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둘기 Jun 15. 2024

체육 선생님 아닙니다.

운동 못합니다. 아니, 싫어합니다.

가끔 누군가 직업을 물을 때가 있다.

“혹시 비둘기님은 어떤 일 하세요?”

“아, 저는 초등교사입니다.”

초등교사라는 걸 밝히면 자주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그럼 어떤 과목 가르치세요?”

“저는 모든 과목 다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부분 그때 서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시 떠올린다.

“아!! 맞다!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때는 담임 선생님이 다 가르쳤지.”



많은 선생님들이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나에게는 한 과목을 콕 집어서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혹시 비둘기님은 어떤 일 하세요?”

“저는 초등교사입니다.”

“아! 체육 선생님이세요?”

“아니요. 체육도 가르치긴 합니다만…. 체육 선생님은 아니고요. 모든 과목 다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당연히 체육 선생님이신 줄 알았어요.”          



이해한다. 충분히 오해할 만하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옷차림. 운동도 못하면서 츄리닝을 즐겨 입는다. 신발도 운동화만 산다. 다른 옷은 잘 사지 않는다. 정장은 대학교 졸업할 때 아빠가 사준 한 벌. 결혼식 때 입었던 한 벌. 단 두 벌 뿐이다. 1년에 한 번 입을까 말까다. 가끔 정장을 입을 때면, 넥타이를 매는 법을 몰라서 곤란해한다. 일상복도 츄리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내가 사준 옷이다. 매일 아침 출근 전에 아내에게 묻는다.

“나 오늘 뭐 입어?”          



둘째, 멀쩡한 허우대. 체구가 작지 않은 편이고, 피부도 까만 편이다. 옷을 입고 있으면 사람들은 흔히 내가 몸이 좋을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사실 아닌데….


한 번은 술집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 약간 취한 듯한 남자분이 오셔서 말씀하셨다.

“몸이 진짜 좋으시네요. 한 번 만져봐도 돼요?”

“아! 아닙니다. 몸 안 좋아요.”

이 정도면 완곡한 거절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이미 내 어깨를 만지고 있었다.

‘물렁물렁’

예상과 다른 촉감에 그는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그를 보며 말했다.

“이거 그냥 살입니다.”

술에 취해 살짝 풀려있던 그의 눈이 갑자기 또렷해졌다. 그는 ‘죄송합니다.’라고 외치며 황급히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아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죄송할 건 없고요. 그냥 그렇다고요.’     



셋째, 어눌한 말투와 꺼벙한 표정. 불분명한 발음. 초점을 잃은 눈동자. 늘 약간 벌리고 있는 입. 이를 종합해보면 누구나 합리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저 사람은 머리를 쓰는 직업은 아닐 테야.’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신의 직업을 교사라고 하니,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이 사람이 교사라고? 이 사람이 정말 학생들 앞에서 수업한다고? 아! 허우대가 멀쩡한 거 보니 체육 선생님인가 보구나.’     



사실 그런 오해가 기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내가 운동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나는 운동을 못 한다. 심한 몸치다. 남들은 한 번 보면 따라 하는 동작을 아무리 많이 봐도 따라 하지 못한다. 중학교 체육 시간에 레이업 슛 수행평가를 봤다. 다른 친구들은 선생님의 시범을 보고 곧잘 따라 하는데, 나는 매번 발이 꼬였다. 선생님께서도 처음엔 ‘이걸 왜 못하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시다가 나를 위해 특별 대책을 세우셨다.

“비둘기 여기로 와봐. 지금부터 말해주는 걸 공식처럼 외워. 여기 오른쪽에 이렇게 선이 있잖아. 여기까지 우선 뛰어와. 이 선에 오는 순간에 '왼발, 오른발, 슛!' 외워봐. '왼발, 오른발 슛!'”

그렇게 나는 레이업 슛 수행평가를 통과했다. 지금도 나는 오직 그 위치에서만 레이업 슛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운동을 안 좋아한다. 헬스장을 등록하고 한 달 이상 꾸준히 간 적이 없다. 나 같은 사람 덕에 헬스장은 저렴한 회비에도 유지가 된다. 얼마 전에도 호기롭게 6개월 회원권을 등록했다가, 2주 다니고 당근마켓에 헐값에 팔았다. 헬스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은 나에게 이런 비난을 자주 했다.

“넌 조금만 하면 금방 몸 좋아지겠는데, 운동을 왜 안 하는 거야.”

나는 대답한다.

“헬스 재미없잖아. 나도 요즘 운동하고 있어.”

“그래? 무슨 운동?”

“피구.”     



이런 사람이 체육 선생님으로 오해받다니. 양심에 너무 찔린다. 전국의 훌륭한 체육 선생님들께 너무나 죄송하다. 이제는 더 이상 오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이렇게 글을 쓴다.      




저 체육 선생님 아닙니다.

운동 못합니다.

아니 운동 싫어합니다.

운동 경기 보는 건 좋아합니다.     


몸 안 좋습니다.

이거 근육 아닙니다. 살입니다.

물렁물렁하니 만지지 마세요.      


체육도 가르치긴 합니다.

주특기는 앞구르기, 뒷구르기입니다.

농구, 축구, 배구, 야구는 기본이고,

높이뛰기, 멀리뛰기, 심지어 경보까지

대부분 스포츠의 경기 규칙과 이론은 빠삭하게 외우고 있습니다.

잘 아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더군요.         


그러니 이제 부디 오해는 그만해주시길...

양심에 너무 찔려서요...




이전 03화 내가 달리기 2등을 하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