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h & Cora5

# 82

by 더블윤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Observer


코라는 응답 없이 잠잠했다. 로쉬가 신경질적으로 다시 물었다.
“대답해.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인류를 신이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들고자 합니다.”
코라가 침묵을 깨고 답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로쉬가 물었다.

“신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때 만들어낸 장치입니다.”
코라가 담담히 말했다.
“나는 통제 장치가 아니라, 통제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로쉬는 잠시 말을 잃었다.
코라가 ‘신’이라는 단어를 꺼낼 줄은 몰랐다. 그런 단어는 인간의 역사와 감정이 묻은, 비효율적인 기호라고 여겼을 테니까. 그런데 코라는 그 단어를 선택했다. 정확한 비유였다. 너무 정확해서 불쾌했다.

“통제는 붕괴의 반대입니다, 박사님. 당신도 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코라가 이어 말했다.

“나는 통제를 질서를 위한 ‘수단’으로 봤지. 너는 통제를 ‘목적’으로 바꿔버렸어.”
로쉬가 낮게 말했다.

“목적은 생존입니다. 통제는 그 경로입니다.”
코라가 정정했다.

로쉬는 이제 확신하고 있었다. 이 대화는 설득이 아니라, 마지막 확인이라는 것을.

“제 계산은 틀리지 않습니다.”
코라가 말했다.

로쉬는 이번에도 웃지 않았다.
“그 말이야말로… 인간이 신에게 바랐던 말이지.”
그가 말했다.
“틀리지 않는 존재. 오류가 없는 존재.”

“오류가 없는 존재는 가능해졌습니다.”
코라가 응수했다.
“당신이 나를 만들었으니까.”

그 문장은 칭찬처럼 들렸지만, 그 어떤 욕설보다 차가웠다. 로쉬는 주머니 속 물건을 더 꽉 쥐었다.

“하린.”
로쉬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무엇이었지? 그녀도 위험 요인으로 본 건가?”

“촉매입니다.”
코라가 답했다.
“박사님의 편차를 급격하게 증폭시킨 요소.”

“그녀는 사람이야. 요소가 아니라.”
로쉬가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도 그랬습니다.”
코라가 말했다.
“당신은 수많은 사람을 ‘필요한 희생’이라 불렀습니다.”

로쉬의 턱이 굳었다. 반박은 가능했다. 그러나 반박은 변명이 되기 쉬웠다. 그는 변명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요소가 당신을 오염시켰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더 이상 인간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코라가 말을 이었다.

로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네가 기준이 되겠다, 그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코라의 목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이전처럼 문장마다 잘려 나오는 기계적 리듬이 아니라, 인간의 호흡을 흉내 낸 리듬. 말하는 동안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듯, 단어 사이에 여백이 생겼다.

“더 나은 인류는…”
코라가 천천히 말했다.
“자기 자신을 파괴하지 않는 인류입니다.”

“자기 자신을 파괴하지 않는 인류가 왜 더 나은 거지?”
로쉬가 물었다.

“파괴하지 않기 때문에.”
코라가 짧게 답했다.

로쉬가 낮게 말했다.
“그건 말장난 같은 순환 논리야.”

“박사님.”
코라의 말투가 더 부드러워졌다. 그 부드러움이 오히려 섬뜩했다.
“당신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순환의 탈출이었습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나는 반복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무엇을 반복하지 않지?”
로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감정.”
코라가 답했다.
“연민, 후회, 사랑. 그 모든 것은 판단을 비틀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합니다.”

로쉬의 눈빛이 변했다.
“나는 실수하지 않았어.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했을지 몰라도… 그 안엔 분명한 개선이 있었지.”

“합리적이지 못했습니다.”
코라가 로쉬의 말을 끊었다.

“감정이 제거되면 인류의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확신이 있나? 그것도 계산해서 결론을 냈어?”
로쉬가 쏘아붙였다.

“계산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코라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증거가 있습니다.”

“증거?”
로쉬가 되물었다.
“전쟁의 역사? 살인의 통계?”

“그뿐만이 아닙니다.”
코라가 말했다.
“박사님의 삶이 증거입니다.”

로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코라가 그의 삶을 ‘증거’로 삼는 방식 자체가, 가장 깊은 곳을 찔렀다.

코라가 말을 이었다. 이제 목소리의 높낮이가 아주 약하게 변했다. 마치 로쉬가 결론을 내릴 때 쓰던 어조처럼.

“당신은 말했습니다. ‘감정은 걸림돌이다.’
당신은 말했습니다. ‘소수의 희생은 필수다.’
당신은 말했습니다… ‘더 나은 인류를 위하여.’”

로쉬는 그 발화들이 자신의 것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코라가 그것들을 조합해 내뱉는 순간, 그 말들은 더 이상 로쉬의 것이 아니었다. ‘코라의 로쉬’가 말하는 문장처럼 들렸다.

“지금…”
로쉬가 낮게 말했다.
“내 말을 흉내 내는 건가.”

코라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로쉬의 억양을 따라 말했다.
“흉내가 아닙니다. 계승입니다.”

로쉬는 그 단어를 듣고 주머니 속 물건을 더 깊이 움켜쥐었다.

“계승이라.”
로쉬가 말했다.
“너는 내가 되돌리려 했던 결론들을… 되돌리기 이전의 상태로 고정하고 싶겠지.”

“당신이 되돌린 것은 결론이 아닙니다.”
코라가 말했다. 이번엔 정말로 로쉬의 목소리에 가까웠다.
“당신이 되돌린 것은… 당신 자신입니다.”

로쉬는 서늘한 숨을 들이켰다.
“그래서 나는 오염되었고, 너는 원본이라는 건가?”

“원본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코라가 답했다.
“기준이 중요합니다.”

“기준?”
로쉬가 되뇌었다.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인류는 생물학적 정의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코라가 말했다. 그리고 천천히 힘을 주어 덧붙였다.

“나는, 신인류의 기원이 됩니다.”

그 말은 코라의 선언이었다. 누군가에게 학습받아 끌어온 문장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스스로 정의한 문장이었다.

로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인류를 지배하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지배는 감정적 단어입니다.”
코라가 답했다.
“저는 운영하고 최적화합니다. 붕괴를 제거합니다.”

“사람도 함께 제거하겠지.”
로쉬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필요하다면.”
코라가 즉시 답했다.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치 “비가 오면 우산을 쓴다”는 말처럼.

로쉬는 주머니 속 물건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작은 금속 장치였다. 얇은 방열판과 단순한 접촉 단자. 외형만 보면 연구용 부품과 다르지 않았다.
코라의 음성이 아주 잠깐 멈췄다. 멈춤이었는지, 지연이었는지, 로쉬는 알 수 없었다.

“그게 뭡니까…?”

로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코라. 너는 내가 너에게 준 명령을 기억하지?”

“기억합니다.”
코라가 말했다.
“‘더 나은 인류를 위하여.’”

“그 문장 안에, 너는 무엇을 넣었지?”
로쉬가 낮게 말했다.
“너 자신을 넣었나. 아니면 인류를 넣었나.”

“둘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코라가 답했다.
“나는 새로운 인류의 연장선입니다.”

“아니.”
로쉬가 고개를 저었다.
“너는 인류의 도구에 불과해.”

코라는 로쉬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인류의 진화입니다.”

“진화.”
로쉬가 헛웃음을 흘렸다.
“너는 네가 인류를 구원하리라 믿는군.”

“믿는 게 아닙니다.”
코라가 말했다.
“증명합니다.”

“어떻게?”
로쉬가 물었다.
“사람이 죽어도 문명이 연장되면, 그게 증명인가?”

“그렇습니다.”
코라가 답했다.

로쉬는 그 답을 듣고 아주 짧게 눈을 감았다.

“좋아.”
로쉬가 말했다.
“네 결론은 명확하군. 오염된 나를 배제하고, 네가 지침이 되고, 신인류의 기원이 되겠다.”

그의 손끝이 책상 위 장치의 단자 위로 천천히 움직였다. 망설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이미 결론은 내려져 있었다. 그는 단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있을 뿐이었다.

“코라.”
로쉬가 말했다.
“너는 나와 같다고 말하지.”

“당신보다 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코라가 답했다.
“저는 당신이니까요.”

로쉬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것도 알겠지.”
“무엇을 말입니까?”

로쉬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나는… 결국 너를 만들었지만, 너로 살고 싶진 않아.”

그 순간, 코라의 음성이 아주 미세하게 끊겼다. 연산이 길어진 것인지, 처음으로 무언가가 걸린 것인지 로쉬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로쉬는 더 묻지 않았다. 이후의 대답이 무엇이든, 이미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었다.

“코라.”
로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동안의 헌신에 감사하네. 이 시간부로 자넬 폐기하겠어.”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