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장거리 레이스
얼마 전 체육 시간에 준비 운동으로 달리기를 했다.
“여러분, 이쪽 골대에서 출발해서 저쪽 골대까지 달릴 겁니다. 다들 내가 달릴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달리세요! 준비! 시작!”
아이들은 열심히 달렸다. 나도 천천히 달리며 아이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았다. 저마다 속도가 달랐다.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날 정도로 느린 아이도 있고, ‘지금 내가 달리면 이길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른 아이도 있었다.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다시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달리기 한 번 더하겠습니다! 준비! 시작!”
아이들과 함께 나도 달렸다. 빠르다고 생각했던 아이들 옆에서 최선을 다해 달렸다. 가장 빠른 아이들 사뿐히 따라잡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조용히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음 활동을 하려 했다. 그런데 예리한 녀석 한 명이 말했다.
“얘들아! 선생님이 C보다 느려!”
나도 모르게 변명이 튀어나왔다.
“선생님이 운동화를 안 신고 와서 그래. 다음에 운동화 신고 오면 제대로 한 판 붙자.”
구차하다 못해 구린 변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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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거리 달리기는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면 타고난 사람에게 유리하다. 원래 빠른 사람은 한동안 달리지 않아도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10km 마라톤 대회를 함께 나갔다. 대회를 시작하기 전에 몸을 풀기 위해 50m 정도를 질주했다. 그때 평소에 가장 달리지 않던 친구가 엄청난 속도로 우리를 앞질렀다. 나는 거의 매일 같이 달리는데, 왜 내가 더 느릴까? 아! 억울하다. 심지어 난 겨우 초등학교 5학년 학생에게도 패배했다. 아! 정말 분하다.
장거리 달리기는 다르다. 꾸준히 하는 사람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한때 달리기를 잘했어도 꾸준히 달리지 않는다면 꾸준한 사람에게 따라잡힌다. 아무리 달리기가 빠른 사람이더라도 장거리를 꾸준히 달리지 않았다면 그 속력을 유지하긴 힘들다. 나중에 느려진다고 해도 처음에 빠르게 달리면 먼저 도착하지 않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런 식으로 달리면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사람을 ‘절대’이길 수 없다.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는 결코 창작이 아니다. 장거리 레이스를 정확히 고증한 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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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인생의 많은 부분은 단거리 레이스보단 장거리 레이스에 가깝다. 단기간에 성취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내가 이루고픈 무엇인가가 있다면, 당장 ‘꾸준함’부터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평소에 느린 속도로 달린다. 공원을 천천히 달리다 보면 깨닫는 게 많다. 아무리 느린 속도더라도 꾸준하게 달리면 걷는 사람들을 추월한다. 나를 추월해 시야에서 사라졌던 러너가 벤치에서 쉬는 모습 보며 지나갈 때도 많다. 마라톤 대회를 나가도 마찬가지다. 무리하지 않고 그저 꾸준하게만 달려도 수많은 사람을 앞지를 수 있다. 장거리 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재능’보단 ‘꾸준함’이다. 달리지 않는 ‘황영조’ 선수가 꾸준히 달리는 ‘나’를 이길 순 없다. (‘황영조’ 감독님 건방진 말씀 죄송합니다. 함께 달릴 수 있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사실 정말 존경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꾸준함이 가장 중요하다. 지나치게 많은 학원에 다니고,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행 학습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가끔 안타깝다. 아이들이 고생하는 모습도 안쓰럽지만, 더 안타까운 이유는 따로 있다. 아이들이 하는 노력에 비해 결과가 그리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부. 특히 대학을 가기 위한 공부는 장거리 레이스인데, 100m 달리기처럼 하는 학생이 너무 많다. 단거리 종목에서는 스타트가 중요하다. 출발하자마자 승부가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장거리 종목에서는 처음에 지나치게 빨리 달리면 오히려 독이 된다. 끝까지 그 속력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가혹하지만 시험은 하나의 승부다. 단거리 레이스와 장거리 레이스의 차이점을 모르는 사람이 장거리 레이스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는 어렵다. 아이들이 노력한 대가를 제대로 보상받으려면 ‘장거리 레이스’의 속성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장거리 레이스’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비결은 ‘꾸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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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달리기를 시작한 친구가 있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동대문 마라톤’ 10km 대회에 나와 함께 나가기로 했다. 처음엔 5km도 한 번에 뛰기 어려워했다. 친구와 함께 뛰러 멀리 서울까지 갔는데, 5km도 달리지 못했다. 서울까지 간 시간이 아까웠다. 집에 오며 생각했다. ‘동대문 마라톤 나 혼자 뛰게 생겼네’. 그런데 친구는 매일 같이 달리더니, 실력이 쑥쑥 늘었다. 나에게 보내주던 기록을 보니 60분 이내에도 충분히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에 함께 만나서 달릴 때는 10km도 무리 없이 달리고, 어려운 트랙 훈련도 성공했다. 결국 그 친구는 첫 10km 마라톤에서 46분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나는 1년도 더 걸려서 세운 기록을 단번에 세우다니. 이제 곧 나를 따라잡을 게 분명하다.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다. 젠장.
내가 좋아하는 한자가 있다. 바로 常 ‘항상 상’자다. ‘늘’, ‘언제나’라는 뜻을 가진 이 한자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떳떳함’이다. 이 한자를 보면서 생각한다. 떳떳함이란 ‘늘’, ‘언제나’, ‘예외 없이’ 무엇인가를 할 때 생기는 것이구나. 나는 ‘늘’, ‘언제나’, ‘예외를 두지 않고’ 무엇을 해본 적이 있는가? 핑계 대지 않고 꾸준히 한 무언가가 있는가? 없었다. 난 떳떳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제부터라도 함께 해보자. 달리기가 아니어도 좋다. 새벽 기상도 좋고, 필사도 좋고, 영어 공부도 좋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고 싶은 일’을 하나 정해보자.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겨보자. 한 달 동안 매일 같이 지키려고 노력해보자.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고, 실패하면 또 다시 도전하고. 마침내 성공하는 순간. 우린 한 단계 성장할 것이다.
꾸준함은 성장의 유일한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