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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Oct 06. 2024

함께라서 행복해요

러닝크루를 위한 변명

송도러닝크루와 함께한 첫날을 떠올려본다. 송도 러닝크루는 먼저 크루 활동을 하던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달리기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그가 먼저 제안했다. 

“형, 송도에도 러닝크루가 있어요. 다음에 시간 나시면 같이 뛰어요.”

당시는 ‘러닝크루’라는 말도 익숙지 않았다. 함께 달리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그에게 참여 방법을 묻자, 친절히 알려주었다.


     

2022년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아직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남아있던 날. 처음으로 송도러닝크루 정규런에 참여했다. 시간에 맞춰 집합 장소로 나갔다. 도착하자 누가 봐도 러너의 모습을 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쭈뼛쭈뼛 그들에게 다가갔다.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분께 다가가서 웅얼웅얼 말했다. 

“저. 오늘 처음 왔는데요….”

그분께서는 친절히 대답해주셨다. 

“저기 보이는 저분께 가서 출석 체크 하시면 됩니다.”



출석 체크를 하고 무리와 조금 떨어져 섰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몸을 푸는 척을 했다. 괜히 발목도 돌려보고, 허리도 돌려보았다. 나에게 송도 러닝크루를 소개해주었던 지인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지인은 도무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그날 끝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별과 달 중에 누가 더 외로울까?

힌트는 별은 무수히 많은데 달은 혼자라는 것

그래별이 더 외롭지

무수히 많은 속에 혼자인 게 훨씬 더 외롭지

당신처럼나처럼

<별과 달 중에 정철>     



시간이 되자 흩어져 있던 모두가 모였다. 준비 운동을 한 뒤, 그룹을 나누어 달렸다. 나는 B그룹이었다. 처음 가본 장소인 ‘달빛공원’. 잔잔한 물결과 다리의 조명이 잘 어우러지는 공원이었다. 달릴 때도 모두가 별말은 없었다. 원래 그런 건가? 많이 어색했다. 그래도 함께 달리니 평소보다 몸이 가벼웠다. 금세 7.5km를 달렸다. 혼자서 뛰다가 수많은 러너와 함께하는 기분은 새로웠다. 어색함과 민망함을 이겨낼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그날 이후 집 근처 공원에서 송도러닝크루의 정규런이 열릴 때면 꼭 참석했다. 그리고 이제 내 달리기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었다.      


○     


최근 러닝크루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러닝 크루가 시민들에게 많은 불편을 끼친다는 기사도 나온다. 무리 지어 달리며 산책하는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행위. 달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인도나 차도를 막는 행위, 모든 시민을 위한 체육시설을 전세 낸 것처럼 사용하는 행위. 소음을 유발하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행위 등. 비판받아 마땅할 수많은 행위를 보면서 나도 달리며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끼친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달리기 열풍이 불고 러닝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러닝크루도 점점 많아졌다. 급격한 양적인 팽창 과정에서 겪는 부작용이라고 생각한다. 마음껏 달릴 자유는 언제까지나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되는 것이다. 혹여나 내 달리기로 피해당한 누군가가 있다면 진심으로 죄송하다.     



하지만 다소 과한 비난들도 있다. 잘못된 행동을 넘어서 크루 문화 자체를, 심지어 달리기 자체를 비난하는 이들도 보인다. ‘보여주기 위해 달리는 이들’, ‘유행 따라 휩쓸리는 이들’, ‘달리기보단 이성이 목적인 이들’. 이런 원색적인 비난에는 대꾸하기도 싫다. ‘골프, 테니스 치다가 돈 떨어져서 이제 달리기네!’라는 비난은 서글프다. 그래. 돈 없다. 골프, 테니스는 쳐본 적도 없다. 그래서 당신이 러닝화라도 하나 사준 적 있나?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나려 하네.      



마지막으로 ‘달리기도 혼자 하는 운동입니다.’, ‘진짜 잘하는 사람들은 다 혼자 뜀.’ 같은 비판은 일부 인정한다. 달리기는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다. 배드민턴이나 테니스처럼 대결 상대가 필요하지 않다. 나 역시도 대부분 혼자 달린다. 내가 좋아하는 락밴드의 노래를 들으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속도로 달릴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달리기도 분명 함께하면 좋은 점들이 많다. 특히나 러닝크루 활동도 장점이 매우 많다.     



첫째, 고수가 많다. 배움의 가장 빠른 길은 그 분야의 고수에게 직접 배우는 것이다. 송도러닝크루엔 고수를 넘어 괴수가 되신 분들이 많았다. 덕분에 돈 한 푼 내지 않고, 돈 주고도 못 배울 여러 달리기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평소 달릴 때 속도는 어느 정도가 괜찮은지, 한 달에 얼마나 달려야 하프 코스,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는지, 더 먼 거리를 달리기 위해서는 어떤 훈련을 해야 하는지, 좀 더 빠르게 달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덕을 올라갈 땐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 내리막길에선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 이 모든 노하우를 송도러닝크루에서 배웠다. 덕분에 달리기 실력도 늘었고, 더 즐거워졌다. 


     

둘째, 포기하고 싶을 때 큰 힘을 준다. 군대에서 40km 행군을 한 적이 있다. 무거운 군장을 메고 출발할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걸 왜 하는 거야. 끝까지 할 수 있을까? 오늘 중도 포기하는 애들 많을 것 같은데….”

나는 중도 포기할 것 같은 동기들을 짐작해보았다. 평소에 체력이 좋지 않던 동기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생각보다 낙오한 이들이 없었다. 대부분이 40km 행군을 완주했다. 행군이 끝나고 생활관에 들어와 친한 동기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야! 내가 오늘 무슨 생각으로 간 줄 아냐? 와! 쟤도 하는데 내가 못 한다고? 이 생각으로 끝까지 왔다.”

그러자 그 동기가 갑자기 깔깔 웃으며 말했다. 

“와! 형도 그 생각했어? 나도 그랬어! ‘저렇게 늙은 형도 가는데, 내가 멈추면 안 되겠다.’ 이 악물고 버텼지.”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혼자였다면 달리기를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고 싶은 순간도 함께하면 좀 더 버틸 수 있다. 힘든 훈련일수록 함께 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 함께 한다는 건 그런 힘이 있다.      



셋째, 마라톤 대회 때 엄청난 응원을 받을 수 있다. 딱 한 번 혼자서 마라톤 대회를 나가본 적이 있다. 나 혼자 준비 운동을 하고, 나 혼자 출발선에 서고, 나 혼자 달리고, 나 혼자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 혼자 메달을 받고, 나 혼자 간식을 먹었다.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고 싶어서 지나가는 분께 부탁드렸다. 

“혹시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 수 있나요?”

민망함에 별다른 포즈도 취하지 못했다. 사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냥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다짐했다. 절대 혼자서는 마라톤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크루와 함께 나가는 마라톤은 즐겁다. 대회장에 도착하면 오늘 목표를 서로 나눈다. 함께 준비 운동을 하고, 단체 사진도 찍는다. 출발선에서 기다릴 때도 외롭지 않다. 특히나 달리는 중간에도 서로 응원을 나눈다. 오직 달리는 크루원을 응원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나오시는 분들도 있다. 달리다 멈추고 싶은 순간에도 크루 깃발이 보이면 저절로 빨라진다. 저 깃발까지 빨리 가고 싶다는 의지가 샘솟는다. 가끔은 열렬한 응원이 오버페이스를 부르기도 하지만, 달리는 게 한결 더 즐거워진다.      


○     


인터넷 공간은 얼핏 보면 이상적인 담론의 장처럼 보인다. 누구나 담론에 참여할 수 있고,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대중은 현실 세계보다 더 엄격하다. 지나친 완벽을 추구한다.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이때다 싶어 엄청난 비판을 퍼붓는다. 비판을 넘어선 비난과 조롱도 거침없이 내뱉는다. 가장 자유로운 담론장이었던 인터넷 공간은 현실보다 더 위축된 검열의 공간이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경솔한 행동을 하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인 러닝크루도 마찬가지다. 달리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달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했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고, 러닝크루의 잘못이다. 하지만 충분히 개선될 여지가 있는 잘못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 순식간에 전파되고, 수많은 사람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는다. 크루 문화와 달리기의 긍정적인 면은 어느 순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위축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이게 과연 올바른 비판 문화인가?     



달리기도 혼자 해도 좋고 함께 해도 좋은 운동이다. 러닝크루 활동도 달리기를 한층 더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다. 크루 없이 달리기를 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크루 덕에 나는 달리기가 훨씬 다채로워졌다. 크루 활동을 하는 이들이나 달리기를 즐기는 이들이 너무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 달리는 사람과 달리지 않는 사람은 결코 대결 관계가 아니다. 서로 조심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달리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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