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미팅을 피해야 했다>

1994:시작의 이유

by NoA

1994년. 중학교 2학년.


앞에 앉은 친구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우리 중학교 학생주임 선생은 머리카락 길이에 민감하다.

조금이라도 길어보이면 바리깡으로 바로 밀어버린다.

그것도 가운데 부분을.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45개의 검정색 잔디들.

2학년 1반 교실 전체가 어두운 흑빛이다.

내 뒷덜미의 까끌까끌한 촉감이 낯설지 않다.

다시 눈앞의 머리카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은은한 보라색이 감도는 것 같다.

친구의 뒤통수를 쓰다듬어 봤다.



“뭐? 왜?”

친구가 뒤를 돌아보며 속삭인다.

“어, 아니. 뭐가 묻었길래.”

웃으며 손을 털어 보였다.

친구도 웃으며, 고개를 숙여 교과서를 내려다본다.

생물 교과서 아래 ‘타이의 대모험’.

선생님께 일러야 하나…?




점심 시간.

앞자리 친구들과 책상을 붙였다.

열 개의 도시락, 뷔페가 따로 없다.

“이거 어디서 샀어? 때깔 죽이는데?”

내 소시지 반찬을 집어든 짝꿍이 앞 자리 친구에게 물었다.

“보여줄까?”

친구는 가방에서 헤어젤과 컬러 스프레이를 꺼냈다.

모두 탄성을 지르며 돌려본다.

손사레를 치며 거절했지만,

어디 브랜드인지 빠르게 살폈다.



“깡~~!”

알루미늄 배트의 타격음이 시원하게 들린다.

우리는 운동장 구석진 곳에서 야구부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캔콜라의 뚜껑을 따는데, 손톱이 짧아 쉽지 않았다.

“오늘 학교 끝나고 이거 만나러 갈 건데 거기 3명. 3대3. 같이 갈 사람?”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그 친구가 말했다.

나를 가장 먼저 쳐다보았지만, 뚜껑 따기 바쁜 척 했다.

‘여자친구?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바뀐거야?’

“난 학원.”

무심한 듯 거절하고는 미지근한 콜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아 펩시 진짜. 왜 우리학교는 코카콜라는 없는거냐고!”

다 마신 캔을 쓰레기통에 넣으며 소리쳤다.

친구들이 잠시 조용해지더니, 고개를 돌려

“나! 나나나! 나랑 같이 가자 제발”하며,

보라머리 친구에게 사정을 한다.


보라머리 친구는 이런저런 질문도 하고 외모 체크도 한다.

이 모습은 마치 오디션장 같다.

‘선발 되면 뭐라도 될 것 같지? 으이그~’

혀를 찼지만 아무도 못들었나보다.

마침내 선발된 2인.

보라머리는 자신들을 삼총사라 지칭한다.

“삼총사 화이팅~!”

캔을 들어올리며 떠나가랴 소리를 지른다.

오늘따라 운동장이 더 시끄럽다.




7교시를 마치고 종례가 끝나자,

사복으로 갈아입은 삼총사의 표정은 싱글벙글이다.

시내로 가는 5번 버스에 올라타는 그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 돌아섰다.

마침내 도착한 12번 버스는 빈 자리가 없다.

‘휴. 또 서서 가야겠네.’

더위 탓인지, 온몸이 땀에 젖어 있다.



버스가 덜컹거려, 이리 저리 치이느라 정신이 없다.

뒤꿈치를 들어 겨우 손잡이를 잡았지만, 땀 때문에 미끄러졌다.

의자에 달린 손잡이를 잡은 나는 천장 손잡이를 째려봤다.

카세트 플레이어의 볼륨을 높여, 주파수를 찾았다.

‘엇… 이 노래’

각인된 기억과 함께 그 날이 떠올랐다.

그때는 내가 왜 그랬을까?


한숨 쉬는데,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버스 창문을 살짝 열어본다.

여전히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냄새 나는 반찬은 빼달라니까…’

오늘 저녁에는 엄마한테 꼭 말해야겠다.




도착한 집은 오늘도 휑하다.

거실과 부엌의 불을 환하게 켰다.

가방을 내려놓고 보니 책상과 침대가 낯설다.

“아 진짜 엄마!”

앙칼지게 소리쳤지만 듣는 사람은 없다.


다급하게 자리에 앉아 두 번째 서랍을 열었다.

연습장 두 권의 구도는 그대로다.

연습장 아래 숨겨둔 다이어리 또한 그대로다.

힘 주어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방문을 째려봤다.


바빴던 지난 달과는 달리 ‘할일 List’가 텅 빈 이번 달.

혹시 몰라 다음 달로 넘겨보지만 마찬가지다.

그나마 있는거라곤 둘째 누나의 생일 정도.

다이어리의 앞장에 쓰여 있는,

‘4대4’ 미팅. 그리고 ‘AA카페-소개팅’.

벌써 3주나 지난 일이구나.

‘소개팅…’

힘 없이 다이어리를 덮었다.


동전지갑을 열어보니, 꽤 두둑하다.

“그래, 원더보이나 하러 가자.”

오늘은 학원 대신 오락실이나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