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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둘기 Sep 14. 2024

온 세상이 나의 것

그리고 당신의 것

유현준 교수님의 <어디에 살 것인가>라는 책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읽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놀랍게도 우리가 동경하는 ‘뉴요커’들이라고 한다. 그들이 작은 집에 사는 이유는 간단하다. 뉴욕은 전 세계에서 집값이 가장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요커들은 집이 작다고 우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 건너 큰 집에 사는 뉴저지 사람들보다 훨씬 생기가 넘친다. 유현준 교수님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뉴욕에는 엄청난 크기의 공원이 많다. 뉴욕 맨해튼에는 10km 내에 공원이 10개라고 한다. 뉴욕 시민은 어느 곳에서나 10분 정도만 걸으면 공원에 갈 수 있다. 공원 간 평균 거리도 1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매번 산책하는 공원이 질렸다면, 10분 정도 걸어가 다른 공원에 가볼 수 있다. 그들은 센트럴 파크에서 달리기를 하고,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스케이트를 탄다. 그곳에서 10분만 걸어가면 그 유명한 타임스퀘어가 나온다. 뉴요커들은 작은 방에 갇혀 살지 않는다. 그들은 뉴욕 전체를 즐기며 살아간다. 유현준 교수님은 서울도 뉴욕처럼 편하게 걸어갈 만한 공원이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가 행복해지려면 매력적인 공짜 공간이 많아져야 한다.      



유현준 교수님의 기준에 따르면 내가 사는 인천 송도는 참 좋은 곳이다. 잘 정비된 공원이 정말 많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보단 작지만 그래도 멋진 ‘센트럴 파크’, 계절마다 다양한 색의 꽃이 반겨주는 해돋이 공원. 잔잔한 호수가 아름다운 달빛공원, 밤바다와 야경이 멋진 솔찬 공원.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일몰을 볼 수 있는 롱비치파크,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송도 맥주 축제 등 수많은 축제가 끊이질 않는 달빛축제공원. 이 밖에도 수많은 공원이 있다, 이 모든 공원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짜 공간이다. 모든 공원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조성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이라도 더 달리는 게 이득이다. 우리 모두 다 같이 우리의 세금이 아깝지 않도록 공원을 달리자!     



공원은 달리기하기 가장 좋은 장소 중 하나다. 우선 신호등이 없다. 거리를 달리면 중간중간 횡단보도에서 멈춰서야 하는데, 공원은 그럴 필요가 없다.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다. 공원을 달리면서 보는 풍경도 아름답고, 달리면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의 모습을 보는 일도 재밌다. 게다가 공원은 거리도 길어서 트랙에서는 30바퀴 돌아야 할 거리를 네 바퀴 정도만 돌면 된다. 거리는 같지만, 심리적으로 큰 차이가 난다. 나는 대부분 집 앞 공원이나 센트럴 파크를 달리지만, 가끔은 우리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공원을 가본다. 물론 갈 때도 달려서 간다. 직접 내 발로 뛰면서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일도 내 삶의 즐거움이 되었다.      



요즘엔 여행을 갈 때도 꼭 러닝화를 챙긴다. 여행지의 핫플레이스를 둘러보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지만 낯선 거리를 직접 달려보며 마주하는 풍경은 새롭다. 게다가 직접 달려본 곳은 훨씬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오사카에 갔을 때 숙소에서 오사카성까지 달려간 적이 있었다. 자동차나 지하철로만 다니던 길을 직접 달려보니 훨씬 더 많은 풍경을 볼 수가 있었다. 길눈이 어두워 길을 여러 번 잃고, 중간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 이 건물 저 건물을 배회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마침내 도착한 오사카성에서는 고수의 향기가 물씬 나는 러너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달리기. 강력 추천한다.      



톨스토이의 작품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바슈키르 마을 이야기가 나온다. 바슈키르 마을에서는 땅을 팔 때 하루 단위로 판다. 하루 동안 돌아다닌 땅은 모두 자신의 땅이 되는 것이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출발 지점으로 돌아와야 한다. 만약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돈만 날리고 땅은 전혀 얻지 못한다. 농부 바흠은 이 제안은 수락한다. 땅을 최대한 많이 얻고 싶던 바흠은 무리를 한다. 돌아오기 어려울 만큼 너무 멀리 가버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땅을 얻기 위해 쉬지 않고 걷는다. 겨우겨우 바흠은 도전에 성공했고 도착하자마자 풀썩 쓰러진다. 그리곤. 일어나지 못한다. 그에게 필요한 땅은 오직 6피트. 그가 묻힌 공간뿐이었다.     



바슈키르 마을이 실제로 있다면 러너들의 성지가 될 것이다. 바슈키르 마을의 땅은 순식간에 러너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돈 많은 사람보다 잘 달리는 사람이 더 많은 땅을 가지는 세상. 그런 세상이 과연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있는 것 같다. 바로 지금 이 세상. 



지구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향유하며 사는 건 달리는 사람들이 아닐까? 아무리 큰 집에 산다고 해도, 더 넓은 세상은 집 밖에 있다. 내 집이 좁다면 세상을 내 집처럼 이용하면 된다. 세상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달릴 수 있으면 그게 다 내 땅이 아니겠는가? 달리는 순간, 온 세상은 나의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함께 달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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