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 75

by 더블윤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Girl’s


코라의 외벽이 가까워지며 시야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도킹 유도 신호 확인.」

기체의 시스템 안내음이 차갑게 울렸다. 그 소리와 함께 눈앞의 차폐문이 열렸고, 노매드는 넓은 감압실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뒤쪽 차폐문이 닫히고, 잠시 후 감압실 내부의 조명이 녹색으로 전환되었다. 이어서 정면의 거대한 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리자, 드넓은 코라의 격납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각 층마다 정렬되어 있는 셔틀, 긴 활주통로.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노라와 함께 이곳을 빠져나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정확히 그때와는 반대의 순서로 다시 이곳에 돌아와 있었다.
유도 신호를 따라 노매드는 요란한 엔진음을 남기며 천천히 내려앉았다. 착륙과 동시에 수많은 군인들이 순식간에 기체 주변을 에워쌌다.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캐노피를 열고, 천천히 전투기에서 내려왔다.
주위를 둘러보자 처음 이곳에 붙잡혀 왔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검은 제복을 입은 무장 병력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키 큰 백발의 노인.

“다시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칼리뮤.”
로쉬가 여전히 젊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조용히 로쉬를 따라갔다. 뒤에서는 두 명의 병사가 내 등에 총구를 겨눈 채 우리를 뒤따르고 있었다. 여차하면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선내의 분위기는 이전에도 차가웠지만, 지금은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 몇 명이 식은땀을 흘리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뒤따르던 무장 병사들은 총을 든 채 그들을 거칠게 밀어붙이며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
복도 양옆으로 늘어선 닫힌 문 너머에서는 이따금 사람들의 고성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로쉬의 발걸음이 멈춘 곳에는 '함장실'이라 적힌 커다란 철제문이 서 있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곳에는 나와 이 숙녀분만 들어가겠네. 가서 각자 할 일을 보도록 하게.”

로쉬가 허공에서 먼지를 털어내듯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병사들은 짧게 경례한 뒤 코너를 돌아 사라졌다.

그는 여전히 점잖았지만, 감정이 거의 실리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들어오시죠. 누추하지만, 제 집입니다.”




함장실은 코라의 다른 공간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공기는 따뜻했고, 바닥에는 부드러운 장판이 깔려 있었다. 한쪽 벽에는 눈부신 빛을 담은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고, 넓은 창 너머로는 소행성대의 암석들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 풍경은 이곳이 전투도, 위협도 존재하지 않는 안전지대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로쉬는 먼저 자리에 앉았다. 나에게 앉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고, 나 역시 굳이 자리를 찾지 않았다.

“흥미롭군요.”
로쉬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중요한 물건이라면 항상 지니고 다닐 거라 생각했는데… 협상에 필요한 물건을 두고 왔을 리는 없고...”
그의 시선이 내 허리와 손목, 장비가 있을 법한 위치를 차례로 훑었다.
“어디에 숨겼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들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 동료들은 어디 있습니까?”

로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아주 느리게 미소 지었다.
“안심해도 됩니다. 모두 살아 있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깍지 낀 채 덧붙였다.
“현재는 억류 상태지만요.”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들을 풀어주세요. 그러면… 당신들이 원하는 그 물건을 넘기는 걸 검토해 보겠습니다.”

로쉬는 그 말을 곱씹는 듯하다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검토라…”
그는 고개를 저었다.
“순순히 넘기겠다고요? 당신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을 확률이 97퍼센트에 달합니다.”

나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 뭐라고요?”

“모든 인과관계, 지금까지의 행동 패턴, 그리고 현재 당신의 심박 변화와 동공 반응.”
로쉬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 모든 변수를 고려했을 때, 당신이 자발적으로 그 물건을 건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그의 말은 추측이 아니었다. 측정값이었다.
그제야 나는 이 남자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했다. 그의 어조에는 감정도, 망설임도 없었다. 오직 계산만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계획은 변함없었다. 그를 제압하고 인질로 삼아 동료들을 구한 뒤 탈출한다. 밀폐된 공간 안에 단둘이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 계획을 실행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순간이었다.

“그걸 알면서 나를 이곳에 부른 이유가 뭐죠?”
나는 의중을 감춘 채, 그를 기습하기 좋은 위치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숨긴 물건을 찾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로쉬가 담담히 말했다.
“그 물건이 스스로 제 발로 들어오겠다고 하니, 제 입장에선 고마울 따름이죠. 당신을 이곳에 부른 이유는…”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순수한 호기심입니다. 네리안의 군인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알고 싶었거든요.”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당신은…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어요.”
그리고 한 걸음에 그의 앞까지 거리를 좁혔다.
“나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었으니까요.”

나는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몸을 틀어 다리를 그의 목에 걸고 체중을 실어 그대로 넘어뜨렸다. 로쉬의 등이 바닥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나는 즉시 그의 위로 올라 무릎으로 목을 압박했다. 숨통을 끊겠다는 각도로 힘을 더했다.
그러나, 로쉬의 얼굴에는 고통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 무표정이 보이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로쉬는 내 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인간의 힘이라곤 믿기지 않는 근력으로 나를 들어 올렸다. 몸이 공중에서 균형을 잃었고, 그대로 벽 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고통을 잊은 채 바닥을 굴러 재빨리 일어났다. 동시에 허리춤에 숨겨 두었던 SWG를 꺼내 들었다.

“멈춰.”
숨을 고르며 경고했다.

그러나 로쉬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그의 얼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압축 공기의 충격이 터지며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목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였다.
분명,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하지만 로쉬는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원래 각도로 되돌렸다.

그 순간, 확신이 들었다.
이 자는 인간이 아니다.

“걱정 마십시오.”
로쉬가 다가오며 말했다.
“지금은 당신을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요. 아직 당신은 쓸모가 있습니다.”

그는 한 손으로 내 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발끝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폐는 미친 듯이 공기를 갈구했고, 힘이 빠지며 시야가 서서히 흐려졌다.

그의 목소리는 끝까지 차분했다.
“당신과 네리안 문명은 철저히 연구될 겁니다.”
그는 고개를 기울이며 덧붙였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될 때까지.”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창 너머의 별빛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내, 눈앞에 어둠이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