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12시간 비행은 아마도 최근에 오랜만에 하는 비행시간인듯하다. 12시간을 이 좁은 기체 안에서 좁은 이코노믹 좌석 어깨를 펼치지도 못하고 발을 뻗치도 못하는 상황하에서 즐기는 12시간은 이영복 선생이 쓴 ‘좁은 감옥’이라는 그 명구절이 생각난다. 세평 뻗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체열로 극복하는 그 겨울 이야기는 또한 여름의 감옥은 몸덩어리를 증오한다는 그 구절이 생각난다. 더구나 화장실 앞에 앉다 보니 고압의 물 내려가는 소리와 비행기 안에서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누가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는지 누가 무슨 동작을 하는지 세게 된다.
그래도 앉아서 아무것도 안 허고 영화를 보는 사람은 양반 중의 상얀반이다. 이 폴란드 인들은 덩치가 산만해서 그런지 나도 적지 않은 몸이지만 그들의 큰 엉덩이와 몸을 보면서 오히려 내 몸이 귀여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인종마다 많은 부분들이 다르지만 사람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비행기를 타게 되면 느끼게 된다. 인종, 피부 상관없이 누가 더 시끄럽고 더 예절을 잘 지키는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12시간 장거리 비행기를 탈 것을 적극 추천해 본다. 낯설고 귀찮고 짜증 나지만 장거리 비행기를 타면 인간이 얼마나 하잖고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자기 몸 뚱아리 관리하는 것이 우선인지를 깨닫게 된다. 하늘중간에서 우리가 얼마나 나약하고 미약한 인간인지를 깨닫게 된다. 기류하나 번개하나에도 한편으로는 내 몸을 가장 빨리 가장 멀리 보내주는 이 기계에 감사할 따름이다.
아마도 예전에 독일을 갈 때 느꼈던 16시간 때 영화를 보고 또 봐도 가지 않는 시간과는 달리 조금은 여유가 더 생기고 많은 여유가 생긴 것도 갔지만 참으로 많은 인내와 잠을 잘 수 있는 그 여유가 항상 최고라는 생각을 해본다. 밖에 나와서 머리만 기대면 잘 수 있는 강인함과 그 무던함이 최고의 가치라는 생각을 해본다. 무던하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고의 가치라 생각을 해본다과. 나이가 어릴 때 생각했던 무던함과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이는 무던함은 일단 다른 감각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비행이 전체가 몇 평인지는 모르지만 30m가 될까 아님 50m 이 공간에 화장실 8개 쉴 새 없이 이루어지는 일상은 참으로 소박하고 모든 사람을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산책을 하기 위해 아니면 경직된 몽을 풀기 위해 산책을 하기도 하고 이 작은 골목길 같기도 하고 하여간 이 일상은 너무 다채롭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화장실 앞에 불이 빨갛고 파랗게 끊임없이 움직이며 내 뒤에 아닌 이제 지쳐 보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울기도 하고 엄마는 그 옮음을 멈추려고 노력하지만 그럴수록 아이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화면에서 보이는 tv에 목적지와 점점가까이 가는 지도를 보면서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아이도 힘들지만 엉치뼈가 너무 아프다. 의자의 각도는 90도이고 앞에 아재는 의자가 왔다 갔다 늘였다 줄였다 한다. 고무줄 늘이기도 아니고 의자가 부러질 듯한다. 나는 그럼에도 오스트리아 빈을 향해서 계속 다가가고 있다.
다시 영화를 검색하여야 하나! 아님 일어나서 돌아다닐까? 컵라면을 먹기도 하고 먹기도 싫고 좁고 터져서 무언가를 할 수 없고 귀찮아서 몸 움직인다.
회사는 인사로 너무 불편하고 짜증이 많이 난 상황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영향력을 주고 그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커다란 시험의 장에 드는 경우가 있었다. 어떤 이를 팀장으로 올리고 어떤 이는 국장에서 팀장으로 떨어뜨리고 어떤 이는 부서를 옮기게 하고 이렇게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주고 그를 대면해서 그가 이번에 내려올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가 그녀가 올라가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실망과 낙담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내 삶에 어둡고 치명적인 불편함을 주는지 아마도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나마 이 여행을 하면서 그들과 그 공간에서 벌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한 편의 위안이 됐는지 모른다. 회사가 부여한 그 책임과 실행에 사실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음을 나도 깨닫게 된다. 단호하지 않으면 스스로 너무 많이 상처를 받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마지막 순간 까지도 스스로를 넘 과대한 포장을 아끼지 않는 분과 오히려 너무 심플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많은 것들을 남 이야기 하듯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들과 얼마나 복잡한 한들로 쌓여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