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지식보다 깊은 질문(2)
앞서 질문이란 더 큰 세상을 향한 벽을 넘기 위한 행위라고 말했다. 여기서의 벽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범위이자, 개인이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의 경계선을 의미했다.
하지만 때때로 질문은 개인의 세상을 넓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류사의 위대한 질문들은 세계의 확장을 넘어 기존의 세상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새로 건설하기도 했다.
때로 어떤 질문은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만든다. 질문을 받은 사람조차 그가 가진 인식의 틀 안에서는 도저히 명확한 답변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틀을 넘어선 질문은 기존의 틀을 흔들고 새로운 틀을 요구하게 만든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때, 항상 그것을 지탱하는 ‘틀’이 있다. 새로운 틀에 대한 요구는 단순한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토머스 쿤(Thomas Kuhn)은 이 틀을 '패러다임(paradigm)'이라 불렀다.
패러다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설명하는 모델을 의미한다. 이 모델은 그 시대를 묶어주는 보편적인 견해이자 사람들의 인식을 가리킨다. 개인이 아닌 사회의 인식이라는 점에서 앞서 말한 벽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패러다임이 변한다는 것은 개인이 아닌 사회 전반의 인식과 이해의 범위가 바뀌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세계관이 재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토머스 쿤은 과학사를 연구하며 기존 이론과 설명의 틀이 한계에 부딪히고 새로운 질문들이 제기될 때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러한 전환은 거대한 성장과 변화를 야기하기도 했다.
인류사의 대표적인 패러다임을 꼽자면, 인간이 우주 속에서 자신들을 중심에 두었던 '천동설'을 들 수 있다.
천동설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적인 우주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체계는 당시에 가장 논리적이고 수학적으로 정교했다.
천동설은 분명 과학적 이론의 산물이었으며, 많은 사람이 천체의 운행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중세 교회는 이를 신학과 결합해 통합적 세계관으로 만들어 유지했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우주의 질서는 성경의 문자적 해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성경에서 나오는 하늘과 땅의 관계와, 신과 인간과의 그 특별한 관계는 지구가 움직이지 않고 ‘중심’에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했고, 교회는 이를 신학적 권위와 연결했다.
즉, 인간이 신의 피조물 중 가장 특별한 존재라는 교리적 입장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중세 기독교 중심의 문명이었던 유럽에서 천동설은 그들의 우주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진리가 되었다.
바로 그 시대의 패러다임이 된 것이다.
인문주의와 계몽주의의 확산 속에서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기존의 천동설에 의문을 던졌다.
그도 여타 다른 학생들처럼 천문학을 배우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천체 관측과 궤도 계산을 위주로 하던 실지 천문가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관측과 계산 결과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 그는 해결되지 않는 수많은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정말 이렇게 계산이 어려운 이심원과 주전원이 있어야만 천체의 겉보기 운동이 설명되는 걸까?"
"왜 천문표와 내가 관측한 결과에 오차가 생기는 것일까?"
"이론대로라면 멀리 있는 별들도 살짝씩 자리를 바꿔 보여야(연주시차) 하는데, 아무리 봐도 왜 고정되어 보일까?"
그는 이 풀리지 않는 물음을 그 어디에서도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고대의 기록(아리스타르코스의 태양 중심 가설)을 찾아보기도 하고 오랜 기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답을 제시했다.
“지구가 돌고, 태양이 가운데 있으면 큰 원·작은 원을 안 붙여도 행성 경로가 깔끔하게 정리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1543)』는 기존의 우주관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물론 코페르니쿠스 스스로 내놓은 답변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에서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지만, 그 의문들은 후에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등을 통해 완전히 해결되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코페르니쿠스가 얼마나 명확한 해결책과 답을 제시했는지가 아니라,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라보는 의문 섞인 시선과, 그것을 향해 당당히 질문할 수 있었던 그의 용기이다.
분명히 기존 세계의 커다란 세계관을 깨뜨리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그동안 알고 있고 인식하고 있는 세계 안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 중 한 명이었던 코페르니쿠스도 그가 살고 있는 세계의 법칙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의문을 가졌고 질문했다. 그리고 그 의문과 질문에 대한 답은 세계를 바꾸고 혁명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위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된 과학 혁명은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 관찰과 분석, 이성과 논리적 사유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바야흐로 질문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관찰하고 분석하기 시작한 인류는 새로운 질문들을 생성해 냈다. 세계의 확장과 세계관의 재구성이 계속되었고, 그로 인해 인류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기에 이른다.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은 1809년 잉글랜드 슈루즈버리에서 태어났다. 의사였던 아버지 뜻에 따라 에든버러 의대에 입학했지만, 해부 실습의 피비린내와 잔혹함을 견디지 못해 중도에 그만두고 만다. 이어 케임브리지로 진학해 성직자가 되려 했으나, 식물학 교수 '존 헨슬로우' 곁에서 곤충·광물·식물을 채집하며 '박물학자'의 삶에 눈을 뜨게 된다.
헨슬로우의 추천 덕분에 그는 스물두 살의 나이에 해군 측량선 HMS 비글호에 무급 연구원으로 승선한다. 남아메리카 대륙과 갈라파고스 제도를 포함한 다섯 해의 세계 일주는 다윈의 시야를 단숨에 넓혀 주었다.
그는 섬마다 조금씩 다른 핀치새의 부리,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발견한 조개 화석, 서로 다른 기후대에서 목격한 식물·동물의 변이를 꼼꼼히 기록했다.
그리고 이 자료들은 다윈에게 불편한 물음을 남겼다.
"왜 신이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물들의 모습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창조했을까?"
"왜 멸종종과 현생종이 같은 지역에서 ‘계보’처럼 나란히 존재할까?"
"멸종과 생존은 어떠한 연관이 있는 것일까?"
"생명은 고정불변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1837년 영국으로 돌아온 다윈은 런던에 머물며 '변화(Transmutation) 노트'라 이름 붙인 수첩에 자신의 의문을 포함한 관찰과 가설을 빽빽이 메모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시 사회·교회가 지닌 창조론적 세계관을 의식한 그는 이 아이디어를 공개하기를 주저했고, 대신 따개비 해부와 비둘기 품종 개량 같은 세밀한 연구로 데이터를 모았다.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가 전한 “지구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변해 왔다”는 관점과, 맬서스의 인구론이 던진 “자연에는 과잉 번식과 한정된 자원이 있다”는 통찰은 다윈의 머릿속에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는 열쇠로 맞물렸다.
20여 년간의 숙고 끝에 1858년, 말레이 제도에서 비슷한 생각에 도달한 젊은 생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가 다윈에게 논문 초고를 보내오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라이엘과 식물학자 조지프 후커의 중재로 두 사람의 연구가 린네 학회에서 공동 발표되었고, 다윈은 묵직한 대작 원고를 축약해 대중이 읽을 만한 책 한 권으로 정리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이듬해인 1859년 11월, 위대한 생물학 책인 『종의 기원』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
책은 “생물 종은 변하지 않는다”는 패러다임을 뒤엎고, 생물이 환경과 경쟁 속에서 서서히 갈라지고 적응해 왔다는 논지를 펼쳐 과학·철학·신학·사회 전 영역을 뒤흔들었다.
그렇게 다윈은 핀치새의 부리와 따개비의 골편,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집요한 질문인 “생명은 왜 이렇게 다양하며,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를 따라가며 인류 사상 최대의 패러다임 전환 중 하나를 완성해 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인류가 생명과 인간에 대해 이해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이 외에도 아인슈타인은 마이컬슨-몰리 실험에서 빛 속도에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해결하기 위해 “그렇다면 빛의 속도가 변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이 변하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했고, 고전 물리학의 세계관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또한 컴퓨터 과학자이자 암호 해독가였던 앨런 튜링은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있기도 전에 기계가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며, 현대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 질문은 기술뿐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존재에 대한 철학적 논의까지 확장시켰다.
질문을 통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과학사에서만 존재한 것도 아니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권리가 정해져 있는가?"
"어째서 왕은 신이 선택한 존재여야 하는가?"
"노동이 곧 인간 해방이라면, 왜 노동자는 빈곤한가?"
"왜 투표권은 남성에게만 허락되는가?"
"식민지에 문명이 없는가, 아니면 침묵만 있는가?"
"흑인은 왜 백인과 다른 물을 마셔야 하는가?"
위의 질문들은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가기 죄송스러울 만큼 기존의 세계를 완전히 재편하는 위대한 물음들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문명의 보편적 가치와 기본적인 권리들은 수많은 질문과 외침, 그리고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질문은 지식의 축적을 넘어 ‘세계관의 재편’을 불러왔다. 재편된 세계는 그 자체로 혁명이 되었고, 인류 모두에게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선사해 주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의문과 수많은 물음을 안고 살아간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어떻게 이런 결과가 발생하게 된 것일까?"
"왜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떠오르는 수많은 물음들을 질문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간다. 그리고 분명 그중에는 틀을 넘어선 물음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틀을 넘어선 질문을 세상에 던질 때, 세계는 다시 재편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위대한 질문은 급진적이고 광범위한 변화인 혁명을 이끌어낸다.
그러니 배움에는 변화의 씨앗이 있다는 것을 이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질문을 통해 배우며, 또한 질문하기 위해 배운다.
배움은 우리에게 틀을 벗어나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줄 것이며, 가장 극적인 변화인 혁명의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당신의 배움이 당신의 질문을 만든다.
그리고 당신의 질문이 당신의 세계를 재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