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2

# 74

by 더블윤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Boy’s


고스트쉽은 화성을 향해 안정적인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은 여전히 고요한 어둠뿐이었고, 선내를 지배하는 것은 무거운 침묵이었다. 뒷자리에 앉은 무장 요원들이 장비를 점검하며 내는 덜거덕 거리는 소리만이 이따금 그 침묵을 깨뜨릴 뿐이었다.

“가속을 멈추고, 현재 순항 속도를 유지합니다.”
부조종사의 말과 함께, 희미하게 느껴지던 관성마저 사라졌다.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더 가면 화성 궤도에 진입할 겁니다.”
옆자리에 앉은 딜런이 무거운 공기를 깨보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딜런은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이내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해요?”
한동안 침묵하던 딜런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낮게 물었다.

“아무것도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칼리뮤 씨 생각하죠?”
딜런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작은 장치를 하나 꺼내 들었다.
출발 전, 이곳에 탑승한 모두에게 지급된 저장장치. 지구의 풍경이 담긴 영상과 ‘지구의 자녀’ 지도부의 전언, 그리고 지구의 실시간 상황을 수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담겨 있었다.

“지금은… 이것만 생각해야겠죠.”
나는 그 저장장치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딜런이 그것을 힐끗 바라본 뒤, 냉정하게 대답했다.
“맞아요, 노라.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떨쳐내야 해요…”
그는 말끝을 흐렸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지우려 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칼리뮤 역시 내게는 그런 존재였다. 아직도 고개를 돌리면 그녀가 곁에 있을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뒤에서 내 이름을 불러줄 것 같았다. 그녀가 여전히 곁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여전히 그녀의 박동이 느껴졌고, 감정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나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그 감각은 분명 지금의 현실이었다.
지구로 오는 과정에서 있었던 그녀의 치료, ‘링커’ 이후로 나는 칼리뮤와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감각과 리듬, 심지어 감정까지도 그녀와 동기화된 듯한 감각. 시간이 흐르며 그 연결은 서서히 옅어졌지만, 바로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그녀의 존재가 또렷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항로를 변경해야 해요.”
나는 급히 고개를 들어 큰 소리로 말했다.
딜런을 비롯한 선내의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코라는… 화성에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노라?”
딜런이 물었다.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느껴져요, 딜런. 지금 칼리뮤가 위험에 처해 있어요. 그리고… 코라는 그곳에 있어요.”

앞에 앉은 조종사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딜런의 얼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라… 당신 마음은 이해해요. 하지만—”

“절 믿어줘요!”
나는 답답함을 억누르지 못한 채 안전벨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칼리뮤가 있는 곳으로 항로를 바꿔야 해요.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해요!”

조종사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그 시선엔 당혹과 경계가 섞여 있었다.

“노라.”
앞 좌석의 주조종사가 낮게 말했다.
“지금 요청은 단순한 항로 수정이 아닙니다. 작전 이탈이에요.”

“증거가 있어요?”
부조종사가 센서와 각종 계기를 확인하며 덧붙였다.
“센서엔 아무 이상도 없어요. 화성 궤도는 정상이고, 코라는…”

“레이더에 감지되고 있지 않겠죠.”
내가 말을 잘랐다.

부조종사는 장거리 레이더를 응시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딜런이 자리에서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걱정과 갈등이 동시에 떠 있었다.
“노라… 당신이 느끼는 게 뭔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우리에게 기회는 한 번 뿐이에요. 위험한 도박을 감행할 수는 없어요.”

“알아요, 딜런.”
나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래서 말하는 거예요. 기회가 한 번뿐이니까요.”

“우선 화성 궤도 근처까지 접근해서 정밀 스캔을 해보는 게...”
“그러면 너무 늦어요. 지금 당장 항로를 바꿔야 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고스트쉽은 여전히 흔들림 없이 항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정감을 깨뜨리려는 이는 이곳에서 나뿐인 것처럼 보였다.

“노라의 말에는 신뢰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요.”
침묵을 깬 것은 소피였다.
“노라의 현재 신체 기능은 칼리뮤와 양자적 수준에서 미세하게 얽혀 있어요. 노라의 신체 상태를 스캔할 수 있는 저는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있죠.”
소피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진지했다.
“지금 노라에게서 두려움과 긴장의 신체 반응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요. 이는 칼리뮤의 위험 인식이 노라를 통해 반사되고 있다는 의미예요.”

“그녀가 있는 곳에… 코라가 있다는 건가?”
조종사가 물었다.

“그건 명확하지 않아요.”
소피의 음성이 아주 낮게 이어졌다.
“노라는 그녀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만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노라의 판단을 무시할 합리적 근거도 충분하지 않죠. 코라가 그곳에 있을 확률이 높다는 의미예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확실해요.”
내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분명하게 느껴져요. 그녀는 지금… 코라를 보고 있어요.”

조종사는 다시 한번 장거리 레이더를 바라보았다. 화면의 한쪽 구석에는 붉은색의 점이 떠 있었고, 그 주변엔 아무런 신호가 잡히지 않고 있었다. 그게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항로 변경.”
그가 부조종사를 향해 말했다.
“제한 범위 내에서만. 완전 이탈은 아니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짓했다.
“이쪽으로 와서 길을 알려줘요. 부디… 당신의 말이 맞기를 바랍니다.”

나는 결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감고, 느껴지는 감각에 최대한 집중하며 손가락으로 가야 할 방향을 가리켰다.

고스트쉽이 아주 미세하게 방향을 틀었다.
계기판 위의 별들이 조금씩, 이전과는 다른 배열로 흘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