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핀란드-60대 부부 여행기
*2024.06.11.(화)
헬싱키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여객선 터미널로 향하다 보았던 LP음반들이 눈에 밟혔다. 1유로를 붙여 놓은 걸 보면 딱히 매력적인 건 없을 테지만 그래도 한 번 보고나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막막하고 뿌옇기만 하던 이십 대의 기억 속에 가끔 들렀던 을지로의 음반 가게가 있다. 가벼운 주머니를 생각하며 매장 안을 둘러보던 시간들, 턴테이블이 없어 들을 수도 없는 음반에 마음을 두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빙그레 웃음이 난다. 그렇게 한 두장씩 샀던 몇 안 되는 음반들은 하나도 상실하지 않고 지금도 가끔 턴테이블에 올리고 음악을 듣는다. 핀이 스크래치 난 곳을 지날 때 내는 지지직거리는 잡음조차 세월의 기록이자 옛 추억을 소환하는 노스탤지어가 된다.
지난해 딸과 함께 도쿄 여행 중에 신주쿠에 있는 LP매장 서너 곳을 둘러봤었다. 넓은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오래된 음반들과 음반을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국내에서는 이제 보기 드문 풍경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저렴한 음반 가격에 놀랐었다. 과거 일본은 음반을 발매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들은 기억이 난다.
시간은 정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오후 1시 30분에 헬싱키로 출발하는 배를 기다리며 터미널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2박 3일의 여정으로 머물렀던 탈린에서 왜 영화 <타인의 삶>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동독의 정보국 요원 비즐러가 유명인 (불륜)커플을 감시하기 위해 그들의 사생활을 도청하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그리고 있었다. 타인의 삶이 그의 내면에 균열을 내면서 서서히 변화해 가는 비즐러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가 떠올랐던 이유는 아마 전파라는 유사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스토니아가 소련에 속해 있던 시절, 에스토니아인들 대다수가 핀란드 방송의 전파를 몰래 잡아 서방의 티브이 프로그램과 가요를 접했다고 한다. 이것은 1991년 발트 3국 중 에스토니아가 소련의 지배로부터 가장 먼저 독립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
배는 정확히 1시 30분에 헬싱키를 향해 출발했다. 선내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10층짜리 크루즈는 흔들림도 없이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이 나아갔다. 마치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있는 듯했다. 2시간 후면 헬싱키에 내리게 된다. 오픈샌드위치를 주문해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쉥겐국가인 두 나라는 출발할 때도 그랬지만 헬싱키에 내릴 때도 별다른 입국심사 없이 땅을 밟았다.
헬싱키 숙소가 있는 건물에는 수동식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건물의 나이가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잘 관리되고 있는 듯했다.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작은 부엌과는 달리 거실과 침실 모두 널찍한 데다 넓은 창이 있어 실내 가득 환하게 빛이 들어와 있었다. 샤워를 할 때 보니 샤워부스가 있는 쪽 타일바닥에는 따뜻하게 불이 들어왔다.
짐을 풀어놓고 간단히 장도 볼 겸 동네 산책을 했다. 여느 유럽처럼 노면전차가 지나다녔고 거리는 한산했다. 장을 보러 들른 마트에 납작 복숭아가 보였다. 납작 복숭아는 우리 부부에게 첫 유럽 자유여행지였던 파리의 추억을 소환하는 각별함이 있는 과일이다. 그래서인지 납작 복숭아가 보이면 예외 없이 장바구니에 담게 된다.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저녁을 준비해 놓고 맥주를 마셨다. 넓은 창밖으로 천천히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시나브로 어두워질 것 같았던 밤하늘은 서서히 푸른 밤하늘로 갈아입더니 자정이 넘도록 어둠이 내리지 않았다. 백야가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