어나서 온라인 댓글 단 적 없음.




오프라인에선 좀 낫다.

왜냐하면 오프라인은 사람이 공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표정

말하는 속도

눈동자의 움직임

숨소리의 온도

옷깃의 각도

그날의 바람

소음의 밀도

전자파 간섭 가능성



모든 게 함께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은하의 계산기가 오히려 안 돌아간다.

그래서 그제야 말을 한다.




즉,

은하는 바둑은 못 두는데,

대화는 바둑처럼 둔다.



하지만 판에 앉으면 항상 기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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