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무해한 풍경 속에서. 스톡홀름

스웨덴-60대 부부 여행기

by 나무

*2024.06.06.(목)


따끈하고 폭신한 달걀찜을 먹고 있으면 마음까지 온기가 전해지는 기분이 들 곤 했다. 가벼운 위로가 필요한 날에는 파를 송송 썰어 넣고 달걀찜을 만들었다. 하지만 타지에서만큼은 남편과 김치찌개로 대동단결한다. 음식은 나라와 지역을 드러내는 하나의 문화코드라서 거의 대부분 그 지역의 음식으로 여행을 이어가지만 한 번씩 고향 음식이 간절해질 때도 있기 마련.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오면 첫 끼니로 김치찌개를 먹는 게 남편과의 귀국 세레모니가 되었다. 전날 힘들게 사 온 김치에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는 무슨 말이 필요하랴. 영혼까지 꽉꽉 채워주었다.


드로트닝홀름 궁전으로 가는 길

드로트닝홀름 궁전 벤치에 앉아 아름다운 정원과 정원 속을 거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편안해 보였다. 스톡홀름 도심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40여분 떨어진 이곳 드로트닝홀름 궁전에 오기 위해 지하철을 탔을 때 출근시간이 지나서인지 지하철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드로트닝홀름 궁전

유럽의 궁전들은 대개 유사한 공간 배치를 지니고 있는 데다 베르사유 궁전이 세계적인 명소이다 보니 드로트닝홀름 궁전을 보는 순간 단박에 베르사유 궁전을 떠올렸지만 사실 드로트닝홀름 궁전은 그보다 앞선 16세기에 지어졌다. 현재도 스웨덴 왕실의 거주지로 이용되고 있는 살아 있는 공간이면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궁전의 넓은 정원은 잘 관리되어 있었고 정원수들은 더러 미로처럼 배치되어 있어 달팽이놀이처럼 뱅글뱅글 따라 들어가 보면 아름다운 조각상이 놓여 있기도 했다. 파란 하늘에는 몽글몽글 새하얀 뭉게구름이 낮게 떠 있었다. 무해한 풍경이란 이런 것일 게다. 그 속에 앉아 있자니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회사들이 토요일 오전 근무를 낀 주 6일 근무였다. 결혼 전 토요일이면 자주 배낭을 메고 출근했다. 당시만 해도 대중교통 사정이 만만치 않았던 때라 수도권 밖에 있는 지역이나 산을 당일로 다녀오기는 쉽지 않았다. 11월부터 장갑을 껴야 할 만큼 추위에 취약했던 나는 뜨거운 여름이 좋았고 땡볕에 산을 오르거나 그늘 없는 길을 걷는 것을 퍽 좋아했다. 덕분에 귓바퀴까지 까맣게 그을려 벗겨지기 일쑤였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뜨거운 숨이 훅훅 터져 나오도록 산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심장박동기가 멈췄을 때 들리는 이명 같은 소리가 들리곤 했다. 인적이 드문 뜨거운 여름 산은 고요했다.


결혼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는 산에 오르는 일이 버거워졌다. 게다가 산에서 내려올 때면 여지없이 무릎에 무리가 왔다. 점점 야트막한 둔덕이나 평지를 걷는 일에 마음을 두게 되었는데, 오십이 넘어 먼 타국으로 여행을 다니다 보니 8할이 걷는 일이라 미리 기초체력을 다져둔 셈이 되었다. 두 발로 낯선 도시를 걷는 일은 기대와 설렘이 함께하니 그 즐거움은 배가 되곤 했다.


드로트닝홀름 궁전 정원

정원에 머물다 보니 어느새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정원 옆으로 이어진 잔디밭과 나무 그늘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싸 온 음식들을 먹었다. 대부분 어린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로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일 낮에 왜 이 많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나와 있는지 몰랐다.


드로트닝홀름 궁전 앞 너른 호수의 나루터에는 스톡홀름 시청사로 떠나는 배가 출항을 서두르고 있었다.


드로트닝홀름 궁전

숙소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잠깐 눈을 붙였다. 오후에는 박물관들이 모여 있는 유르고르덴지구(섬)에 다녀올 계획이 있었다. 세르옐 광장에서 트램 7번을 타면 유르고르덴지구로 바로 갈 수 있는 데다 운이 좋으면 100년이 넘은 목조트램을 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안고 숙소를 나섰다.


스톡홀름에는 독특하게 설계된 지하철 역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왕의 정원 인근에 있는 쿤스트레드고르덴역으로 1950년대 스톡홀름에서 발굴된 유물을 모티브로 디자인된 역이라고 했다. 마침 트램 7번이 서는 정류장도 그 근처라 쿤스트레드고르덴역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평일 오후의 지하철 인파 무엇? 게다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들뜬 분위기가 역력했다.


쿤스트레드고르덴역은 알려진 대로 발굴현장의 재현과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치 땅 속의 발굴 현장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쿤스트레드고르덴역

트램을 타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도로는 차량 통제로 인해 텅 비어 있었다. 어제만 해도 한산했던 왕의 정원에는 군악대의 연주가 이어졌고 그 모습을 영상에 담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제야 6월 6일 오늘이 스웨덴 최대 국경일인 독립기념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왕의 정원
텅 빈 도로

도로가 텅 비었으니 트램은 물 건너갔고 천상 걸어서 유르고르덴지구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구글맵은 도보 30분을 가리켰다.


돌이켜보면 왕의 정원에서 바다를 끼고 유르고르덴지구를 걸어서 오갔던 시간들이 여행을 준비하며 상상했던 스톡홀름의 이미지와 정취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감라스탄이 박제된 아름다움이라면 이 거리에서 만난 풍경은 역사가 쓰여지고 있는 생존과 역동의 시공간으로 다가왔다.



도로의 한 편이 바다로 열려 있어 시야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선선한 바닷바람과 정박해 있는 크고 작은 요트들이 즐비했고 선상에서 나부끼는 돛과 깃발들 그리고 바다를 마주하고 도열한 듯한 도시의 건물들은 세월의 빛깔이 곱게 스미어 도시의 깊이를 더했다.



거리에는 스톡홀름 시민들이 전부 쏟아져 나오기라도 한 듯 사람들로 넘쳤다. 그 대열을 따라 걷다 보니 유르고르덴지구로 들어가는 다리로 이어졌다. 다리의 기둥 위에는 북유럽신화에 등장하는 천둥의 신 토르와 미의 여신 프레이야의 조각상이 있었다.


바사, 노르디크, 바이킹, 아바, 스칸센 등 실내외 박물관들이 모여 있는 유르고르덴으로 건너가긴 했는데 하아.. 이 혼잡한 축제 분위기에 감정이입 되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 속에 계속 있자니 남아있던 기운도 몽땅 소진되는 기분이라 바다 옆에 있는 펍에 들어 가 다리도 쉴 겸 와인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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