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잠이 든 칼리뮤를 조심스레 안아 침대 위로 옮겼다. 몸을 맡긴 그녀는 희미하게 몸을 뒤척였고, 그 짧은 움직임 사이로 드러난 얼굴엔 여전히 근심의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 그제야 나는 그 근심의 실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칼리뮤는… 너무 깊이 인간의 문제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근심은 어쩌면 그 현실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녀가 우리를 돕는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로쉬 박사는 여전히 그녀와 그녀의 물건을 노리고 있고, 위험은 계속 따라다닌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우리와 함께할 이유는 그녀에게 없다.
어쩌면… 정말로 그녀를 보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더 다치기 전에, 무언가를 더 잃기 전에. 아니면 내가 그녀를 잃기 전에...
“한잔 더 할래요?”
딜런의 목소리가 조용히 숙소 안을 울렸다. 평소의 장난기는 사라지고, 낮고 담담한 톤이었다.
“나쁘지 않죠…”
나는 잠든 칼리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술잔을 부딪히며 나는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내가 했던 요구, 기억해요?”
딜런이 잔을 내려놓고 눈을 찡그렸다.
“어떤 거요?”
“독립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우주선… 칼리뮤가 동료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우주선이요.”
잠시 긴 침묵이 흘렀다. 딜런은 생각을 정리하듯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난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녀를… 돌려보낼 생각이군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딜런은 컵을 내려놓으며 낮게 말했다.
“칼리뮤 씨가 아무 말 없이 이 작전에 동참하려던 건… 물론 제 추측이긴 하지만, 아마도 당신 때문일 거예요.”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구로 오는 셔틀에서 칼리뮤 씨가 목숨 걸고 노라 씨를 살린 거… 알고 있죠? 정말로… 절박해 보였어요.”
나는 대답 대신 자연스레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묻는 건데요.”
딜런이 잔을 기울이며 슬쩍 물었다.
“당신 마음은 어떤데요?”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이제야 분명하게 알 것만 같았다.
처음엔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그다음엔, 구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를 그 무엇보다 지키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더 이상 나와 함께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 그녀가 진심으로 안전하고... 행복하길 바래요.”
나는 어렵게 말을 이었다.
딜런은 잔을 내려놓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사랑하는 거군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딜런은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엘렌에게 이야기해 볼게요. 칼리뮤 씨는 우리에게 큰 전력이지만… 이제 그녀를 붙잡아 둘 명분이 없다는 건, 엘렌도 알고 있을 거예요.”
그는 다시 빈 술잔을 채웠다.
술은 또다시 잔을 채웠지만, 비어 가는 병만큼이나 내 마음속의 무언가도 함께 비어지는 느낌이었다.
엘렌에게 답을 듣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호출이 왔고, 나는 숙취로 침대 위에서 끙끙 앓고 있는 칼리뮤를 뒤로한 채 작전 회의실로 향해야만 했다. 딜런에게는 잠시 그녀를 부탁한다고 전해두었다.
다시 들어선 작전 회의실 안에는 엘렌이 서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작전의 성공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듯, 모의 시뮬레이션을 반복 재생하며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었다.
“왔군요, 노라.”
내 인기척을 느낀 듯, 그녀는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을 꺼냈다. 그러고는 깊은숨을 내쉬며 화면 위의 흐릿한 전투 데이터들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로와 갈등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칼리뮤를… 보내고 싶다면서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화면으로 돌리며 말했다.
“이건 지금 우리가 준비 중인 작전이에요. 당신도 알다시피, 생존 확률은 높지 않죠. 설령 성공하더라도 많은 희생이 뒤따를 겁니다.”
엘렌은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눌렀다. 그 손끝을 통해 지휘관으로서의 중압감이 절실히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소중한 상황이에요. 그리고 칼리뮤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전력 중 하나죠.”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조용히 대답했다.
“… 알고 있어요.”
엘렌의 시선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그녀는 잠시 나를 살피듯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말, 당신은… 참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게 비난이라면—”
“나쁜 뜻은 아니에요.”
그녀가 말을 끊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죠.”
엘렌은 다시 스크린 쪽으로 걸어갔다. 그 발걸음에는 주저함과 무게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노라, 당신 말이 맞아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문명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GU와의 전쟁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이제 인류는… 외계 문명과 어떤 방식으로 공존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대에 들어섰죠.”
그녀는 화면에 떠 있는 네리안 자료를 손끝으로 천천히 스쳤다. 코어리움 캡슐이 희미한 빛을 띠며 화면 중앙에 떠 있었다.
“우리가 그녀의 선택을 막는다면…”
그녀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우린 GU보다 더 큰 적을 상대해야 할지 모릅니다.”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보내줘야 해요. 그녀는 단순한 전력이나 도구가 아니라... 이 시대가 품어야 할 ‘증인’이에요.”
엘렌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긴 시간 고민해 온 듯한 눈빛이었지만, 이미 결론을 받아들인 표정이었다.
“사실 알고 있었어요.”
그녀는 낮게 웃었다.
“우리가 처음 칼리뮤를 보았을 때부터… 그녀를 붙잡아둘 자격 같은 건 애초에 없었죠. 지하도시 몇 곳과 생존지 몇 군데뿐인 우리가, 별 사이를 건너온 문명을 어떻게 구속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오며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그런 표정으로 말하는데, 내가 어떻게 막겠어요.”
나는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 허락하는 건가요?”
엘렌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칼리뮤가 돌아갈 방법을 마련해 줄게요. 우주선도, 출발 경로도… 그리고 탈출에 필요한 눈속임까지.”
그녀는 내 앞까지 와서 조용히 멈췄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나는 숨을 삼키고 물었다.
“… 말해보세요.”
“칼리뮤에게 직접 말해요.”
엘렌의 눈빛은 단단했지만 따뜻했다.
“왜 그녀를 보내려 하는지. 당신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그녀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솔직하게 말해줘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게 할게요.”
그제야 엘렌은 아주 작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그럼 이제… 당신들의 마지막 인사만 남았네요.”
그녀는 다시 스크린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칼리뮤는 떠날 준비를, 그리고 당신은… 그녀를 붙잡지 않을 준비를.”
회의실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무겁게 느껴졌다.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밀도가 높아진 것만 같았다.
엘렌의 말이 끝난 뒤, 늦은 메아리처럼 감정이 밀려왔다. 내 가슴 한가운데가 서서히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후회인지, 상실인지, 혹은 사랑인지 명확하진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이젠… 칼리뮤를 보내줘야만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