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에그리나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격납고 이착륙장에는 새벽 특유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분주한 발소리와 각종 기계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소음의 중심을 향해 노라와 칼리뮤는 엘렌의 뒤를 따라 조용히 걸었다.
잠시 후, 엘렌은 거대한 수송선 앞에 멈춰 서서 그들을 돌아보았다.
“이건 우리가 작전에 사용할 스텔스 수송기, OTV-11. 일명 '고스트쉽(Ghostship)'이에요.”
엘렌이 손바닥으로 수송선의 외피를 살짝 쓸며 말했다.
노라와 칼리뮤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그 수송선을 바라보았다.
기체는 군더더기 없는 윤곽을 지니고 있었고, 기수에서 꼬리까지 이어지는 형상은 하나의 매끄러운 곡선을 그려놓은 듯했다. 검은 외피는 빛을 거의 반사하지 않았고, 가까이서 보아야만 미세한 패널 결이 겹겹이 이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치 전장을 피해 스며드는 존재, 그림자와도 같아 보이는 우주선이었다.
엘렌은 노라의 시선을 확인하듯 고스트쉽을 한 번 더 바라보며 말했다.
“노라, 당신은 이걸 타고 코라로 접근할 거예요. 숙련된 조종사와 엔지니어가 함께하니, 코라까지 가는 과정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칼리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칼리뮤. 당신은… 저것을 이용해야 합니다.”
칼리뮤의 시선이 엘렌이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조금 전 보았던 수송선보다 훨씬 작은 우주선 하나가 자력 고정 장치 위에 얹힌 채 조용히 서 있었다. 삼각형 동체는 회색 패널 사이에 어둠 속 윤곽만 드러낼 만큼 조명을 거의 반사하지 않고 있었다. 기체 하부에 달린 무반동포는 모두 안전 커버로 봉인되어 있었으나 위협적으로 보이는 자태를 감출 순 없었다. 후방의 이온 추진기에는 정비 직후의 미세한 열기만 남아 있었고, 날개 끝의 RCS 노즐은 점검등만 희미하게 깜빡였다.
“저건 우리가 가진 주력 전투기, '노매드(Nomad)'예요. 고스트쉽처럼 빠르고 은밀한 기체는 아니지만, 성능만큼은 GU의 어떤 전투기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그 어떤 셔틀보다도 이 전투기를 이용하는 편이 안전할 겁니다.”
칼리뮤는 노매드에 가까이 다가가며 천천히 기체를 살펴보았다.
후방의 큼직한 이온 추진기, 균형 잡힌 기수 구조, 빠른 기동을 보조할 RCS 노즐들… 분명 인간 기술치고는 상당한 완성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짧게 중얼거렸다.
“… 아마 가장 좋진 못할 거예요.”
그녀의 머릿속엔 자신들의 함선을 추격했던, 구(球) 형태의 GU 검은색 전투기가 떠올랐다. 아마 이 노매드라는 전투기에 비해 월등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엘렌은 잠시 칼리뮤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찌 됐든… 우리가 가진 우주선은 이게 전부예요. 고스트쉽은 시제품이라 단 한 대뿐이고요. 지금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칼리뮤는 잠시 침묵하다가 엘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라는 것을 칼리뮤는 알고 있었다.
중앙의 거대한 스크린에는 지구 전역에 퍼져 있는 사일로 위치를 나타내는 붉은 점들이 수백 개나 빼곡히 박혀 있었다. 그 점들은 마치 이미 정해진 운명을 향해 뛰어들 준비를 마친 별들처럼, 조용히 점멸하며 빛을 냈다. 에그리나의 격납고 이외에도 이미 전 대륙의 모든 기지가 이번 작전을 위해 움직이고 있음을 알리는 듯했다.
그 스크린 앞에 엘렌이 서 있었다. 수많은 조종사들이 그녀를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고, 엘렌은 그들의 시선을 담담하게, 그러나 결연한 눈빛으로 받아내며 작전 브리핑을 이어갔다.
“고스트쉽과 노매드 제로(칼리뮤 탑승 기체)가 지구 궤도를 성공적으로 이탈하는 순간, 작전은 완수됩니다. 그 즉시 모든 기체는 예정된 대기권 재진입 경로로 복귀하십시오. 부디… 모두 무사히 돌아오길 바랍니다.”
엘렌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 조종사들은 일제히 소리 없는 거수경례를 올렸다. 그 안에는 간결하지만 명확한 그들의 결의가 담겨 있었다. 엘렌은 자세를 바로 세우며, 그 경례를 어느 때보다 엄숙하게 받아냈다.
노라와 칼리뮤는 뒤편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차분히 눈에 새겨 넣었다. 그리고 노라는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반드시 성공하겠다. 이들을 위해서라도.'
「모든 조종사들은 기체에 탑승하기 바랍니다.」
격납고 안에 울려 퍼지는 안내 음성은 전투기들이 뿜어내는 엔진음에 거의 묻혀 버렸다. 지구의 자녀가 지급한 유니폼을 착용한 노라와 칼리뮤는 그 소음들 속에서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이네요."
노라가 말했다.
"가야 할 시간이기도 하고요."
칼리뮤가 담담히 받았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칼리뮤가 숨을 고르듯 천천히 들이쉬고, 노라는 격납고 천장의 흔들리는 조명 아래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수십 대의 엔진 진동이 금속 바닥을 타고 전해졌고, 뜨거운 매연과 차가운 공기가 뒤섞여 흐트러진 공기가 주변을 감싸고 있었지만… 두 사람 사이만큼은 기묘하리만큼 고요했다.
정지된 시간. 소음 속의 고요.
“노라.”
칼리뮤가 그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결심과 망설임, 두 감정이 동시에 스며 있었다.
노라는 대답 대신 그녀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그가 말을 잇기도 전에 칼리뮤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그러다 다시 눈을 들었을 때, 노라는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 속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겹겹이 어려 있음을 발견했다.
“당신을 떠나는 게…”
칼리뮤가 작게 숨을 삼켰다.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노라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 한마디가 그가 듣고 싶었던 말이면서도,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노라가 조용히 답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죠.”
칼리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이미 알고 있는 사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칼리뮤는 자신이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노라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순간만큼은 그 결정을 미루고 싶었다.
노라는 그녀를 붙잡고 싶다는 마음과,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충돌하듯 가슴이 조였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때 칼리뮤가 손을 들어 노라의 가슴에 아주 가볍게 손끝을 얹었다. 두터운 가죽 장갑을 뚫고 전해질만큼 조심스러운 터치였다.
“당신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됐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단단했다.
“그리고… 제가 가져갈 수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건, 여기에 있는 이 감정이에요.”
노라는 대답 대신 자신의 가슴에 올려진 칼리뮤의 손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 그의 손끝이 떨렸고, 칼리뮤의 숨도 작게 흔들렸다.
멀리서 고스트쉽의 엔진이 점화되며 낮은 진동이 격납고 전체를 울렸다. 출발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칼리뮤는 노라의 가슴 위에 올려둔 손을 천천히 거둬들였다. 노라는 그 손을 붙잡지 않았다. 붙들면… 보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노라.”
칼리뮤가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떨군 뒤, 마음을 정한 듯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저… 돌아올게요. 당신을 만나러 오겠어요. 그러니 당신은… 당신이 꿈꾸던 세상에서 기다려줘요.”
노라의 가슴이 조용히 요동쳤다. 그의 입술이 떨렸고,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 부디, 무사히. 그리고… 당신의 그 아름다운 미소를 가져와요.”
노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칼리뮤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그 어떤 표현보다 분명하게 그녀의 마음을 전했다.
'당신도… 그리고 나도.'
노라는 천천히 손을 들어 칼리뮤의 뺨을 어루만졌다. 어느새 두 사람의 얼굴은 서로의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노라는 입술을 칼리뮤의 입술 위에 포갰다. 아니, 칼리뮤의 입술이 더 먼저 움직였던 것 같기도 했다. 누가 먼저였는지 모를 키스가, 아주 짧게, 그러나 깊게 두 사람 사이를 스쳤다.
그 순간만큼은 소음도 시간도 사라지고, 오직 서로의 존재만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두 사람의 입술을 통해 전했다.
칼리뮤가 천천히 몸을 떼고 뒤돌아섰다. 노라의 손끝에서 체온이 사라지며, 그의 마음속 어딘가도 함께 비워지는 듯했다.
그녀는 노매드로 걸어가 사다리를 올랐다. 기체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그녀는 잠시 멈춰 뒤돌아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노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작별인사였다.
캐노피가 내려오며 두 사람 사이를 완전히 차단했다. 칼리뮤가 앉아있는 모습은 어느새 불투명한 유리에 비친 노라의 모습으로 바뀌어있었다.
고스트쉽의 엔진음이 커지며 격납고를 가득 채웠다. 노매드의 발진 등화도 켜졌다.
이제…
정말로 각자의 길을 향해 나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