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culation

# 77

by 더블윤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Boy’s


함장실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조명은 정상적으로 켜져 있었지만, 그 아래를 오가는 사람의 흔적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함선 자체가 잠시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모든 움직임이 멈춰 있었다.
함장실 문 앞에 멈춰 섰다. 늘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부관이나 경비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거대한 탐사선, 코라 안에는 로쉬와 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정적만이 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문 앞에서 조용히, 천천히 숨을 골랐다. 잠시 후 낮고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문이 스스로 열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안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넓은 창 너머로 소행성 지대가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등을 돌린 채, 두 손을 등 뒤로 모은 자세. 이전에 이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어서 오게, 노라 그린비.”
로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는 돌아보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네.”

나는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섰다. 철제문이 등 뒤에서 조용히 닫혔다.

“그녀는 어디 있습니까?”
최대한 짧게 물었지만, 그 안에는 억눌린 감정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로쉬는 그제야 고개를 조금 돌렸다. 그리고 함장실 한쪽 구석을 향해 턱짓했다. 그곳에는 여러 개의 CCTV 화면이 겹쳐 떠 있었다.
나는 그 스크린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가장 큰 화면 속에는 작은 격실 하나가 비쳐지고 있었다. 벽과 바닥이 같은 색으로 이어진, 창 없는 공간. 그 안에 보랏빛 머리의 여성이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인 모습. 칼리뮤였다.
그 옆의 화면들에는 다른 인물들이 차례로 비쳐 있었다. 각자 다른 방, 다른 크기의 격실. 누군가는 벽에 기대앉아 있었고, 누군가는 바닥에 쓰러진 채 미동도 없었다. 모두 칼리뮤의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자네가 오기 직전에, 그녀를 조금 더 어울릴 만한 방으로 옮겨 주었네.”
로쉬가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를 실험실의 쥐처럼 바라보던 자들에게, 진짜 실험실의 쥐가 된 기분이 어떤지 알려주고 있었어.”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나는 충격과 분노를 억누르며,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고 로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로쉬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치 날씨에 대한 사실을 말하는 사람처럼, 그는 지나치게 평온했다.

“내가 이곳에 오리란 걸 알고 있었죠?”
나는 떨리는 목소리를 겨우 가다듬으며 물었다.

로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걸어와 소파를 가리켰다.
“앉게.”

그는 말을 마친 뒤 테이블 쪽으로 이동해 커피 머신을 작동시켰다. 금속음과 함께 진한 향이 함장실 안에 퍼졌다. 로쉬는 두 잔의 커피를 내려, 천천히 소파 앞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앉지 않았다. 하지만 로쉬는 개의치 않는 듯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예전에 못다 한 이야기가 있지.”
그의 시선은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소행성들이 유영하듯 흘러가고 있었다.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야. 자네와 나, 그리고…”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저 외계에서 온 종족들보다도 더 중요한 이야기지.”

함장실 안에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나는 여전히 서 있는 채로, 로쉬와 화면 속의 칼리뮤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가 식고 있어.”
로쉬가 말했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 봤자, 자네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어.”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하지만 커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로쉬를 노려보았다.

"제게 바라는 게 뭡니까?”
내가 물었다.

“대화.”
그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게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죠?”
나는 곧바로 쏘아붙였다.

“인류의 미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전혀 예상 밖의 조합이었다.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의 의도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나는 숨을 고르고 다시 물었다.
“당신의 목적이 도대체 뭡니까?”

로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계산자이자 측정자야. 그리고…”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인류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이기도 하지.”

“지금 이 모든 게 당신의 계산과 설계라는 말입니까?”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나는 더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외계 문명과, 전쟁이라도 치르시려는 겁니까?”

“흥미롭군.”
로쉬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이 순간에도 자네는 이성적인 언어로 나를 설득하려 하고 있어. 정작 행동의 원동력은 감정이면서 말이야.”

그는 여전히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해부하듯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이어갔다.

“그럴 일은 없을 걸세. 걱정하지 말게.”
로쉬가 덧붙였다.
“나는 네리안 문명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어. 물론…”
그는 잠시 멈췄다.
“그 안엔 내가 원하는 바도 담겨있고.”

“그게 무슨 뜻이죠?”
내가 물었다.

“자넨 여전히 이상주의자인가?”
그가 되물었다.

이번에도,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한 단어, 한 단어에 힘을 주어 다시 말했다.

로쉬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더 들이킨 뒤, 허공을 바라보았다. 로쉬의 그 모습은 생각에 잠긴 사람이라기보다, 계산을 수행하는 존재에 가까워 보였다.

“그래.”
한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자네와 제대로 대화를 나누려면… 모든 걸 알 필요가 있겠군.”

그는 이번엔 함장실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 코라의 기원.”
그리고 시선을 다시 나에게 돌렸다.
“그리고, 나의 기원에 대해서 말해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