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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꿈은 이루어진다, 긍정이 만든 상상의 승리 겔랑

파리 샹젤리제 거리는 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 거리 중 하나이다.  이곳에 터줏대감 중 하나인­ 메종 겔랑은 180년 전통의 글로벌 명품 코스메틱 브랜드이다. 피터 마리노 시절 29살인 나는 이 메종 겔랑 디자인 총괄을 맡게 되었는데 당시 겔랑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명실상부 프랑스 정통 전설적인 명품 브랜드였지만 시대에 뒤처지는 100년 넘은 플래그쉽 디자인으로 끊임없이 새로움을 원하는 젊은 고객층의 니즈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었다. 새로움이 고갈되어 죽은 공기가 맴도는 공간이 돼버린 것이다. 공간도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은 법. 유기체가 유기질을 에너지원으로 하여 생명을 유지하듯 공간 또한 새로운 원기를 필요로 했다.  

 


리테일 공간은 방문하는 소비자들을 매혹시킴으로써 매출을 내야 한다는 근본적인 목적이 있기에 생기 넘치는 공간은 필수였다.  우리는 자유롭게 액티브 하게 상상할 수 있는 판타지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업성으로 무장한 매장과는 달리 지금의 내가 아닌 색다른 나, 현실에서 벗어나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그런 꿈 꿀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한 공간으로 방문자들로 하여금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자는 전략 하에 다소 허무맹랑하지만 재미있는 놀이공간 같은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천장에는 날아드는 꿀벌 풍선들을 설치하고 복도는 베르사유 궁전을 연상시키는 거울의 방으로, 누르면 소리와 함께 향수가 뿜어져 나올듯한 향수 오르간, 크리스털 볼로 만든 난초 샹들리에 등을 디자인했다.



 

하지만 우리의 발목을 잡는 공간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백오십년된 유서 깊은 랜드마크 방이었다. 이 방은 클래시컬한 몰딩장식과 가지각색의 대리석으로 치장되어 있었는데 프랑스 유산으로 지정돼 있었기에 모든 벽을 보존하면서 최소한의 리모델링으로 새매장과 그 맥락을 연결시키는 것은 최대의 난제였다. 나폴레옹 시대에 지어진 이 방의 구식적인 대리석 벽은 어떻게 디자인을 바꾸려 노력해도 그 노후함이 가려지지 않았다.  상당 시간을 어떻게 가릴까라는 고민하던 중 나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 이 애물단지 벽들을 무조건 가리려 하지 말고 역이용하자는 마음 가짐으로 벽은 그대로 살려두고 천 장면을 이용하여 '재미난' 기획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이 방이 그냥 침수돼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농담이 기억났다. ‘환상’이라는 주제로 콘셉트를 잡은 만큼 우리는 실제 이방이 수면 아래 가라앉는 상상을 해 보았고 난 '이거다!'를 외치게 된다.  이런 설정을 위해 우리는 물의 표면을 닮은 금속 판을 제작하여 천장에 설치하였다. 대리석으로 가득 찬 방이 환상 속에 물속에 잠기는 순간이었다. 



13,000 sqf  대규모의 이 플레그 쉽 프로젝트는 훗날 미국 인테리어 메거진이 뽑은 ‘Best Retail design in decades’ (수십 년간 현존하는 최고의 리테일 디자인상) 상을 받을 정도로 대 성공을 거두웠다.  그리고 놀랍게도 가장 좋은 평판을 받은 곳은 우리가 가장 골머리를 쓴 그 랜드마크 방이었다.   다소 처리하기 힘들었을 옛 공간을 맥락 그대로 유지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다시 쓴 공간이라며 새로운 환상을 선사했다나?  우리 팀 모두가 힘을 합쳐 이 제약을 기회로 삼고 그 문제점을 피해 가려 하기보다 그 공간만의 장점을 살리는 쪽으로 포용하여 얻은 결과였다.  넘지 못할 장애물이 길을 막고 있는 경우에도 정면으로 돌파하며 받아들이려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걸 증명 해준 사건이었다.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리게 될 때가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말은 단순히 황소처럼 들이받으라는 뜻은 아니다. 해야 하는 일이라면 주체적으로, 능동적으로 즐기면서 하라'는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어려운 일일수록 거부하고 대항하기보다 즐겁게 하면 좋은 결과가 있다는 걸 난 확신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내가 주체적으로 문제점을 해결해 가려는 의지가 필요한 것은 틀림없다.  치열하게 좋아하는 사람만이 그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기에. 

파리에 갈 때마다 잊지 않고 들르는 샹젤리제 거리의 겔랑 플래그쉽.  29살의 내가 치열하게 즐기던, 꿈은 이루어진다는 긍정이 만든 소중한 기억이 담긴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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