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박씨
계속 쓰다보니 손가락이 저린다.
찢어서 휴지통에 버려진 종이만 9장.
종이를 주섬주섬 모아 가방에 찔러 넣었다.
‘내일 학교 소각장에 버려야지.’
그 후 몇 번의 시도 끝에 완성된 한 통.
“To. 소냐
안녕하세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라 조금 어색하고 떨리네요.
최신히트가요에서 소냐양의 펜팔 신청 글을 보고,
용기 내어 편지를 보냅니다.”
인사와 함께 짧은 자기소개.
이어서 취미에 대한 이야기까지.
‘취미는 음악감상과 영화감상 정도?’
그래야 좀 멋있어 보일 것 같다.
나머지는 연습장의 내용을 수정했다.
드디어 편지지 두 장 분량이 완성되었다.
읽어보니, 봐줄만 하다.
아껴두었던 모닝글로리 0.3mm 볼펜을 꺼내들었다.
글씨체도 신경 쓰고, 오타가 나지 않도록 엄청난 집중.
소냐에게 보낼 편지에 풀칠을 하고 우표를 붙였다.
겨우 한 통을 쓰고 나니 어깨가 저리고 손도 아프다.
‘아직 7명이나 남았는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길고 험할 듯하다.
나는 여자와 공원 데이트를 하고 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내 귓가를 스친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하얀 구름.
손으로 쫓아내다보니 겨우 드러난,
네모난 그녀의 얼굴…?
탁상시계!?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벌개진 얼굴로 그녀의 얼굴,
아니 탁상시계를 째려봤다.
찝찝한 꿈 덕에 몸도 마음도 무겁다.
기지개를 펴고 나니 책상을 바라본다.
밤 사이 완성했던 8통의 깜지.
‘어차피 서로 모르는 사이잖아? 뭐 어때.’
도시락을 챙기고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내리막길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통과했다.
정류장을 지나쳐 MH초등학교 정문 앞에 도착.
고개를 돌려보니 주변은 고요하다.
하얀 제비가 살고 있는 빨간 집.
마른 침을 삼키고, 찔러 넣은 나의 이력서.
“퉁퉁”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돌아섰다.
마침, 정류장에 들어서는 버스를 발견.
겨우 따라잡아 올라탔다.
맨 뒷좌석 창가 자리에 앉아 창문을 살짝 열었다.
눈을 감고 카세트 플레이어를 켰다.
‘Your Eyes’를 듣고 있으니,
영화 속 소피 마르소의 미소가 떠올랐다.
차창 너머 보이는 음흉한 미소.
다행이다. 버스엔 아무도 없다.
두 손 모아 눈을 감고 나즈막히 기도했다.
“부디, 도와주세요. 나무아미타불, 아멘.”
버스 창문을 거울 삼아 얼굴을 확인했다.
‘이거 스타일이 어떻게 되긴 하나?’
그러다 문득 편지의 내용이 생각난다.
“PS. 답장을 안 주셔도 괜찮아요.
하지만, 사실은 답장을 기다릴 것 같습니다.
부디 좋은 인연이 되기를...”
‘마지막 말은 뺄걸…’
버스는 막힘 없이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