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크라 7번 Sahasrara
치커리와 고라니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은하는 수풀 뒤에 숨어서 몰래 지켜봤다.
치커리는 상추 쪽을 힐끗 본다.
"근데 왜 나만 드세요?
상추는 안 먹은 척하시고. "
고라니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허공을 보며 말했다.
"너는 쓴맛이 있어.
감정 있는 채소 같아서, 좋아."
그걸 듣고 있던 은하는
수풀 뒤에서 기절할 뻔했다.
'내 텃밭에서 연애를...?
이 상황,
나 없이도 돌아가는 시트콤이었단 말이야?'
은하가 기어이 다가가 물었다.
"너 대체 왜 자꾸 와서 먹고 가는 거야?"
고라니는 조용히 눈을 떴다.
부드럽게,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눈빛으로.
"너는 왜 심고,
또 심는 거지?
나는 그냥 먹을 뿐,
욕심이 없다."
그는 다가오더니,
은하의 미간을 툭 건드렸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새가 날아올랐고
이마가 간질거렸다.
꿈이었나.
아니.
베개 옆엔
치커리 이파리가 놓여 있었다.
"그냥..
현실 수용 단계였구나."
시간은 밀물처럼 와서
발밑에서 주저앉았다.
그 자리에 앉은 채,
그늘 속으로 도망가는 햇빛을 바라봤다.
텃밭엔
잘린 잎들과,
자리를 잃은 뿌리들이 모여 있었다.
치커리가 낮게 말했다.
"난 그냥..
한 번쯤은
먹히고 싶었어."
그 순간,
깨달음이 스쳤다.
주는 것만이 아니었다.
먹히는 것도,
보시였다.
그날 이후,
은하는 ‘치커리 보시운동’을 선언했다.
'본 텃밭은
매달 고라니에게 채소를 제공합니다.
해당 보시 행위는
정부의 지원 없이 자발적으로 시행됩니다.'
은하는 다시 명상을 시작했다.
요가매트를 텃밭 옆에 깔았다.
고라니는 멈춰 서서 은하를 바라봤다.
의심스러운 눈빛.
은하는 미간을 모으며 속삭였다.
"나 지금 차크라 열리는 중이야.
너도 해볼래?"
고라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풀썩, 옆에 누웠다.
은하는 속으로 셈을 세었다.
'명상이란 건, 결국
안 먹는 연습이야.'
고라니는
5초 참았다가 다시 치커리를 먹었다.
...
명상도 좋지만
배고픔은 생존이다.
그날 이후,
텃밭은 캠프장이 되었다.
고라니는 가끔 명상했고
대부분은 먹었고
가끔은 은하를 가만히 바라봤다.
내가 깨운 건 차크라가 아니라
존재의 경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