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루나포트의 상황실 내부.
계속해서 전투기 손실률이 증가하는 모니터를 바라보는 고위 장교의 미간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옆에 있는 다른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화면에는 ‘화성급 구축함(Mars Class Destroyer)’이라는 글씨와 함께, 알 수 없는 게이지가 천천히 차오르고 있었다.
“지금 출격시켜.”
화면을 바라보던 장교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안정화가 끝나지 않은 상태로 출격했다간 원자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몇 달간 안정화 작업에 들어가야 합니다, 장군님.”
옆에 있던 부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장군은 부관의 멱살을 거칠게 잡아끌며,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지금 출격하지 않으면 저 전함은 떠올라 보지도 못하고 반군 놈들한테 고철이 돼버릴 거야. 그런데 네놈은 그깟 몇 개월의 안정화가 더 중요해?!”
그는 멱살을 내던지듯 놓아버리며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출격해. 지금 당장.”
부관은 옷깃을 툭툭 털며 자세를 바로잡고는 큰소리로 “알겠습니다!”라고 외친 뒤, 상황실 밖으로 급히 뛰쳐나갔다.
루나포트 상공의 고궤도.
그곳에는 파괴된 초계함의 잔해와 산산이 부서진 전투기 외골격들이 궤도를 따라 흩어져 있었고, 치열한 전투의 섬광이 아직도 희미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구의 자녀는 막대한 피해를 감수했지만, 자신들의 전력보다 훨씬 거대한 적을 상대로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그린 3, 어뢰 투하.”
노매드에서 투하된 중형 어뢰가 빠른 속도로 달 표면을 향해 낙하하다가, 상공을 향해 불을 뿜고 있던 대공포에 직격 했다. 루나포트의 백색 기지가 연쇄 폭발을 일으켰고, 노매드 조종사는 짧은 환호를 내질렀다.
고스트쉽과 노매드 제로는 이미 안전 항로로 이탈한 상태였다. 루나포트 궤도를 방어하던 초계함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GU 전투기들의 출격 빈도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에그리나 지휘통제실은 현재 상황을 낙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완전한 작전 성공을 넘어,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판단했다.
엘렌 역시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전황을 바라보며, 이대로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잠시 젖어들었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지구의 자녀 전투기들이 루나포트 기지의 코앞까지 접근했음에도, 새로운 전투기 출격은 보이지 않았다. 루나포트에 정박한 함선들이 이것이 전부일 리는 없었다. 오히려 전력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 아니, 지구의 자녀 기체들을 일부러 상공에 묶어두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적기가 사라지자 아군 기체들은 공격을 위한 밀집 대형을 형성하며 편대 비행을 시작했다.
그 순간, 엘렌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곧장 통신기 앞으로 달려가 송신 버튼을 강하게 눌렀다.
“전 편대에 통보. 지금 즉시 철수를 시작한다. 반복한다. 전 편대는 지금 즉시 철수를 시작한다.”
잠시동안의 정적 끝에, 편대장 웨지의 목소리가 통신기 너머로 들려왔다.
“하지만 사령관님, 우리가 직접 이 기지를 끝장낼 수 있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이미 작전은 성공이야, 웨지. 빨리 철수를 시작해!”
엘렌은 말을 마치자마자 통신기 주변을 초조하게 오가며 발을 동동 굴렀다.
부디, 너무 늦기 전에 그들이 철수를 시작하기만을 바라면서.
“이미 작전은 성공이야, 웨지. 빨리 철수를 시작해!”
웨지는 엘렌의 교신을 수신한 뒤에도 한참을 망설였다.
엘렌은 항상 차분하고 냉철한 지휘관이었다. 여성의 몸으로 사령관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그녀는 단 한순간도 부족함을 보이지 않아 왔다.
하지만 지금, 현장의 지휘관은 분명 웨지였다. 그의 눈에는 아직 충분한 탄약과 연료, 그리고 궤멸직전인 루나포트의 방어선만이 보였다. 그들이 자랑하는 조선소와 격납고를 폭격할 수 있는 지금의 기회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란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 나아가 보기로 했다.
“모든 노매드는 루나포트에 대한 폭격을 개시한다. 스내퍼(드론)는 노매드를 엄호한다.”
“카피. 레드 리더.”
스웜 내부에서 AI 모듈이 활성화되며 드론 편대에 새로운 명령이 덧씌워졌다. 드론들은 노매드를 둘러싸며 대공포의 포격을 몸으로 받아낼 준비를 시작했다.
노매드 편대는 하나둘 기수를 아래로 내렸다. 루나포트의 기지 전경이 점점 더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루나포트 외곽.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0번 격납고의 외피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또 다른 전투기들이 출격을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단 한 기의 함선만이 모습을 드러낼 뿐이었다.
인류가 만든 그 어떤 함선보다도 거대한 함선 한 기가...
“저게 뭐야…?”
누군가가 통신 채널에 낮게 내뱉었다.
그 순간, 천천히 떠오르던 함선의 거대한 주포가 번쩍였다. 눈에 선명히 보일 정도로 굵고 응축된 레이저 포격이 밀집해 있던 드론과 노매드를 순식간에 증발시켰다. 붉은 잔여 에너지는 계속해서 뻗어나가 지구 대기 상층을 스쳤다.
“적의 신규 함선 확인! 모든 노매드는 어뢰 투하 준비, 스내퍼는 적의 주의를 끌어!”
웨지는 망설임 없이 명령을 하달했다.
드론들은 산개하며 GU의 거대한 함선을 향해 달려들었고, 노매드들은 어뢰에 전원을 주입하며 공격을 위한 선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대형 함선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촘촘히 배치된 소형 레이저 포대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피할 수 없는 빛의 열기가 스내퍼들을 빠르게 격추시켰다.
“전 편대, 어뢰 투하!”
공격 준비가 완료된 노매드에서 수많은 어뢰가 발사되었다. 아무리 단단한 장갑이라 해도 이 정도의 집중포화를 막아내기는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거대 함선의 레이저 포대 근접방어시스템(CIWS)이 가동되었다. 다연발 레이저 빔이 쏟아지며 함선에 접근하던 어뢰들이 공중에서 연쇄 폭발했다.
그제야 웨지는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며 자신의 불찰을 깨달았다. 이제 그의 눈에 보이는 건, 무너져 가는 루나포트의 방어선이 아니라, 지구의 자녀가 가진 그 어떤 무기로도 격추할 수 없는 움직이는 성채였다.
“전 편대! 퇴각! 퇴각! 지구로 귀환한다!”
웨지가 다급하게 외쳤다.
모든 기체는 기수를 지구 쪽으로 돌리며 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드론들은 적의 거대 함선 추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여전히 루나포트 상공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다행히도 적 함선이 퇴각 중인 지구의 자녀 기체들을 추격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측면의 발사관이 열리며 무언가를 준비하는 듯했다.
“적 함, 어뢰 발사 징후 확인. 전 기체 회피 기동 준비.”
웨지가 경고했다.
이윽고 열린 발사관에서 수십 개의 ‘무언가’가 동시에 발사되었다. 그러나 그 무언가는 어뢰가 아니었다.
“UFO(Unidentified Flying Object) 접근 중! 고속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간다! 항로 유지해!”
웨지는 자신이 탑승한 노매드의 기수를 돌렸다. 자신의 오판으로 인해 사지에 내몰린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만 했다.
그가 탑승한 노매드가 다가오는 미확인 비행체를 향해 20밀리 탄약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 비행체들은 불가사의한 움직임으로 노매드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리고 이내 방향을 전환하며 웨지의 노매드를 향해 파고들었다.
그제야 웨지는 그것들이 적의 전투기임을 깨달았다. 외형은 둥근 공 모양이었지만, 그 성능은 결코 단순하지 않아 보였다.
웨지는 꼬리를 물려는 적기를 따돌리기 위해 급격한 기동을 펼쳤다. 공 모양의 검은 전투기조차 그 움직임을 완전히 예측하지 못했는지 웨지의 노매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는 웨지가 기수를 틀어 적 전투기의 후방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격발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웨지가 추적하던 전투기가 공중에서 스스로 폭발했다.
폭발로 생성된 성형 파편들이 노매드로 날아들어 날개에 붙어있는 RCS 노즐을 직격 했다.
“젠장! 자폭이야! 기동 불가! 기동 불가!”
웨지가 다급히 외쳤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통신에 응답하지 않았다. 통신 장비마저 손상된 모양이었다.
웨지는 허망한 표정으로 캐노피 너머를 바라보았다. 여러 대의 공 모양 전투기가 그를 향해 기수를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투기들의 작은 발사관이 열리더니, 조그만 어뢰들이 튀어나왔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웨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상황 보고해, 웨지!”
에그리나 지휘통제실.
엘렌은 대답 없는 통신기를 향해 외쳤다. 주변의 참모들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무거운 침묵과 정적이 지휘통제실을 가득 메웠다.
“아군 기체 상태 업데이트 중입니다…!”
상황병의 보고에 엘렌은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노매드 레드 1.
기체 표시가 붉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웨지의 기체였다.
“젠장…”
엘렌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모니터 속 수많은 아군 기체들이 빠른 속도로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기체마저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지휘통제실은 다시 한번 깊은 침묵에 잠겼다.
엘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제발… 이젠 이 악몽을 끝내줘, 노라…”
그녀에게 남은 말은,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