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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Sep 18. 2024

그 정도면 뛰어가지

참 달리길 잘했다.

10km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니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웬만한 거리는 달려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학교에 출근할 땐 보통 지하철을 이용한다. 집에서 대략 세 정거장 정도를 가면 된다. 멀진 않지만, 걸어가기엔 조금 먼 거리였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문득 궁금해졌다. ‘학교에서 집까지 뛰어가면 얼마나 걸릴까?’. 마침 체육 시간이 있던 날이라,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들고 왔던 가방은 하루만 교실에 두고, 집까지 달려가기로 했다. 교문을 나서는 순간 달리고 싶었지만, 내 사회적 지위를 위해 조금 걸었다. 혹시나 동네에서 놀던 학생들이나 퇴근하는 선생님들과 마주치면 민망할 것 같았다. 잠시 후 조금씩 인적이 드물어졌다. 이젠 뛰어도 누굴 마주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스마트 워치에서 달리기 어플을 켜고 바로 달렸다.      



걸어가긴 아득한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달려보니 고작 3km밖에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가까워서 놀랐다. 시간도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시간, 지하철 기다리는 시간 등을 생각하면 지하철 타고 가는 것보다 달려가는 게 더 빨랐다. 학교에서 샤워만 할 수 있다면 출근도 달려서 해버릴 텐데. 그럼 아침이 좀 더 여유로워질 텐데. 조금 아쉽다. 그날 이후, 날씨가 좋은 날은 가끔 달려서 퇴근한다. 시간도 아끼고, 건강도 좋아지는 1석 2조의 퇴근이다. 


    

참 달리길 잘했다.     



  

혼자 달릴 땐 보통 집 주변을 달렸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밖을 나온 그 순간부터 달릴 수 있어서 좋았다. 집 근처에 달릴 만한 공원도 많아서 굳이 멀리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달리기에 점점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송도 러닝크루’를 찾아갔다. 함께 뛰는 건 혼자 뛰는 것보다 장점이 많았다. 서로 응원해주며 달리니 훨씬 즐거웠고, 달리기에 관해서도 많이 배웠다. 하지만 불편한 점이 하나 있었다. 시간과 장소를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송도러닝크루는 송도 이곳저곳을 달린다. 송도에 살면서도 몰랐던 많은 공원을 송도러닝크루 덕에 알게 되었다. 문제는 모든 공원이 내 집 근처는 아니라는 점이다. 달리기를 하러 차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고 간다? 차라리 그 시간에 더 뛰고 말지. 달리기가 끝난 뒤 땀에 젖은 몸으로 지하철을 타는 것도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1년간은 내 집 주변 공원을 달릴 때를 제외하곤 크루런에 참석하지 않았다. 사실상 유령 회원이었다.


      

이제는 함께 뛰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크루원과 함께 달리기 위해 새벽부터 차를 타고 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른 아침만 아니라면 더 이상 차를 탈 필요도 없어졌다. 인천 송도 어디라도 달려갈 수 있는 체력이 생겼다. 요즘은 크루런을 하러 갈 때 대부분 달려간다. 끝나고 올 때도 집 방향이 같은 분들과 달려온다. 그만 달리고 싶더라도 멈출 수 없다. 집엔 가야 하니까. 다행히 아직까지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주말엔 아침 일찍 일어나 아내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달리기를 하러 나간다. 송도의 자랑 센트럴 파크를 한 바퀴 달리고, 또다른 송도의 자랑 ‘명란 바게트’가 있는 빵집으로 뛰어간다. 땀을 흘리며 가게로 들어가 기쁜 마음으로 빵을 고른다. 내가 좋아하는 빵과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골고루 골라 담는다. 그리고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나 빵 사서 갈게!“

그러면 늘 상당히 기뻐 보이는 이모티콘이 날아온다. 

”GOOD!“

기쁜 마음으로 손에 빵 봉투를 꽉 쥐고 다시 집까지 달린다.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남을 위한 삶을 살아라! 그것이 곧 자신을 기쁘게 할 것이다.’라는 고명환 작가의 말이 마음 깊이 이해가 된다.    


 

다시 생각해도

참 달리길 잘했다.     



     

하루는 아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오늘 회사 끝나고 회식이 있는데, 차를 두고 그냥 버스 타고 가야 하나?”

“거기 내가 버스 타고 가보니까, 엄청나게 오래 걸리던데. 그냥 택시 타고 가지?”

“아침에 우리 집 앞은 택시가 안 잡혀. 지난번에도 택시 타려다가 늦었잖아.”

“아…. 그럼 그냥 차 타고 가서 대리운전을 불러야 하나?”

‘대리운전’이라는 단어를 듣자, 문득 얼마 전 보았던 크루원분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떠올랐다. 그분께서 아내가 있는 곳까지 달려가 ‘대리운전’을 해주셨다는 글이었다. 나는 바로 아내에게 물었다. 

“회식을 어디서 한다고 했지?”

“구월동 예술회관역에서.”

그리고 바로 휴대폰 지도로 거리를 검색했다. 약 10km 정도였다. 좋았어! 이 정도면 뛰어갈 만하지. 그 즉시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그냥 뛰어갈게. 회식 끝나기 한 시간 전에만 알려줘!”     



그날 밤. 송도에서 구월동까지 기쁜 마음으로 달렸다. 처음 달려본 낯선 길이라, 여행하는 느낌도 들었다. 뛰다가 내가 가봤던 장소들이 나오면 반가웠다. 아내랑 가봤던 옥련시장, 내가 살던 문학동 골목, 고향 가는 버스를 타던 인천 터미널을 지나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내가 차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 달리기가 가끔은 쓸모가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달리기 덕에 모두가 행복한 밤이었다.      

집에 와서 ‘대리운전 런’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그러자 ‘대리운전 런’을 나에게 알려주신 크루원님께서 메시지를 보내셨다. 

“오! 대리운전 런! 막걸리 한잔 벌었습니다.”

달리기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막걸리를 벌었다니, 이렇게 기쁠 수가! 바로 나가 막걸리를 사왔다.



막걸리 두 병을 마시고 생각해봐도

참 달리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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