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정보보다 높은 사유(1)
사유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생각하며 살아간다. 오늘 입을 옷을 고르고,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사람의 표정을 읽고, 다음 말을 예측하며 끊임없이 머릿속을 움직인다.
그러나 사유는 다르다. ‘두루 생각한다’는 말은 곧 ‘깊이 생각한다’는 말이다. 단순히 정보를 조합하거나 판단하는 기능적인 사고와는 결이 다르다.
사유는 ‘무엇을 할까’를 넘어서, ‘왜’ 그것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정신의 작용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식의 운용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며, 존재를 대하는 태도가 된다.
앞서 우리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하지만 사유 없이는 질문 또한 생겨나지 않는다. 진짜 지식보다 깊은 질문은 사유에서 피어난다.
그렇기에 사유는 곧 배움의 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질문은 정답보다 불편하고, 사유는 정보보다 느리다. 그러나 진정한 배움은 이 느리고 불편한 길에서 시작된다.
정보가 넘쳐나는 오늘날, 이제 더 이상 정보를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알고리즘과 자동 추천, 빠른 정답만을 좇는 삶 속에서 우리는 질문하는 법을 잃고 있으며, 정보의 축적이 지혜의 축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정보보다 높은 사유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사유의 출발점인, ‘생각’이라는 행위부터 다시 짚어보려 한다.
생각은 감각과 기억이 교차하는 찰나에, 의식이 정보를 배열, 분류하고 조합하며 ‘가설적인 세계’를 잠시 세우는 일이다.
예를 들어, 어딘가에서 불쾌한 냄새를 맡으면,
그와 관련된 나쁜 기억이 떠오르고, 그 냄새가 나는 방향을 의심하거나, “아, 저쪽에 뭔가 문제가 있나?”라고 판단한다.
이처럼 생각은 새로운 감각과 오래된 기억이 만나고, 그 사이에서 의식이 여러 정보를 꺼내 배열하고 조합해서, 잠깐 동안 “이럴지도 몰라” 하는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감각이 원재료라 한다면, 생각은 그것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가공물’과 같다.
신경과학적으로는 우리가 어떤 감각을 수용할 때,
먼저 뇌는 지금 보고 듣고 느낀 정보를 잠깐 붙잡아 두는 공간에 담아둔다. 이를 ‘작업 기억’이라고 한다. 일종의 임시 메모장 같은 셈이다.
작업 기억은 입력된 감각을 붙잡아 놓고, 전전두엽이 패턴과 인과를 만든 뒤, 언어 영역이 그것을 서사로 엮어 내보낸다.
쉽게 말해 우리의 뇌는 받아들인 정보를 잠시 메모장에 기입한 뒤,
“A가 일어났다면, B가 생기겠지?”,
“이걸 하면 저런 결과가 올 거야”
이런 식으로 머릿속에서 수많은 시뮬레이션(가상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감각이라는 원재료를 기억과 뒤섞어 인과관계와 추론한 뒤,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를 생성해 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바로 생각이며, 우리의 뇌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러한 계산을 수행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계산 결과(생각)를 바탕으로 우리는 판단한다.
오늘 어떤 옷을 입을지, 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 지금 무엇을 먹을지와 같은걸 말이다.
생각은 감각에 의미를, 기억에 생동을 부여하는 의식의 작업이다. 우리가 그동안 겪은 경험에 대한 기억과, 새로운 감각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상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경험이 풍부해질수록 생각의 틀이 넓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뇌신경과학적 이론은 '생각'을 우리의 뇌 속에서 처리되는 알고리즘과 같이 정의하지만,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생각을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바라보았다.
한자어로 생각은 '思(생각할 사)'로 표현한다. 田(밭 전) 자는 시각적 인식, 외부 세계를 의미하고, 心(마음 심) 자는 내면, 감정, 의식을 의미한다.
즉, 동양권에서는 '밭을 바라보는 마음', 혹은 '외부의 세계를 마음으로 응시하는 행위'를 생각이라고 바라보았다.
'밭을 바라보는 마음'이 '생각'이라고 표현한 발상이 정말 독특하다. 동양권에서는 왜 그러한 발상을 하였는지 한번 상상해 보자.
고대 인류는 하늘의 징조를 보고 씨를 뿌리고, 계절의 흐름을 따라 노동하고, 수확을 기다리며 미래를 예측했다. 그들에게 ‘밭’은 단순히 식량을 채취하는 노동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인간의 생존을 결정하는 공간이었으며, 동시에 늘 살펴야 하는 대상이었다.
"농작물이 말라죽지 않으려면 비가 내려야 하는데, 내일 날씨는 비가 올까? 오늘 산너머로 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니,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몰라."
아마 그 시대의 농부들은 잠자리에 들면서도 이러한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결국 인간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자연을 관찰하고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사유의 대상이 바로 밭(田)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생각하다(思)’는 곧 ‘밭을 바라보는 마음’,
‘생존을 위한 걱정과 기다림’, ‘계절을 읽는 사색’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삶 전체를 건 숙고와 예지의 반복이었다.
마음을 늘 밭에 둔다. 그것은 바로 생각이었고, 깊은 사유였다.
어떤 대상에 마음이 있다는 것은, 그 대상이 두고두고 떠오른다는 뜻이다. 반복적으로 기억을 떠올리고, 그 위에 새로운 정보나 감각이 뒤섞이게 된다. 그것은 생각이 되고, 그 생각이 반복되고 깊어지면, 사유가 된다.
사유는 '두루, 깊이, 의식적으로' 세계와 나를 바라보려는 태도와 같다. 생각이 즉각적인 상상 또는 시뮬레이션이라면, 사유는 그 상상이나 시뮬레이션 자체를 다시 붙잡아 묻는 메타 인식에 해당한다.
이번에는 생각이 어떻게 사유로 변모하게 되는지를, 그 구조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생각이 사유가 되는 과정에는 크게 네 가지의 문턱이 존재한다.
1. 자극의 수용
사람이 시각이나 청각 등 감각 수용기관을 통해 자극을 받으면, 그 정보는 즉각적으로 신경계를 통해 전달된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전달된 정보에 주의를 집중하게 된다.
마치 뇌가 “이게 뭐지?”라고 스스로 질문하며 주의를 수렴시키는 것이다.
이 뇌의 질문은 곧, 전달된 정보에 대한 분석을 요구한다.
2. 패턴 인식과 시뮬레이션
뇌를 통해 들어온 정보는 분석되고 배열되기 시작한다. 기존에 갖고 있던 정보(기억)와 대조해 보고, 인과관계를 따져가며 정보를 체계적으로 배열한다. 그러면서 뇌는 또다시 묻는다.
“이것은 어떻게 작동되는가?”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가?”
여기까지가 ‘생각’이다.
즉각적인 답이나 결론에 도달하는 순간, 생각은 멈추고, 뇌는 또 다른 자극을 기다리는 상태가 된다.
생각은 이처럼 거울처럼 현실을 비추지만, 동시에 예측을 섞어 다른 가능 세계를 시험한다.
3. 메타인지: 반성
이제 사유의 문턱이다.
자신의 생각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이 생겨날 때, ‘반성적 틈’이 열린다. 즉,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라는 질문이 피어나는 순간, 우리의 뇌는 스스로의 생각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이처럼 자기를 응시하는 시선이 생겨날 때, 사유를 향한 문이 열린다.
4. 존재 탐색
거리 두기를 통해 확보된 내면의 여백 속에서, 질문은 “어떻게”에서 “왜”로, “무엇을 위해”로 방향을 튼다. 이때부터 생각은 기능적 목적을 잃고, 존재를 묻는 사유로 성질을 바꾸게 된다.
존재 자체와 그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질문이 시작되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이 시점부터 자라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보자.
요즘 들어 여름은 무척 덥다. 이는 감각이나 데이터를 통해 우리의 뇌에 전달된다. 감각과 정보는 말한다.
“올해 지구 평균기온이 1.5 ℃ 상승했다.”
우리는 이 정보를 토대로 생각을 시작한다. 탄소 배출과 산업 구조의 결과로 지구의 온도가 상승했다는 인과관계를 만들어내고, 빙하의 면적이 줄어들어 해수면이 상승할 것이라는 상상과 예측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반성이 첨가되면, 그 생각은 사유로 변모한다.
“왜 우리는 이러한 실태를 알면서도 행동을 미루는가?”라는 물음이, 기후변화에 대한 사유의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사유의 공간에 발을 디딘 '기후변화'라는 주제는, 이때부터 다양한 생각들로 확장된다.
예를 들면,
“인간의 발전이란 무엇인가?”
“‘번영’은 파괴를 포함해야 하는가?”
“우리 문명이 지향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은 기후변화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한 질문이자, 우리 자신을 더 깊은 생각으로 이끌며, 배움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문이 된다.
감각이나 정보는 변하지 않아도, 질문의 높이가 달라지면 배움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뇌에서 생각은 밀리초 단위로 이루어지지만, 사유는 어쩌면 평생이 걸리는 과정이다.
생각은 문제를 정리하지만, 사유는 때로 고뇌를 불러오는, 아주 불편한 존재다.
그러나 지혜와 진정한 배움은, 이 느리고 불편한 틈에서만 자라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유는 가장 급진적인 저항이 된다.
정보의 시대에 우리는 다시 ‘생각하는 존재’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날 정보는 넘쳐나지만, 생각은 점점 더 희소해지고 있다. 단순 수용이 아닌,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를 위해,
배움의 존재인 우리는 사유하는 능력으로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생각하는 인간’이 되고자 한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정보가 아닌,
생각에서 피어난 사유의 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