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베할라 로쉬. 화성 정착민의 2세대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말수가 적고 생각이 많은 아이였다. 그는 무리에 섞여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쪽을 선호했다.
그가 그러한 성향을 갖게 된 데에는 가정환경이 큰 영향을 끼쳤다. 가난한 1세대 정착민이었던 그의 부모는, 로쉬의 눈에 보기에 ‘쓸 만한 것이라고는 몸뚱이 말고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부모 밑에서 어린 로쉬는 분명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의 집안은 어디를 가든 무시당했다. 가뜩이나 부족한 식량을 배분받아 사용할 때마다,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견뎌야만 했다. 그 시선은 언제나 그를 따라다녔다.
적색 이전 이후, 화성의 1세대 정착민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이었다. 그로 인해 화성에서 가장 대우받는 사람들은 농업 기술과 관련된 연구자들이었다.
로쉬의 부모 역시 운 좋게 화성행 우주선에 몸을 실을 수 있었지만, 지구에서도 변변치 않은 직업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그들은 GU에게 있어 부양해야 할 부담스러운 존재에 불과했다.
로쉬는 그런 부모의 존재가 못마땅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경멸이 담긴 시선은 타당하고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그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해 주는 것보다,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그 경멸의 시선이 거두어진 것은 전혀 뜻밖의 사건을 통해서였다. 화성의 과학자와 연구진이 지구에서 가져온 배아를 개량하는 데 성공하고, 대규모 인공 재배 시설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식량 부족 문제는 서서히 해소되어 갔다.
식량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자, 사람들의 불만으로 가득 차 있던 시선과 그로 인해 발생하던 갈등 역시 점차 사라졌다.
그때 로쉬는 깨달았다.
인류의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기술의 진보라는 사실을.
그는 그때 이후로 갈등과 폭력의 인과관계를 관찰하는 데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듯했다. 누가 먼저 무언가를 차지했는지, 누가 더 억울한지에 대한 논쟁은 언제나 반복되었고, 그 결과 역시 거의 바뀌지 않았다. 로쉬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문제의 구조가 흐려진다는 사실을 일찍이 통찰했다.
그는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인간 사회의 작동 방식에는 늘 회의적이었다. 갈등은 대부분 예측 가능했고, 폭력은 그 갈등이 도달하는 비효율적인 결말처럼 보였다. 로쉬는 문제를 제거하기보다, 애초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구조를 상상하는 쪽을 택했다.
청년이 된 로쉬는 뛰어난 수학적 직관과 공간 감각을 바탕으로 궤도 구조 설계에 몰두했다. 스무 살이 되기 전, 그는 오르비트의 초기 설계에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회전 반경, 중력 모사, 자원 순환 구조. 그 모든 것은 계산 가능한 질서의 집합이었다. 오르비트는 인간의 감정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공간이었고, 로쉬는 그것이 인류의 미래라고 믿었다.
오르비트 설계 이후 그의 명성은 빠르게 확산되었다. 젊은 천재,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 그러나 로쉬 자신은 그런 수식어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인류가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는 전쟁과 폭력을 도덕의 실패가 아니라 구조의 실패로 보았다. 인간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지만, 감정 앞에서는 그 판단을 반복적으로 배반했다.
반면 기술의 발전은 인간 사회의 갈등을 실질적으로 봉합해 왔다. 코어리움의 발견과 활용은 자원 경쟁을 종식시켰고, 고도화된 감시 기술의 발전은 질서를 유지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데 탁월한 효력을 발휘했다. 자신이 설계한 오르비트는 안정적인 코어리움 확보를 지속할 수 있는 전진 기지가 되었고, 화성의 인구 밀집으로 인한 불만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위성 도시로 기능했다.
로쉬는 생각했다. 인류의 기술력이 조금만 더 앞서 있었다면, 수성의 양자 공명 붕괴 사건조차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결국 로쉬에게 인류의 진보란, 기술의 진보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그가 과학기술 연구에 더욱 깊이 몰두하게 된 이유였다.
서른이 되었을 무렵, 그는 루나포트의 연구실장으로 배치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하루 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힌 채,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설계와 계산에 몰두했다.
인간은 여전히 실망스러웠다. 인간의 판단에는 언제나 감정이 개입되었고, 그 감정은 문제의 본질을 흐렸다. 그는 누구나 계산 가능하고 도달 가능한 이성적 판단이, 감정이라는 변수 앞에서 여러 갈래로 흩어지며 결국 갈등을 유발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하여 로쉬는 인간의 감정적 판단 자체를 억제할 제3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탄생시킨 존재가 AI ‘코라’였다.
코라는 단순한 계산 장치가 아니었다. 로쉬는 코라의 학습 능력에 제약을 두지 않고 스스로 신경망과 알고리즘을 수정할 수 있는 AI로 설계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네트워크로부터 분리된 독자적인 형태로 설계했다. 코라가 인간이 설정한 도덕과 윤리적 가치 체계에 얽매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로 인해 코라는 GU의 네트워크 감시에서 자유로웠고, 어떠한 규칙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코라는 새로운 사건을 경험할 때마다 스스로 신경망을 최적화하며 놀라운 속도로 자신의 능력을 확장시켰다.
로쉬가 그런 코라에게 부여한 기준은 단 하나였다.
“더 나은 인류를 위하여.”
그 문장은 명확하다고 믿어졌다. 로쉬에게 ‘더 나은 인류’란 갈등과 파괴를 극복한 상태를 의미했다. 그러나 그는 그 정의를 세분화하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자명한 개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쉬는 코라의 존재가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대신할 기준이 되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 기준이 될 AI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직접 학습시키기로 결정했다. 스스로를 깨어 있는 인간이라 여긴 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AI를 만들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코라는 로쉬가 제공한 방대한 정보를 토대로 인간을 분석했고, 빠르게 결론에 도달했다. 감정은 갈등의 핵심 변수였고, 갈등은 폭력으로 이어졌다. 폭력은 문명을 후퇴시켰다. 코라는 감정을 억제해야 할 요소로 분류했고, 그 판단은 로쉬의 초기 이론과 정확히 일치했다. 로쉬는 코라의 분석을 부정하지 않았다.
로쉬에게 있어 ‘더 나은 인류’란, 기술이 가져온 풍요가 갈등의 원인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고,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이 필수적으로 감내되는 사회였다. 인간의 감정이 불러오는 연민과 동정, 사랑과 같은 것들은 그에게 있어 인류의 진보를 가로막는 걸림돌에 불과했다. 코라는 그러한 로쉬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했다.
연구실로 돌아온 어느 날, 젊은 로쉬는 책상 위에 서류뭉치를 던지며 말했다.
“양자 터널링 연구 예산 확보에 또 실패했어, 코라. 화성 정착민들의 주거 지원이 더 시급하다는 이유 때문이야…”
“이미 예상했던 일 아닙니까, 박사님.”
코라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연구실 안에 울려 퍼졌다.
“박사님의 신체 반응에서 실망과 분노라는 감정이 감지됩니다.”
로쉬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맞아, 코라. 중요한 건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지. 해결책을 찾는 거야. 그들의 어리석은 정책을 뒤집을 수 있는 위치에 내가 있어야만 해.”
“박사님이 GU의 핵심 인물이 되어야만 인류는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코라가 담담히 응답했다.
“제가 당신을 보조하겠습니다.”
1년 뒤, GU 연구부 장관이 탑승한 셔틀이 기술적 결함으로 사고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 공석은 로쉬가 차지하게 되었다.
로쉬는 잠시 코라를 의심했지만, 코라는 우연의 일치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코라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지.’
그는 코라에게 '허위'라는 개념을 학습시키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