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잖아
수업이 끝나고 종례 시간.
어서 집에 가고 싶은데,
오늘따라 담임이 말이 많다.
당번이 청소를 제대로 못한 탓에,
종례는 더 길어졌다.
하굣길, 오락실 가자는 짝꿍을 먼저 보내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문이 열리는 12번 버스.
빈자리는 없다.
망설임 없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집 앞 정류장에서 내려 600미터 남짓.
오르막길을 숨 가쁘게 올라간다.
허벅지가 당기고 숨이 차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책장을 뒤진다.
최신히트가요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얼마 전 막내 누나에게 빌린 책.
‘이런 걸 진짜로 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때는 대충 넘겨봤던 펜팔 신청 코너.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
바쁘게 움직이는 눈동자.
드디어, 찾았다!
“남자 친구 구해요. 소냐”
아니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동갑 여자들로 추려보니 무려 8명.
모두 사연은 다르지만, 내 목적은 하나.
손가락 관절을 뚜둑 소리 내어 풀었다.
‘오늘 바쁘겠는디?’
학원 갈 시간이 되어,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겨 들었다.
“다녀올게요~”
신발을 신으며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뻐끔거리는 금붕어를 뒤로 하고, 현관 문을 닫았다.
내리막길을 뛰듯이 빠르게 걸어 정류장에 도착.
시내로 가는 5번 버스.
퇴근하는 어른들과 학생들로 발 디딜틈 없다.
겨우 의자 손잡이를 쥐어 자리를 잡았다.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난다.
주위를 살피니, 옆에 있는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신경 쓰지 않는 듯 둘러보다 고개를 돌렸다.
차창 너머로 그 여학생을 힐끔힐끔.
가끔 버스가 휘청거릴 때 우리 어깨가 스친다.
사람들이 더 많이 탔으면 좋겠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
여학생이 내 뒤를 따라 내린다.
나는 잠시 멈춰서 두리번거렸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 여학생.
알지만 모르는 척, 길을 찾는 척.
바로 옆까지 다가온 여학생은,
내 뒤편 학원 건물로 사라진다.
“저기… 아.”
길을 찾은 나는 지하상가 계단으로 향했다.
다행이 주변엔 사람이 없었다.
아트박스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커다란 곰인형 앞에서 수다를 떨고 있던 여학생들.
그녀들을 피해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무슨 편지지가 이렇게 많아?’
편지지 종류가 너무 많다.
가격도 천차만별.
적당한 것으로 골라, 빠르게 나왔다.
‘지금 들어가면 너무 빠른데?’
학원이 끝나려면 멀었다.
‘오락실이나 갈까?’
지갑을 열어보니 버스승차권 한 장.
그러고보니, 편지지에 우표에 볼펜에…
참 많이도 샀다.
삼복서점으로 향했다.
신간 만화책 코너.
이번 주에는 신간이 없다.
아쉬운데로 베스트셀러 코너에 도착.
눈에 띄는 연애 소설을 하나 꺼냈다.
오글오글 거리고, 유치한 사랑 이야기…
‘어차피 거기서 거기잖아?’
몇 장 넘기지 못한 책들을 뒤로 하고 서점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씻지도 않은 채 책상에 앉았다.
‘소개팅이든 펜팔이든 처음 만나는거잖아?’
연습장을 꺼내들고 펜을 돌렸다.
‘그게 그거지 뭐.’
연습장에 적힌 내용을 편지 형식으로 옮겨적어 봤다.
다 적은 후 읽어보니, 이게 뭐야?
이건 편지가 아니라 자기소개서다.
게다가 더럽게 재미도 없어.
“으아아아!”
잘 잡히지도 않는 짧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책상을 내려쳤다.
괜히 손만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