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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Jun 16. 2024

게으른 사람

뒹굴거리기는 내가 한수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7대 죄악’이 있다. 오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폭식, 정욕. 영화 ‘신과 함께’에서는 저승에서 재판받아야 할 일곱 지옥이 나온다.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이 중에 겹치는 목록이 있다. 바로 ‘나태’. 성경의 7대 원죄를 소재로 한 영화 ‘세븐’에서는 성실하게 일하지 않고 ‘나태’했다는 이유로 마약 밀매상을 한 달 동안 침대에 묶어서 살해한다. ‘신과 함께’에 나오는 나태 지옥은 더 끔찍하다. 커다란 나무가 프로펠러처럼 계속 돌아간다. 나태 지옥의 사람들은 그 나무에 부딪히지 않으려고 쉼 없이 뛰어야 한다. 그러다가 사람들에게 밀려 물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 괜히 뜨끔하다. 나도 같은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게으른 죄. 그게 살인, 배신, 폭력, 탐욕, 정욕 등과 같은 선상에 오를 정도로, 그리 큰 잘못인가….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란 말인가.     



선조들은 게으르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부지런한 개미와 놀기만 하는 베짱이. 느리지만 끝까지 달린 거북이와 빠르지만 게으름 피운 토끼. 모든 이야기의 승자는 언제나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한 인물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자기계발서도 비슷한 말을 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그런 글을 읽으며 늘 다짐한다. 

“그래. 나도 이제 더 이상 게으르게 살지 말아야지. 운동도 하고, 글도 매일 쓰고, 공부도 하고 열심히 살아야지. 나는 할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헬스장을 등록했다. 친구와 내기도 했다. 일주일에 네 번 이상 헬스장을 출석하지 않으면 벌금 만 원을 주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일주일에 매일도 아니고 네 번. 너무 쉬운 거 아니야? 한 달이 지나자 조금씩 다시 나태해졌다. 처음으로 내기를 진 날 생각했다. 그래. 한 번은 질 수 있지. 이번 주는 너무 힘들었으니까. 이제 다시는지지 말자. 다짐이 무색하게 친구에게 만 원을 주는 날들이 점점 늘어났다. 나중에는 거의 내가 친구에게 기부를 하는 꼴이 되었다. 결국 보다못한 친구가 먼저 제안했다. 

“이럴거면 내기 그만두자.”

그렇게 내기는 끝났고, 헬스장도 그만두었다.      



언젠가 네이버 블로그에서 ‘주간일기 챌린지’라는 이벤트를 했다. 매주 한 편의 일기를 블로그에 올리면 추첨을 통해 상품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런 좋은 기획이. 일주일에 한 번만 쓰면 된다고?’. 우습게 생각했다. ‘매일도 아니고, 일주일에 네 번도 아니고, 단 한 번. 그걸 누가 못해.’     



그걸 내가 못 하더라. 월요일이 되면 늘 다짐했다. ‘이번 주는 미루지 않고 빨리 써야지.’ 월요일엔 모든 것이 글의 소재로 보인다. 이번 주는 이걸 써볼까? 아 이걸 쓰면 재밌겠는데? 하지만 쓰지 않는다. 결국 일요일 밤이 된다. 노트북 앞에 앉고 억지로 꾸역꾸역 글을 쓴다. 아, 정말 쓰고 싶지 않다.      



브런치에서 처음 작가 승인이 났을 때도 내가 글을 꾸준히 쓸 줄 알았다. 아무 것도 아닌 나를 브런치에서는 작가로 불러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글을 쓰는 게 예의라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못했다. 오랜만에 들어가 본 브런치 스토리에는 이런 메시지가 있었다. 

“구독자들은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님에게 더 깊은 친밀감을 느낀다고 해요. 작가님의 소식을 기다리는 구독자들에게 새 글 알림을 보내주시겠어요?”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얼른 쓰겠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침대 정돈부터 똑바로 하라.’는 미군 해군 대장 출신 윌리엄 맥레이븐 총장님의 연설과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라는 조던 피터슨 교수님의 말씀에 감동하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침대에 쫙 펼쳐본다. 방을 깨끗하게 정리해본다. ‘음, 그래. 나도 이제 부지런한 사람이 되는 거야.’ 잠시 후 아내가 나를 부른다. 

“이불 정리 좀 해줘! 방에 책상도 좀 치우고!”

응? 그거 다 정리한 건데….     



천재 문학가 이상은 말했다.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뒹굴거리며, 축 처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그런 상태가 좋았다.”

아! 역시 이상도 나와 같은 생각이구나. 내가 뒹굴뒹굴하는 건, 게으른 게 아니야.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절대적인 상태를 즐기는 것뿐이야. 이상도 저렇게 뒹굴뒹굴하는 걸 좋아한다는데, 나도 좀 뒹굴거려도 되겠지. 잠시 후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난 이상처럼 천재가 아니잖아.      



꿈에서라도 한번 만나보고 싶은 천재 문학가 이상.

혹시나 꿈에서 만나게 된다면, 게으름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함께 나누고 싶다. 

이상처럼 시를 쓸 수도, 소설을 쓸 수도 없지만, 

뒹굴거리기는 내가 한 수 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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