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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Nov 08. 2024

에필로그

두번 째 도전을 마치며..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풀코스 마라톤을 도전하는 사람은 두 종류라고. 첫째, 딱 한 번의 도전으로 만족하는 사람. 둘째, 계속해서 다시 도전하는 사람. 당시 저는 첫 풀코스 마라톤 도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첫 도전이 끝난 뒤,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궁금했습니다. 한 번의 도전으로 충분하다고 여길지,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나갈지.     



삶의 대부분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했습니다. 불쾌한 경험은 물론이고, 즐거운 경험조차 그랬습니다. 지금까지 가본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 죽기 전에 다시 한번 꼭 가고 싶은 곳, 그렇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할 것 같은 곳은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드럼을 치던 무대도, 물러날 곳 없이 싸웠던 케이지도 한 번이면 족했습니다. 더 이상 미련은 없습니다.      



한 번 먹어본 것으로 충분한 오마카세가 아닌 평생을 끊을 수 없는 라면. 한 번으로 충분한 아이돌 가수의 공연이 아닌 해마다 가고 싶은 락 페스티벌.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았던 방 탈출 게임이 아닌 할 때마다 재밌는 스타크래프트. 한 번으론 만족하지 못하는 것. 두 번, 세 번을 넘어 끝없이 하고 싶은 것. 어쩌면 그게 진정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     



2024년 봄. 대구에서 첫 번째 풀코스 마라톤을 도전했습니다. 무식하고 용감했던 첫 도전은 비참하게 끝났습니다. 30km 지점에서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달리지 못하고 걸었습니다. 42.195km가 너무 길었습니다. 마지막 결승점을 통과한 뒤, 홀로 바닥에 드러누워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다음 날 눈을 뜨자 온몸에서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습니다. 한의원에 갔습니다. 한의사 선생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어디가 아프세요?”

“어깨도 뭉쳤고, 허리도 아픕니다. 허벅지 근육통이 특히 심하고, 무릎도 조금 삐걱거리는 느낌이네요. 종아리에 자꾸 쥐가 나고, 걸을 때 아킬레스건도 조금 아파요.”

한의사님께서 물으시더군요.

“아픈 곳이 많으시네요. 혹시 무슨 사고 나셨나요?”

“아…. 사고는 아니고. 어제 마라톤을 했거든요….”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침을 꽂고 누워 고민했습니다. 한 번의 도전으로 만족할 것인가.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나갈 것인가. 몸속에 박힌 침을 다 빼고, 한의원을 나오며 결심했습니다.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분하다. 한 번만 더 해보자.’

그리고 며칠 뒤, 가을에 열리는 JTBC 마라톤 풀코스를 신청했습니다. 두 번째 도전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     



JTBC 마라톤 하루 전. 오직 나 자신과의 승부를 앞둔 하루 전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습니다. 믿음의 깊이가 얕은 불량한 신자이지만, 성당 한 번 안가는 날라리 신자이지만, 진심으로 믿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쉴 새 없이 달렸습니다. 물론 많이 부족하지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만큼 노력했습니다. 훈련, 휴식, 식단, 테이핑까지 할 수 있는 ‘시도’는 모두 다 했습니다. 제가 할 일은 ‘기도’만 남았습니다. 

“제가 여름 동안 흘린 땀이 헛되지 않게 도와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제 기도가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 그저 믿을 뿐입니다.     



준비를 모두 마치고 평소보다 빨리 침대에 누웠습니다. 새벽부터 집을 나서야 하기에, 밤 9시 전에는 자려고 애썼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려 쉽게 잠이 들지 않았습니다. 두려움, 기대, 걱정, 설렘이 섞인 감정이었습니다. 아직도 잠 못 이룰 정도로 설레는 밤이 있다니.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     



마침내 2024년 11월 4일. JTBC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는 날입니다. 오직 이날을 위해 더운 여름을 견뎠습니다. 출발선에서 머릿속으로 되뇌었던 목표는 세 가지였습니다.

1. 3시간 30분 이내로 완주하자. 

2. 끝까지 걷지 말자.

3. 결승점에 웃으며 들어오자. 



저에겐 1번 목표보다 2번, 3번 목표가 더 중요했습니다. 지난 4월, 잔뜩 구겨진 얼굴로 결승점에 들어왔던 대구 마라톤의 악몽을 이겨내고 싶었습니다.      



초반에 같은 크루원 C님과 함께 달렸습니다. 5km쯤 송도러닝크루 응원단을 만났습니다. 아직 힘이 넘칠 때였습니다. 신나게 응원해주신 분들과 하이파이브를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달리던 크루원 C님께 말했습니다. 

“마지막에도 이렇게 웃으면 좋겠네요.”

그 바람은 이루어졌습니다.      



출발점을 지나고 결승점에 도착할 때까지 모든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10km를 지날 때도, 20km를 지날 때도, 30km를 지날 때도, 심지어 40km를 지날 때도 웃으며 달렸습니다. 그때 직감했습니다. 

‘오늘은 기쁘게 결승점을 통과할 수 있겠다.’

잠시 후, 저 멀리 결승점이 보였습니다. 주로 양쪽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이 들렸습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신나게 질주했습니다. 여름 내내 바라던 대로 웃으며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기록은 3시간 25분 5초. 목표보다 5분 정도 일찍 들어왔습니다.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바닥에 주저앉아 생각했습니다. 

‘한 번 더 하고 싶다. 얼른 다시 하고 싶다!’     



○     



<거북이도 달리면 빨라집니다>는 제 두 번째 책입니다. 두 번째 책은 첫 번째 책보다 더 좋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지만, 부족함을 느낍니다. 묵묵히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달리기도, 글쓰기도 결코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맹비오 파이팅’이라고 외쳐주시는 분들 덕분에 결승점까지 달릴 수 있었습니다. ‘책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덕분에 끝까지 쓸 수 있었습니다. 응원해주신 모든 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특히 철없는 남편을 믿고 지지해준 아내에게 각별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한 번으론 만족하지 못하는 것. 두 번, 세 번을 넘어 끝없이 하고 싶은 것. 어쩌면 그게 진정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닐까?’

저에게 그런 존재는 달리기와 글쓰기입니다. 달리기의 즐거움을 알리고 싶어 한 글자 한 글자 썼습니다. 그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길 바랍니다. 언젠가 함께 달릴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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