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칼리뮤의 표정은 여전히 어딘가 불안정했다. 아마 내가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라… 무슨 일 있어요?”
칼리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한 채, 텅 빈 복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희미한 조명이, 마음속의 복잡한 감정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칼리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녀는 긴장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 일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아니에요.”
나는 재빨리 말을 끊었다.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에요.”
칼리뮤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내가 정말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눈치챈 듯 표정을 굳혔다.
나는 손을 모았다가 풀고, 다시 모았다. 몇 번 반복한 뒤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우주선을 구했어요. 당신이 요청했던… 동료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우주선요.”
말이 떨어지는 순간, 칼리뮤의 얼굴에 연속적인 감정이 스쳤다. 놀람, 불신, 그리고 아주 빠르게 번지는 상처. 나는 그 표정을 마주하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당신은 이미 인간의 문제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어요.”
나는 힘겹게 말했다.
“이젠 나와 계속 함께한다고 해서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건 없어요. 위험만 더 커질 뿐이에요. 로쉬 박사는 아직도 당신을 노리고 있고… 이대로라면 당신은 더 다칠 수도 있어요.”
칼리뮤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그래서… 저를 떠나보내겠다는 건가요?”
그 말은 마치 가슴 한가운데를 찌르는 듯 아팠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키고 싶어서요.”
나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등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번 작전은 정말 위험해요. 많은 희생이 필요하고, 성공할 확률도 낮아요. 그 안에 당신까지 넣고 싶지 않아요.”
칼리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럼… 노라는요? 당신은 상관없는 거예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 정말로, 그 이유 때문인가요?”
나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말했다.
“당신이… 안전하고 행복하길 바라요.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예요.”
말을 하는 동안 목이 점점 잠겨갔다.
“그리고… 당신을 잃는 건… 나는 견딜 수 없을 거예요.”
칼리뮤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 속에는 이해와 슬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고마워요, 노라… 우주선을 구해줘서.”
그녀가 힘겹게 말했다.
“하지만… 괜한 일을 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 마지막 말은 거의 속삭임처럼 흘러나왔다.
잠시 후, 그녀가 내게 다가와 말없이 팔을 뻗어 안았다. 그 포옹 속에서 나는 그녀의 떨림을 느꼈고, 그 떨림은 나의 심장 박동과 거의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닮아 있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울 만큼 가까운 온기가 느껴졌다.
“그럼…”
칼리뮤가 작게 속삭였다.
“저는 이제… 떠나야 하는 거네요?”
나는 그녀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칼리뮤는 천천히 몸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빛은 거의 없었지만,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동작 하나에, 전하고 싶은 말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길 끝에 서 있다는 것을.
내 동료들과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약속된 좌표에서 기다리고 있는지는 이미 한참은 지났을 것이다.
임무 시작 전에 설정해 둔 안전 좌표. 그곳에서 스텔스 시스템을 가동하면 인간들의 기술로는 절대로 우리의 함선을 추적할 수 없다.
하지만 임무에 가장 중요한 물건은 내가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몇 주 전에 끝났어야 할 임무를 아직도 마치지 못하고 있었다.
잠깐 그런 생각도 했다.
내 동료들도 나를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 우주선의 연료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합류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결국 귀환할 것이다.
그러면 임무는 실패로 돌아가고, 나는 임무 중 실종으로 처리되겠지만…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노라와 함께 있고 싶었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소중한 그와 같은 하늘 아래 머물고 싶었다.
그래, 이제는 분명히 알 것 같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다. 그와 함께 있으면 심장이 요동쳤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그와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나는 특별한 존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나에게 빛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 빛은 따뜻했고, 그 빛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내겐 운명처럼 따라붙는 것이 있었다. 이별은 늘 찾아왔고, 나는 그것을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를 떠난다 해도… 그가 내게 준 이 빛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힘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보내려 하고, 나는 같은 이유로 그를 떠나야만 한다.
그가 사랑하는 이 세상을 위해, 그리고 그를 위해... 나는 돌아가야만 한다. 내가 돌아가야만 우리 문명에게서 그를 지킬 수 있었다.
텅 빈 천장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실소가 새어 나왔다.
사랑해서 함께 있고 싶지만,
사랑하기에 떠나야만 한다니…
며칠 동안 나는 노라와 함께 작전 회의실을 계속 들락거려야 했다.
작전은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갔고, 그에 비례하듯 우리의 이별도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우리가 함께 대화를 나누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말이 줄어들수록, 서로의 표정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 침묵과 슬픔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전 시행 전날 밤.
노라가 잠든 것을 확인한 나는 홀로 숙소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결전의 날.
그 어떤 말로도 그를 향한 내 마음을 충분히 전할 수 없을 만큼, 짧고도 긴박한 하루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남기기로 했다. 편지를 써본 적은 없었지만, 막상 펜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들에 비해, 내 마음을 담아야 하는 종이가 너무 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침표를 찍고,
천천히 펜을 내려놓았다.
편지를 고이 접어,
걸려 있는 노라의 외투 주머니 안쪽 깊숙이 넣었다.
문득 창밖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 채광구를 통해 쏟아져 들어온 달빛은 흐르는 지하수 위에 잔잔한 은빛 은하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수면 위에서 흔들리며 반짝이는 그 별들이… 내 시야 속에서 서서히 흐려졌다.
“칠칠맞긴…”
나는 속삭이듯 중얼거리며 손끝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그러나 그 한 번의 움직임이 무언가를 건드렸던 것일까. 나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무너져 주저앉았다.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소리를 삼키며,
한참 동안 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