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200번째 글
예전에 발행했던 글의 내용을 수정해서 발행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구소련의 핵물리학자 게오르기 플레로프는 1942년에 핵물리학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플레로프는 자신의 이 논문이 세계적 주목을 받으리라 확신했던 듯하다. 그래서 그는 매일같이 대학 도서관을 찾아 학술지를 뒤져 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의 논문에 대한 언급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크게 실망했고, 깊은 상처를 받았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그것은 바로 오늘 수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느꼈을 감정이, 플레로프가 느꼈던 감정과 닮아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는 나도 포함된다.)
수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제13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자신이 정성껏 길러온, 자식과도 같은 글들을 내보였다.
하지만 자식이라는 게 그렇더라. 내 눈에는 넣어도 아프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 눈에는 눈엣가시로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일화를 꺼낸 이유는
“그래, 나 우울해. 상처받았어.”
와 같은 감상을 늘어놓기 위함은 아니다.
다시 플레로프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플레로프는 상처를 받고 실망했지만, 곧 그 이유를 깨닫는다. 이미 미국과 독일 등지에서 핵물리학 연구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었고, 그 때문에 핵물리학 관련 언급이 어떤 학술지에도 실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플레로프는 서둘러 스탈린을 찾아가 독자적인 핵물리학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미국과 독일에서 원자폭탄 제작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우리도 움직여야 합니다.”
그가 말한 핵물리학이란 연쇄 핵분열 반응 폭탄, 바로 원자폭탄이었다.
플레로프 역시 자신의 논문, 즉 자신의 창작물이 주목받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그는 매일같이 학술지를 확인하며 자신의 이름을 찾아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 행위를 통해 얻은 것은 실망뿐이었다.
그러나 플레로프는 자신의 창작물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를 정확히 통찰해 낸다. 자신의 창작물이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는 통찰 말이다.
그래서 그는 좌절하고 포기했을까? 차라리 그가 포기했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후에도 연구를 지속했고, 구소련에 원자폭탄이라는 무기를 쥐여 주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 되었다.
(물론 그는 핵과학 전반에 지대한 공헌을 한 과학자이며, 단순히 무기 개발자로만 바라보는 것은 곤란하다.)
결국 그는 과학자였다.
학술지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하기 위해 연구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 그 자체를 수행하는 과학자 말이다.
글을 통해 창작을 하는 우리도 이러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자신의 창작물이 주목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기에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창작물이 주목받지 못한다고 해서, 그 글을 다른 사람들의 글과 비교하며, ‘내가 쓴 게 더 개쩌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냉정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시작과, 글쓰기의 본질을 떠올리는 일이다.
우리는 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처음 글이라는 것을 쓰며, ‘나는 나중에 잘 나가는 작가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 시작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처음부터 ‘주목’을 받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아마 우리는 글 쓰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 다른 이들과 무언가를 주고받는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의 글쓰기는 쉬어 갈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것 같다.
결국 우리가 글을 쓰고 있는 근본적인 본질을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어딘가에 닿을지도 모를 일이다.
핵과학자의 길을 끝까지 걸어간 플레로프가 원자번호 114번 초중원소 ‘플레로븀’의 명명자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써 내려가는 글 또한 결국 무언가를 이루어낼지도 모른다.
그러니 실망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우리는 기록자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얻기 위한 기록자가 아니라, 기록 그 자체를 수행하는 기록자 말이다.
핵무기 개발을 주도했던 인물인 게오르기 플레로프를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과학자로서 그의 태도를 언급하고 싶었던 것임을 밝힙니다. 감상에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