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좋아하고 포기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라메르가 가르쳐준 교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뉴욕에 내 이름을 건 스튜디오를 차린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다. 운이 좋게도 에스테 로더 그룹의 명품 코스메틱 브랜드 중 하나인 라메르에서 리테일 디자인을 이끌어갈 사람을 찾는다며 정규직으로 일해주길 원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 회사를 유지하고 싶다는 명목 하에 정규직으로의 채용보다 프로젝트 베이스의 독립적인 컨설턴트로 남길 희망했다. 다행히 내가 원하는 데로 외부 컨설턴트로써 라메르 내 회사 팀원들과 협력하고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는 형태로 일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였다. 정직원이 아닌 시간제 근무로 채용된 나의 직위는 기존 팀원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데 한계가 있었다. 윗선에서 선임된 팀 리더 자리였지만 나보다 5년 10년 오래 그곳에서 일한 몇몇 직원 들은 텃세 아닌 텃세를 부리며 내가 제시하는 새로운 방식에 매번 제동을 걸어왔다. 결국 나의 리더십은 도마 위에 올랐고 약속한 시일 내 성과를 내야 하기에 초초한 마음이 커져만 갔다. 이렇게 되니 좋은 디자인 솔루션을 내는 것보다 더 급한 건 팀원들의 마음을 사고 협심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는 게 극명해졌다.
왜 날 저렇게 싫어하는 걸까? 무작정 일만 잘하면 사장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직원 신분일 때와는 달리 돌아가는 상황에 적응하는 건 나로서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난 팀원들 중 나를 눈엣가시로 보는 직원들을 불러 와인을 마시기로 하고 그들에게 솔직함과 진솔함으로 호소했다. 이제껏 고수하던 강한 카리스마의 고자세를 모두 낮추고 나를 팀장으로 대하지 않아도 좋으니 열린 마음으로 함께 일해보자고 한 번만 믿어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늦은 밤 술 때문인지 그들도 결국 나에게 속내를 풀어놓았다. 회사 내에 아시아계 여자가 많았던 팀 내에서 승진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 많았는데 갑자기 굴러온 돌인 내가 진두지휘하는 것이 맘에 안 들었다고. 같은 아시아계 여자인 나라서, 그것도 자기들보다 나이가 어려서 더 심술이 났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난 억울함이 컸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이 상황이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 있겠구나 받아들이고 넘어가기로 맘먹었다.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솔직함이 고마웠고 나는 같이 빛나자고 설득했다. 함께 일해보자고. 다행히도 우리는 이런 진솔한 대화 후 훨씬 더 나아진 팀워크로 효과적인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불협화음 조로 일관하는 직원 몇몇이 있었고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난 그들은 과감히 포기하고 가는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몇몇의 미꾸라지 때문에 에너지를 낭비하면서까지 더 이상 프로젝트의 위태롭게 하거나 이제는 나를 믿고 따라오기로 한 팀원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별로 남지 않은 짧은 기간 동안 같이 가기로 한 팀원들의 역량을 믿고 힘을 모으는 반면 삐딱선을 탄 몇몇은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해 버리기로 한 독한 마음이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부정적인 그들에게 나로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의 미련이 없었고, 큰 그림을 위해 버린 카드라고 생각해 버렸다. 살면서 열심히 노력해도 상식의 힘, 노력만으론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배운 순간이었다.
일과는 다르게 사람의 마음은 정말 맘대로 안 되는 듯하다. 열심히 하는 만큼 어느 정도 성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일'과는 비교도 안되게 어려운 게 그냥 나를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득과 안녕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 보다 나은 공존을 위해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이해와 수용은 덕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본 후 그래도 안 되는 상항이 오면 대의를 위해 그냥 포기하는 법도 답이 될 수 있는 듯하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더 많은 용기를 필요하는 결정인 것도 같다.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했으니 더 이상 미련은 없다. 그런 태도.. 세상 사람 모두가 날 좋아해 줄 순 없는 거니까. 주변에 단 몇 명이라도 나를 믿고 좋아해 주고 따라와 주는 것에 고맙게 보답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 도 있음을,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