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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Oct 05. 2024

재능이 없으면 끈기라도 있어야지

뭐라도 해야지

국어 시간에 조선 시대 시인 김득신을 가르친 적이 있다. 김득신은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10살이 되어서야 글을 깨우쳤고, 공부한 내용을 뒤돌아서면 잊어버렸다. 하루는 말을 타고 집에 돌아가던 중 시를 읊고 있는데 마지막 문구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김득신의 마부가 그 마지막 구절을 읊었다. 김득신은 마부에게 감탄하며 자신이 말에서 내려 고삐를 잡고, 마부를 말에 타게 했다. 마부는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께서 늘 읇던 시 아니십니까? 하도 많이 들어서 저도 외워버렸습니다." 김득신은 이마를 탁 치며 웃었다.     



김득신의 아버지는 아들을 안타깝게 여겼다. 재능이 없는 공부를 너무나 좋아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떨까? 아버지는 김득신에게 공부를 멈추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김득신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부족한 학습능력을 학습량으로 보완했다. 한 책을 1만 번 이상 읽었고, 11만 3천 번을 읽은 책도 있었다. 엄청난 노력 끝에 그는 59세의 나이에 성균관에 합격했고 , 당대 최고의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득신의 묘비명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이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려있을 따름이다.     


○     


초등학교도 가기 전부터 아빠와 동네 운동장에서 야구를 많이 했다. 내가 친 공이 조금만 멀리 가도 아빠는 홈런이라고 나를 응원했다. 홈런 친 날을 달력에 기록도 했다. 그래서 난 내가 야구를 잘하는 줄 알았다. 초등학교 때, 다른 학교 야구부 코치님께서 우리 학교를 오셨다. 야구를 해보고 싶은 사람 없냐고 물었다. 나는 번쩍 손을 들었다. 그는 나에게 와서 말했다. 

“오! 키도 큰 편이고, 좋다.”

그런데 그는 시선이 내 몸을 향하더니 말을 바꾸었다. 

“손목이 너무 가느네. 이렇게 뼈가 가늘면 야구 못해.”

손목만 보고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무르팍 코치님 덕분에, 야구 선수의 꿈은 공 한 번 못 던져보고 좌절되었다.      

피아노 학원, 미술학원, 방과 후 축구부까지 안 해본 게 없지만, 뭐 하나 재능있는 게 없었다. 축구 선수를 하기엔 달리기가 너무 느렸다. 음악을 하기엔 감각이 너무 없었고, 미술은 정말 최악이었다. 6학년이 되자, 아빠가 나와 등산을 가던 길에 말했다. 

“아무것도 잘하는 것 없는 사람이 하는 게 뭔 줄 아냐?”

“몰라” 

“공부야. 이건 오래 앉아있기만 하면 할 수 있어.”

아빠 말은 맞았다. 공부에도 별다른 재능은 없었지만, 오래 앉아있는 건 잘했다. 오직 오래 앉아있는 습관으로 교사라는 직업까지 얻게 되었다.      



이 직업이 아직 좋다. 그래도 가끔 상상해본다. ‘내가 그때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갔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때 축구부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계속 피아노를 쳤다면 어땠을까? 내가 미술학원에 계속 다녔다면, 지금은 조금 나아졌을까?’. 그때 내가 다른 길을 갔다면 지금 내 모습은 어떨지 궁금하다. 재능은 없어도 열심히 했다면 성공했을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재능이 없어 처절하게 실패했을까?      


○     


하버드 대학교에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130명의 학생에게 러닝머신 위를 5분 동안 전속력으로 달리게 했다. 그게 전부였다. 5분 뒤 실험이 끝나자, 학생들은 러닝머신을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진짜 실험은 그때부터였다. 연구팀은 2년마다 실험 참가자를 추적 조사했다. 조사는 무려 40년 동안 이어졌다. 40년이 지나자 직업적 성취도, 사회적 만족도, 심리적 행복이 눈에 띄게 높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연구진들은 그들의 공통점을 40년 전 그들의 모습에서 찾아냈다. 그들은 모두 러닝머신 위에서 체력의 한계가 온 순간 몇 발자국이라도 더 달리려고 애쓰던 이들이었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앤젤라 더크워스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 끝까지 밀어붙이는 집념과 끈기를 ‘그릿’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재능’이 아닌 ‘그릿’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다양한 사례로 이를 증명한다. 학생뿐만 아니라 군인, 직장인, 교사 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재능’지수가 높은 이들보다 ‘그릿’지수가 높은 이들이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연구를 보면 기분이 좋다. 나처럼 그 어떤 재능도 없는 사람이라도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다. 혼자 희미하게 웃으며 생각한다. 

‘뭐? 내가 손목이 가늘어서 야구를 못한다고? 내가 그날 야구부 갔으면 지금 메이저리거야!’     



○     



<그릿>에서 ‘성취= 재능X노력²  ’이라는 식이 나온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이 성취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수많은 데이터로 이 식을 검증한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투지, 끈기, 집념. 즉, ‘그릿’이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한다. 물론 ‘재능이 더 중요한가, 그릿이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은 사람마다 견해가 다르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 할 점은 그릿이다. ‘타고난 재능’은 바꿀 수 없지만, ‘그릿’은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릿을 기르기 위해서는 더 높은 목표를 가지고 의식적인 연습을 해야 한다. 성과가 당장 나지 않더라도 언젠가 다가올 좋은 날을 꿈꾸며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투지와 끈기를 가지고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야 한다. 그릿을 기르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을 추천한다. 바로 달리기다. 달리기는 내 한계를 시험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다.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수도 없이 한계에 부딪혔다. 훈련소에서 1.5km를 달리다가 숨이 차서 드러누웠다. 자대 배치를 받고 처음으로 한 저녁 구보 도중 숨이 차서 낙오했다. 3km를 12분 30초 안에 달리지 못해서 특급 전사가 되지 못했다. 전역 후 인하대학교 트랙에서 단순한 호기심에 10km를 달리고, 다음 날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하지만 좌절의 순간에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재능이 없으면 끈기라도 있어야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도 달리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수없이 많이 맞이한다. 그 포기의 순간을 이겨내고 달리기를 마치면 엄청난 뿌듯함이 몰려온다.      



미국의 영화배우 윌 스미스는 최고의 배우가 된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남들과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면 런닝머신 위에서 죽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 뿐입니다. 나보다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물론 나보다 재능이 많은 사람, 똑똑한 사람, 매력이 넘쳐나는 사람들이 있겠죠. 하지만 나와 함께 런닝머신에 올라간다면 그 사람이 먼저 기권하거나 내가 죽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정말입니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 대결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그를 통해 깨닫는 점이 하나 있다. 성공은 무엇인가 빠르게 이루는 게 아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것이다. 


달리기도 그렇다.      



人一能之己百之 (인일능지 기백지)

남이 한 번 해서 그것에 능하면나는 그것을 백 번이라도 하고

人十能之己千之 (인십능지 기천지)

남이 열 번 해서 그것에 능하면나는 그것을 천 번이라도 한다.

果能此道矣 (과능차도의)

과연 이러한 도에 능하게 된다면

雖愚必明 (수우필명)

비록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현명해질 것이며

雖柔必强 (수유필강)

비록 유약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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