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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저 가구가 갖고 싶다

 단지 익숙함이었던 걸까 시기심이었던 걸까? 

길을 걷다 트렌디한 수입 가구 편집숍을 마주쳤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알만한  제품들이 쇼윈도에 진열돼 있다. 시카고 미대 시절 가구의 성지인 비트라 쇼룸을 기웃거리던 생각이 났다. 원하는 디자이너 가구를 흔쾌히 사모을 정도로 넉넉한 용돈이 없었던 나는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언젠가는 저 의자를, 저 램프도... " 되새이며 입맛을 다시던 기억이 났다. 



20년이 지난 후, 이 수입 가구 편집 쇼윈도 앞 진열돼 있는 램프에서 그 학생 때의 나를 발견한다. 저 램프 예전에 내가 갖고 싶던 건데 아직도 저렇게 인기가 많은가 보네. 호기심 반, 지름신 반으로 쇼룸을 들어가 보니 그땐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컬러 출시로 나를 또 한 번 현혹시킨다.  오랜시간 동안 내 눈에 익숙해진 디자인이라 그런지 예전과 같은 거룩함과 감탄은 나오지 않는 나를 보며 보며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이 램프를 좋아하는 건 익숙함에서 오는 미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짝사랑하는 누군가와 이루지 못한, 가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처럼 말이다.


 

계속 쇼룸을 둘러보다 저편으로 보이는 못생긴 가구 하나에 눈길이 옮겨갔다.  별로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는 날 보고 옆에 있던 직원이 뜻밖에 말을 했다.  인기가 너무 많아서  대기가 1년이 넘는 가구라고. TV에 어떤 연예인 집에 출몰 한 후로는 다들 갖고 싶어서 난리 란다. 특이해서 인기가 많다나?  얼마 후 방문한 지인들의 가정집 3곳에서 발견했을 때 매장 직원 말대로 서울에서 대유행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뭐가 그렇게 맘에 들어서 샀냐 지인들에게 물었고 그들의 대답은 그냥 특이해서 란다. 여러 쇼룸들에서 보니 계속 눈에 밟히는 게 이쁘더라고.  갑자기 너도 나도 그 "특이함"을 원하나 보다.  

  


이 집 저 집 다 있는 걸 보니 왜 나만 없어? 디자인이라는 게 워낙 주관적인 '취향' 문제이긴 하지만 특이함이라는 변명 하에 요즘 유행 따라 사는 건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우리 주변엔 단지 특이함, 남들 다 가진 것이라는 이유로 인테리어 소품들을 구매를 경우가 많다. 자신의 취향과 주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집단의 압박에 의한 현혹된 소비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가구를 셀렉하는 데 있어서 심오한 디자인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다수가 열광하는 트렌드를 쫓는 보여주기 식 '소비'만을 일삼다 보면 결국 남을 의식하는 공간이 돼버리고 만다.  반면 내 정서적 가치와 기치관에 따라 '소유' 해 나가기 시작하면 공간을 통한 자아실현 마저 가능하다고 본다. 나의 존재감을 확인만 하고 마는 소비를 할 것인가, 나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 나가는 소유를 할 것인가?



콘란 샾으로 유명한 영국의 콘란 경은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는 다른 사람에게서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며 개개인의 성격에 맞는 물건의 중요성을 사사했다.  유행처럼 흘러가는 트렌드보다  나의 삶에 깊게 뿌리내리는 라이프스타일에 가치를 둔다면 시기와 익숙함에서 오는 단순 구매가 아닌 조금이라도 나를 더 잘 표현해주는 나만의 것들에 소리를 기울이여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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