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느리게 또 남들과는 다르게 따라가는 유행
<아티스트 웨이>의 12주 과정을 수행하면서 제일 못한 부분이 무엇인가요? 누군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그 답은 틀림없이 아티스트 데이트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1주마다 한 번, 매주 두 시간 정도 시간을 정해 나의 어린 아티스트적 자아가 좋아할 활동을 해 주는 것이다. 꼭 돈을 쓸 필요도 없고 외출해야만 하는 것조차 아니지만, 그래도 규칙은 있다. 활동은 시간을 정해두고 사전에 계획되어야 한다. '아티스트 데이트'로서 인식된 채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지 않고 오롯이 홀로 향유해야 한다.
매일 아침 루틴에 자리 잡고 있는 모닝 페이지, 매주 수행도를 검토하며 종종 즉석에서도 진행할 수 있는 주차별 과제와 달리, 아티스트 데이트는 저 '사전 계획'과 '인식된 진행'이 특히 문제였다. 나는 노는 데 있어서는 즉흥적인 게 좋다. 계획된 걸 꺼려할 정도로 즉흥성을 좋아한다. 일주일 전에 계획한 나들이? 꼭 당일 아침이 되면 귀찮고 피곤해진다. 반면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세 정거장을 더 가서 새로운 카페를 찾는다거나, 갑작스러운 친구의 산책 요청을 받는다거나, 모든 기존 일정을 무시하고 헌책방에 들어가거나 서가를 뒤져보는 일은 기껍다.
그런데 아티스트 데이트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둔 활동을 하기를 권장한다. 그 활동이 당시 내가 좋다고 생각해 짜 둔 것이어도 왠지 부루퉁해진다. 되짚어 보면 아티스트 데이트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활동을 했지만 아티스트 데이트로 계획하지 않았고, 즐기는 동안 '나는 지금 내 창조성에 영양을 공급하고 있음'이라는 의식도 전무해서 '이걸 아티스트 데이트라고 부르기는 그렇지 않나?'라고 생각하게 만든 일도 많았다. 사정이 그러하니 매주 일요일 한 주의 활동을 점검하다가 '맞다, 아티스트 데이트 또 깜빡해 버렸다'라고 생각한 경우가 12주 중 반을 거뜬히 넘기는 것 같다.
오늘 이야기할 눈오리 만들기도 그처럼 아티스트 데이트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미묘한 일 중 하나였다. 동시에 까탈스러운 어린 아티스트께서 제일 흡족히 좋아하신 활동이기도 했다.
24년에서 2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엔 눈이 많이 왔다. 그것도 아주 많이. 역대급 폭설을 기록한 인상적인 첫눈을 빼더라도, 유독 새하앴던 겨울이었지 않은가?
1월 31일도 눈이 왔다. 일기예보를 똑바로 안 보고 우산 없이 나가 외출 일정이 있어서 해결하고, 카페에 가서 책 읽고 모닝 페이지를 써보려니 찾아간 세 곳이 연이어 휴업이거나, 너무 요란하거나, 자리가 없어 네 번째 카페에서야 겨우 환대받았다는 기분이 든 날이었다.
가방에 노트와 책을 담아 오는 귀갓길, 최대한 눈을 피해 상가 실내를 거쳐 돌아가는 루트에는 익숙한 문구점이 있다. 어린이용 장난감 박스가 입구에 진열된 곳으로, 늘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평소에 들를 일은 거의 없다. 상가 문을 열고 어깨 위 눈을 털고 들어섰을 때. 어쩌다가 그 산만하도록 알록달록한 장면에서 눈오리 집게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을까? 심지어 나는 남들이 몇 년 전부터 다들 눈오리 공장장이 되던 시절엔 관심 없음으로 일관하던 사람이었는데.
어쨌든, 데롱거리는 오리집게를 마주하자마자 갑자기 눈오리를 만드는 게 세계 최고의 발상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샀다는 뜻이다. 오리는? 물론 노란색이지!
눈밭에서 눈오리 만들기는 꽤 정교한 기술을 요한다는 댓글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제대로 뭉쳐지지 않으면 보슬보슬 부서진다고 말이다.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 날 내리던 눈은 아주 순한 눈이었다. 보드라우며 묵직한 습설. 모으는 대로 뭉쳐지는 눈. 나는 한참 신이 나 발이 시려질 때까지 조르르 가지런한 오리 떼를 만들었다. 집게를 딱 맞물리게 하는 홈에도 눈이 차 짓눌려 얼음이 홈을 메꿔버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고난이 없어서 영원히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서 깨끗한 스텐 반찬통을 받아다가 눈오리 두어 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다. 가족들에게 순회공연을 마친 오리들을 집안에서 녹게 하고 싶지 않아 창밖 실외기에 둥지를 틀게 했다. 잠들고 일어난 다음 날 창밖엔 흰 눈도 둥지도 오리도 없어 휑했다.
눈은 내리면서 그 보송한 구조 속에 주변의 소리를 흡수한다고 한다. 그래서 눈 내리는 날의 고요함은 과학적이라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내 어린 눈오리들은 어떤 소리를 물어 삼키고 자랐을까, 그 작은 것들은 밤새 높은 곳으로 이소하면서 부리에 문 소리를 도로 뱉어내어 노래하기도 하였을까? 사람의 귀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브런치북 <<아티스트 웨이>가 하라는 대로>는 2025.1.12 ~ 2025. 4. 21간 수행한 <아티스트 웨이>의 실천 기록을 응집하고 정제한 에세이 형태로 연재됩니다.
-더욱 생생한 날 것의 기록이 궁금하거나, '<아티스트 웨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정말로 창조적인 예술가가 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엿보고 싶다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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