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wn

# 70

by 더블윤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Observer


새벽 직전의 지구는 기묘할 만큼 고요했다. 그러나 그 고요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지구 전역에서 감춰져 있던 사일로들이 거의 동시에 열리며, 지하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온 금속성 진동이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어, 지표 곳곳에서 수백 개의 빛줄기가 솟아올랐다.
소행성 요격용 미사일. 본래는 지구 멸종급 위협을 막기 위한 최후의 안전장치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지구의 자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첫 수’였다.
미사일들은 하얀 궤적을 남기며 구름층을 가르고 성층권으로 사라졌다.




루나포트의 상황실. 그곳은 폭발하듯 울려대는 경보음으로 가득 차있었다. 붉은 경광등이 어둠 속을 뒤흔들었고, 상황실의 화면들은 경고 메시지를 경쟁하듯 쏟아냈다. 상황실안에 메아리치는 목소리들에서 그들이 처한 급박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지구에서 대량 발사체 확인! 수백 발 규모입니다!”
“반군의 공격으로 추정!”
“궤적 분석. 루나포트로 향하고 있습니다!”
“전 방위 방어 태세 돌입! 요격망 즉시 가동!”
“MCD 준비 상태는?”
“아직 코어리움 임계치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발사까지 최소 두 시간은 필요합니다!”
"혹시 모르니까 빠르게 준비시킬 수 있도록해!"

루나포트의 대응은 즉각적이었다. 지구 궤도 위의 수백 개의 위성이 자세를 교정하며 푸른빛의 요격 레이저를 발사했고, 지구 상공은 순식간에 고열과 섬광으로 물들었다.
미사일이 터질 때마다 금속 파편들이 얇은 안개처럼 흩어져 센서들을 교란했고, 그로 인해 요격망의 계산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요격 시스템의 반응 속도는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 틈이 바로 자구의 자녀가 뚫고 나갈 길이 되었다.




삼각형의 매끈한 날개를 가진 전투기 노매드가 보조 로켓의 화염을 뿜으며 대기권을 찢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 뒤에는 커다란 드론 모함, '스웜'이 떨리는 금속음과 함께 뒤따랐다.
24기의 노매드, 그리고 6기의 스웜. 많진 않았지만, 지구의 자녀가 가진 최정예 전력이었다.

“모든 기체, 편대 속도 세트. 대기권 이탈까지 30초.”
“스웜 전 기체, 드론 베이 준비.”
“편대 상승률 정상. 교란 효과는 양호하다.”

상층 대기에 진입하자 공기 저항이 가벼워지고, 기체는 한층 더 가속을 받았다. 노매드에 달려있는 보조 로켓은 연료 소모와 함께 자동 분리되며 뒤로 떨어져 갔다.

그리고 통신이 울렸다.
“레드 편대, 요격 위성 제거로 전환한다.”
“카피. 레드 리더.”

레드 편대의 기체들이 하얀색 가스가 뿜어낸 궤적을 남기며 대열에서 벗어났다.
노매드 하부의 무반동 캐논이 발광하듯 점멸했고, 20mm 초소형 로켓이 우주의 검은 공간을 빠르게 가르며 날아갔다. 궤도를 돌던 위성들은 튀어 오르는 금속 조각들과 함께, 순식간에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위성 군 무력화 확인. 작전을 속행해도 좋다.”
엘렌의 확고한 목소리가 모든 기체의 통신기 안에서 울렸다.

“전 기체, 달 궤도 접근 기동으로 전환.”

편대는 자연스럽게 궤도를 틀었다. 지구의 푸른빛이 뒤로 물러나고, 달의 회색빛 경계선이 점점 시야를 채웠다.

“달 중력권 진입까지 3분 전.”
편대장 웨지의 목소리는 차분했으나 긴장감이 배어 있었다.
“루나포트 적 함 확인 시 교전 전환한다.”

예상보다 빠르게, 거대한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80미터의 길이의 강철 선체가 달빛을 반사시키며 다가왔다. 마주 오는 그 거대한 함선의 레이저 포대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노매드 편대는 회피기동을 하며 고열의 레이저빔을 피해 흩어졌다.

“루나급 초계함(LCP) 다수 포착. 스웜 전 기체 드론 사출 준비.”
“스웜 카피. 드론 베이 오픈.”

노매드를 느리게 뒤따라오던 육중한 몸체를 가진 스웜이 상부의 천정문을 일제히 개방하기 시작했다. 열려진 천장 아래로, 푸른색 빛을 발광하고 있는 전술 요격 드론들이 폭발하듯 사출 되었다. 스웜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드론들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흩어지며 초계함을 향해 접근했다.
초계함의 레이저 포와 30밀리 부포들이 일제히 발화했다. 드론이 고열의 레이저에 닿자마자 불덩이처럼 터져나갔으나, 그보다 더 많은 드론들이 지그재그 비행으로 회피하며 포격망을 분열시켰다. 초계함에서 발사된 어뢰는 무의미하게 허공을 가로질렀다. 초계함의 구형 사격통제 시스템은 작고 민첩한 드론의 움직임을 추적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드론의 공격 또한 GU의 초계함에 유효한 타격을 주지 못했다. 가까이 접근한 드론 중 몇 대가 상부에 장착된 20밀리 무반동포와 하부에 달란 소형 어뢰로 초계함을 공격했지만, 그들의 단단한 장갑을 뚫어낼 순 없었다.
드론의 집중포화를 뚫고 초계함은 공격대상을 바꿨다. 예열된 주포의 포신이 스웜의 본체를 겨누었다. 캐논의 끝에서 붉은 섬광이 번쩍이는 듯하자, 스웜 한 기의 외피가 녹아내리는 듯하더니, 이내 커다란 폭발을 일으키며 산산이 흩어졌다.

“스웜 리더에서 보고! 스내퍼(전술 요격 드론)로는 장갑 파괴가 불가하다!”
“카피. 엘로 편대가 초계함 타격 임무로 전환.”

엘로 편대 4기가 깊게 선회해 초계함의 중장갑 선체를 향해 파고들었다. 드론의 교란으로 초계함 포대들은 이미 시야를 잃어, 노매드의 접근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엘로 1, 어뢰 투하.”
“엘로 2, 투하 따라간다.”

두 발의 어뢰가 짧음 불꽃의 꼬리를 남기며 초계함 선체를 꿰뚫었다. 이어진 섬광이 우주 공간을 환하게 비추었고, 초계함은 거대한 골조가 찢어지며 두 동강이 났다.

“A섹터 초계함 무력화.”
“B섹터도 다운. 전 구역 방어망 약화됐다.”
“편대 대형 유지. 목표 지점까지 계속 간다.”

루나포트의 방어선은 하나씩 붕괴해 갔다. 지구의 자녀가 펼치는 전략과 전술, 그리고 절박한 결단이 만들어낸 힘이 우주 한복판에서 실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궤도를 방어하던 초계함들이 하나 둘 고철 덩어리로 변해갔고, GU의 구형 함선들은 지구의 자녀가 자랑하는 최신예 전투기와 유기적인 전술을 당해낼 수 없었다.

“전방 적 전투기 다수 출현!”

관측 레이더에 붉은 점이 가득 떠오르기 시작했다. 루나포트의 월면 기지에서 뒤늦게 출격한 GU의 다목적 전투기들이 벌집을 쑤신 듯 한꺼번에 분출되고 있었다. 하얀 월면 위로 검은 점들이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우주 공간을 뒤덮을 만큼 거대한 편대를 형성했다.

“드론으로 화망을 조성한다. 노매드는 스웜 방어 우선. 편대 간격 유지하고 흩어지지 마라.”
편대장 웨지의 단호한 명령이 통신망을 가득 채웠다.

노매드 편대는 즉시 기수를 돌려 적 편대를 향해 접근했다. 양측의 거리 감소와 함께 서로의 20mm 무반동포가 불을 뿜었다. 무음에 가까운 우주의 전장에서, 폭발은 오직 번쩍임으로만 존재했다.
양 진영에서 쏟아지는 포화가 서로를 향해 교차하며 수십 개의 섬광이 연이어 터져 나갔다. 방향전환이 늦은 기체들은 그대로 충돌해 파편이 되어 흩어지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장은 날카로운 잔해의 바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스웜에서 사출 된 드론들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인 밀집 대형을 유지하며 화망을 펼쳤다.
“스웜-1, 드론 사출률 95%. 전 기체 교전 가능.”
“카피. 드론 화력 전개.”

수십 기의 드론이 동시에 탄화를 뿜어내자, GU 전투기 여러 대가 한 번에 고깃덩어리처럼 찢겨 나갔다.
드론은 빠르지 않았지만 방향전환과 순간 가속도가 기묘할 정도로 날카롭고 정확했다. 이젠 구형이 되어버린 GU 전투기들은 드론의 급격한 회전을 따라잡지 못하고 순식간에 포위망에 잡히기 시작했다. 드론 하부의 소형 유도어뢰가 불꽃을 남기며 목표를 좇았고, 전투기 하나하나가 정확히 제거되었다.
드론을 피해 급히 편대에서 이탈하는 GU 전투기들은 잠시 숨을 돌리는 듯 보였지만,

“노매드 블루, 이탈기 추적. 교전 전환한다.”

노매드가 그림자처럼 내려와 그들의 사이를 갈랐다. 무반동 캐논과 레이저 포대가 짧게 번쩍였고, 편대를 이탈한 GU의 전투기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파편을 흩뿌렸다.

“블루-2, 타겟 다운. 다음 표적 이동.”
“카피. 사격 지속한다.”

노매드들은 순간 가속과 기동성에서 압도적이었다. 일단 추적을 시작하면 GU 전투기가 도망칠 여지는 거의 없었다.
탄약과 연료가 떨어진 드론들은 계산된 경로대로 스웜에 귀환했다.

“스웜-3, 드론 리로드 완료. 2번 포트 사출..”

스웜의 상부 문이 열리고, 막 보급을 마친 드론들이 다시 교전 구역으로 솟구쳤다.
그 반복이 몇 차례 이어지자 지구와 달 사이의 공허했던 공간은 GU 함선의 잔해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섬광들로 가득 찼다.

"적기의 수가 너무 많아."
"드론 손실률 60퍼센트."
"레드-4, 꼬리를 잡혔다! 떼어내 줘!"
"엘로-2, 피격당했다! 기동불가!"
"으아악...!"

하지만 여전히 루나포트에서는 새로운 전투기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피해를 입은 노매드와 격추된 드론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고하게 다듬어진 지구의 자녀의 전력은 GU가 예상했던 것보다 굳센 의지로 버티고 있었다.

노라와 칼리뮤가 향할, 단 한 줄기 ‘길’을 만드는 것. 그것이 조금씩, 그리고 분명하게 열리고 있었다.




우주 공간을 가득 메운 화염과 잔해들 아래, 에그리나의 지하 격납고 내부에는 노라가 탑승한 고스트쉽과 칼리뮤가 탑승한 전투기가 나란히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금속 발판 아래에서 미세한 진동이 울리고, 그 위에 선 엘렌이 통신기를 꽉 쥔 채 지구의 자녀 편대의 실시간 전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십 개의 모니터에 펼쳐진 전투 화면들은 하나같이 혼란스럽고 위태로웠지만, 그 모든 흐름은 단 하나의 순간을 향해 정렬되고 있었다.
그녀는 숨을 한번 고른 후, 뒤쪽에서 이륙 대기 중인 두 기체를 향해 돌아섰다.

빛을 거의 반사하지 않아 겉모습조차 흐릿해 보이는 유령과 같은 수송기 '고스트쉽'. 그리고 그 옆에서 조용히 전열을 가다듬는 삼각형의 기체 ‘노매드 제로’.
엘렌은 마지막으로 전황을 확인한 뒤, 낮은 목소리로 통신망에 명령을 내렸다.

“모든 편대, 돌입 항로 확보 완료. 고스트쉽 및 노매드 제로, 이륙 승인.”

격납고의 경고등이 붉게 점등되었다. 이어 굵은 금속문들이 천천히 열리며 지하의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기 시작했다. 지면을 타고 울리는 엔진의 공명음이 점점 고조되었다.
고스트쉽의 엔진부가 푸르게 점화되자 기체 전체가 흔들리며 매끄럽게 떠올랐다.
노매드에 탑승한 칼리뮤는 조종 장갑을 낀 손을 조심스럽게 패널에 갖다 댔다. 기체를 지탱한 자력 발사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노매드의 기수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노매드의 보조로켓이 불을 뿜었다. 맹렬한 화염을 뒤로 밀어내며, 날렵한 노매드의 기체가 고스트쉽의 자취를 따라갔다.
새벽의 푸른빛과 잔여 불길이 어지럽게 섞인 하늘. 그 하늘을 향해 두 갈래의 궤적이 뻗어 올랐다.

인류의 행보를 결정지을 두 우주선이 별빛을 향해 떠나간 뒤, 격납고 안은 순간적으로 고요 속에 가라앉았다.
엘렌은 주먹을 쥐었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두 사람을 보내야만 하는 책임과 그들이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소망이 겹쳐 보였다.

엘렌은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두 빛줄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 부디, 모두 무사히...”

그리고 지구의 하늘은 각자의 운명을 향해 날아오른 두 개의 항적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